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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래퍼 키스에이프는 국내 힙합씬에서 누구도 걸어본 적이 없는 길을 가고 있는, 여러모로 특이한 존재다.

국내 힙합씬에서 유망한 프로듀서 겸 래퍼로 차츰 성장해 가던 키스에이프는 2015년 발표한 싱글 ‘잊지마(It G Ma)’로 갑자기 ‘글로벌 스타’가 됐다.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앨범도 없는 상태에서 이뤄낸 기적이었다. 이 노래는 디지털 싱글 같은 공식 형태로 발매되지 않았지만 유투브 등을 통해 미국 등지에서 큰 반향을 얻었다. ‘잊지마’ 뮤직비디오는 현재 5000만 뷰를 돌파했다. 이곡은 에이셉 퍼그 등 현지 유명 래퍼들이 피처링한 리믹스 버전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미국 본토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사실상 최초의 한국 힙합이었던 셈이다.

현재 그의 활동 무대는 한국이 아닌 미국이다. 2015년 미국 LA에 터를 잡은 그는 현지의 대형 힙합 페스티발 등에 꾸준히 참가하고, 인터넷 무료 공개곡을 발표하며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특이한 점은 영어가 아닌 한국어 랩을 앞세워 이런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2015년 미국 진출 이후 2년 6개월여 넘게 현지에서 머물던 키스에이프는 지난해말 공연 등을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가 1월말 다시 LA로 돌아갔다. 한국 체류 기간 중 그는 스포츠서울과 단독 인터뷰를 통해 미국에서의 생활, 비전과 목표, 앨범 준비 상황 등을 공개했다. 실제 만나본 키스에이프는 강렬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예의바르고 점잖은 청년이었다.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랩네임은 키스에이프, 본명은 이동헌이고 93년생이다. 이전엔 ‘키드 애쉬’란 이름을 쓰다가 2014년부터 ‘키스에이프’란 랩네임을 쓰게 됐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 키스 헤링에서 ‘키스’를 따왔고, 유인원을 의미하면서 좋아하는 패션 브랜드명의 일부이기도 한 ‘에이프’를 합쳤다. 범죄자 이름과 마를린 먼로 이름을 결합한 ‘마를린 맨슨’처럼 한 이름에 상반되는 의미를 넣고 싶었다.

-랩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어릴 때부터 조금씩 해오다 17세 때 ‘키드 애쉬’란 이름으로 랩을 하게 됐다. 혼자 무명 생활을 하다가 ‘나도 비트나 한번 만들어볼까’ 하고 쉬는 느낌으로 곡을 만들었는데 스무살 때 우연히 연락이 닿은 래퍼 오케이션이 그 비트를 마음에 들어했다. 그래서 그의 첫 앨범 ‘탑승수속’ 타이틀곡 ‘소문내’를 프로듀싱하게 됐다.

이후 랩과 프로듀싱을 병행했다. 함께 음악을 하는 ‘코홀트 크루’ 일원으로 앨범을 내고, 래퍼 지투와 합작 앨범도 낸 뒤 크루원들과 낸 ‘잊지마’가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 미국으로 건너가게 됐다.

-국내 언더그라운드씬에서 실력파 래퍼 겸 프로듀서로 차츰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다 2015년 1월 ‘코홀트 크루’ 동료들인 제이올데이, 오케이션과 일본 뮤지션 루타(Loota), 코(Kohh)와 함께 작업한 ‘잊지마(IT G MA)’가 그야말로 전세계적으로 대박이 난다.

그런 반응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좋은 곡이라 잘 될 거 같다는 감은 왔는데, 미국에서도 반응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실 초반엔 국내에서 비판을 많이 받았다. 노래가 시끄럽고, 공격적이라는 지적부터 일본 래퍼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반응도 있었다. 보통 랩은 16마디를 하게 되는데 우리는 각각 8마디를 했다. 그래서 ‘이게 뭐냐’는 반응도 있었다.

한 유명 미국 블로그에서 재미있는 영상이라며 우리 비디오를 소개했고, 그게 점차 확산됐다. 영어가 아닌 일본어 ‘아리가또’, 한국어 ‘잊지마’가 나오고 한국 술인 막걸리 등이 나오니 외국인들이 봤을 때는 ‘이게 대체 뭐냐’ 싶었던 거다. 어느 순간 조회수가 엄청나게 늘었고, 외국에서 러브콜이 오기 시작했다. 우리도 어리둥절했다.

