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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보이는 것에 천착하다보면 때론 진실을 놓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감각의 소여(所與)는 그리 믿을 바가 못되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서양 철학의 태두로 평가받는 이유도 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인 이데아(idea)의 중요성을 철학의 전면에 내세운 게 결정적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이 다 끝나가는 시점에 뜬금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의 문제를 꺼집어낸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에서 불거진 노선영의 ‘왕따 논란’ 때문이다.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팀추월의 생명인 팀워크를 깨는 레이스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들불처럼 번져 사회적 이슈로까지 급부상한 건 이례적이다. 축적된 정보가 부족한 국민들로선 스포츠가 지닌 파괴력에 냉정함을 잃고 격정적 파도에 몸을 실은 듯 다소 흥분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태의 보이는 현상에만 너무 집착함으로써 숨어 있는 거대한 진실의 밑그림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곰곰이 따져볼 때다.

노선영 사태의 본질은 무엇일까. 일부에선 빙상계의 해묵은 파벌문제를 거론하고 있지만 장기간 지속된 갈등의 배경과 복잡한 맥락적 흐름을 관통하면 파벌싸움보다는 선과 악을 구분해야 하는 정의의 문제라는 게 필자의 소신이다. 한편에서 조직적으로 정조준하고 있는 대한빙상경기연맹 전명규 부회장은 그렇게 파렴치한 사람일까. 선수들이 4년동안 흘린 피땀의 결실의 장인 올림픽 때마다 그를 겨냥해 매서운 화살을 날리는 ‘숨은 그림자’는 과연 올바른 인물인가. 작은 허물을 침소봉대해 인물을 평가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인격을 구성하는 여러가지 요소와 해당업무에 대한 수행도를 정확하게 분석해 총체적으로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다면 왜 전명규는 반대파의 집중타깃이 됐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명규는 연맹 부회장으로 부임한 뒤 ‘숨은 그림자’가 누렸던 온갖 특혜를 싹 없앴던 인물이다. 그게 바로 ‘숨은 그림자’가 전명규를 찍어내려했던 근본 이유였다. ‘숨은 그림자’의 전략은 치밀하면서도 야비했다. 올림픽을 철저하게 이용했다. 그리고 스포츠라는 콘텐츠에 쉽게 흥분할 수밖에 없는 국민들을 이 싸움에 끌어들여 허위사실을 진실인 양 조작하는 무서운 일을 꾸몄다.

전명규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폭발했던 때가 있다. 바로 2014 소치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가 3관왕으로 부활한 시점이다. ‘숨은 그림자’의 조종으로 반 집행부 세력들은 “안현수가 귀화한 건 전명규 때문이다”는 허위사실을 퍼뜨렸고 이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까지 가세하면서 감히 손을 댈 수 없는 하명사건으로 비화됐다. 대통령의 하명사건은 당시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제 2차관이 중심이 된 체육개혁에서 전명규를 적폐세력으로 규정한 결정적 배경이다.

그렇다면 과연 안현수의 러시아 귀화는 전명규의 독선과 전횡 탓이었을까? 정작 안현수 자신은 “저의 귀화와 관련된 전명규 교수님의 이야기는 모두 사실무근이다”고 반박한 뒤 “어떻게 그런 기사가 나갔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까지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가세했던 전명규 찍어내기는 이후 더욱 속도를 냈다. 김종 전 차관을 앞세워 한국체육대학 교수자리마저 빼앗으려 했다. 그 이유 또한 궁금하다. 그 이유를 캐다 보면 이번 노선영 사태가 단순한 파벌싸움이 아니라는 확신의 근거가 될 수 있다. 필자는 최순실 사태의 징후를 가장 먼저 간파하고 체육계에서 이를 기사화한 최초의 기자로서 빙상문제 역시 최순실 사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

전명규를 찍어내려고 한 최순실의 집요한 행동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최순실 일파가 전명규를 눈엣가시로 여긴 사실은 장시호와 김종의 공판기록에도 고스란히 나와 있다. 그렇다면 전명규는 왜 그들에게 미운 털이 박혔을까. 장시호와 염문이 난 제자를 타일러 가정으로 돌려보낸 게 바로 전명규였기 때문이다. 또 전명규는 그 제자를 통해 최순실 일파가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통해 향후 동계종목을 장악하려는 거대한 음모를 알아챘다. ‘숨은 그림자’를 추종하는 반 집행부 세력은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로 줄을 서며 최순실 사태의 부역자로 특혜를 누렸다. 스포츠토토 빙상단 창단과 이규혁의 감독 부임 등이 최순실 사태 부역자들의 생생한 민낯이다.

세월이 바뀌었건만 아직도 최순실의 부역자들은 전명규를 체육계의 적폐로 몰아세우고 있다. 이들은 최순실을 등에 업고 동계올림픽 이권을 노렸고,동계스포츠육성센터를 거점으로 동계종목을 장악하려는 음흉한 밑그림을 그렸던 사람들이다. 김종 전 차관은 이들의 든든한 바람막이가 돼 전명규를 적폐세력으로 함께 몰아세웠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체육에서 