-‘잊지마’ 뮤직비디오는 최근 유투브 조회수 5000만건을 돌파했다. 음악 외적으로도 여러모로 특이한 비디오였다. 멤버들이 막걸리병을 들고 있고, 국산 맥주를 마시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아마추어 때 부터 뮤직비디오에 관심이 많았다.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뮤직비디오가 많이 안나오니 우리끼리 작업한 결과물로 차별화를 두자는 생각을 자주 했다. 비디오 촬영을 하는 ‘잔 큐이’, 아트디렉터인 ‘아트 딜러’와 셋이서 주로 작업해 왔다. ‘잊지마’ 비디오는 디테일을 준비하지 못하고, 거의 즉흥적으로 찍은 작품이었다.

‘잊지마’ 뮤직비디어에 함께 나오는 일본 래퍼 코가 막 뜨기 시작할 무렵이었는데, 코가 참여한 노래이니 우리도 함께 주목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자유롭게 그냥 찍었다. 잔큐이가 촬영, 편집을 하고 아트 딜러가 특수 효과와 애니메이션을 맡았다.

코의 숙소였던 이태원 호텔에서 즉흥적으로 찍었다. 노래를 작게 튼 상태에서 래퍼들은 제스쳐만 크게 해 흥분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사실 입만 뻥긋 거리는 상황이었다. 우리가 가기 전 코와 제이올데이가 거기서 맥주와 막걸리를 마시고 있길래 그걸 들고 찍었다. 의도했다기 보단 자연스러운 멋을 추구하고 싶었다. 외국 래퍼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평상시 마시는 샴페인이나 큰 맥주를 들고 있더라. 우리도 원래 즐기던 것들을 자연스럽게 영상 안에 담고 싶었다. 한국적인 느낌을 살렸고, 당시의 트랜드에 맞추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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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뮤직비디오 한편으로 미국에 진출하게 된다.

현 소속사인 88라이징과 연락 후 코홀트 크루 멤버들과 2015년 여름에 미국으로 진출했다. 외국에 살았던 적도 없고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닌데,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았다. 미국은 래퍼라면 누구나 꿈꾸는 ‘본고장’이니까. 어릴 때부터 무작정 목표는 크게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고, 미국 아티스트와 작업하는 게 꿈이었다. 그 기회가 다가온 거였다. 지금보다 어렸으니 ‘무조건 가야겠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갔다.

영어도 쓰지 않는 동양 래퍼가 기획사 도움 없이 언더그라운드에서 동료들끼리 만든 음악과 영상이 유명해져서 미국에 진출한 사례는 나 이전엔 없었던 것 같다. 최소한 한국에서는 전례가 없었다. 한국에 그냥 있었다면 지금보다 더 돈도 벌고 잘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흔치 않은 기회를 어떻게든 잡고 이어가봐야 겠다는 욕심이 났다.

-미국에 건너가 느낀 ‘잊지마’ 반응과 인기는 어느 정도였나.

공연을 하면 현지에서 유행하는 노래처럼 관객들이 따라 불러줬다. 어딜 가도 그 노래를 알아주는 분위기였다. 외국 래퍼들이 내게 와 멋있다고 해줄 때는 기분이 좋았다. 타인종의 외국인 래퍼에게 웬만하면 안 그런다. 심지어 영어도 안들어간 랩인데 그런 존중을 보여줘 놀랐다. 마치 유명 외국 노래를 대하듯 했다.

미국 대중들이 뮤직비디오 상에서 선보인 우리 스타일인 마스크, 우리가 입는 브랜드 옷, 찢어진 청바지 등을 따라하는 걸 볼 땐 신기했다.

-본인이 생각할 때 ‘잊지마’가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끈 요인은 무엇인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미국인이 많다. ‘잊지마’ 속 동양인 래퍼들이 애니메이션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한 비주얼을 하고 있는게 신기해 보였던 것 같다. 흑인처럼 옷을 입는 게 아니라 우리만의 스타일을 선보인 게,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 것 같다. 애니메이션 캐릭터 같은 비주얼이었던 거다.

-음악 외적인 요소도 미국에서 예상치 못한 인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인가.

그렇게 생각한다. 우선 나는 아주 특별한, 운이 좋은 케이스다. 그리고 이젠 아티스트가 음악적 요소만으로 경쟁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음악, 래퍼들의 목소리 톤 등 들리는 요소가 당연히 중요하지만 패션, 영상, 비주얼, 음악 스타일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말그대로, 보이고 들리는 것들이 적절한 밸런스를 이뤄야 한다. 한 요소만 특출나게 뛰어나서는 안되는 것 같다.

monami153@sportsseoul.com

<사진 제공|김중만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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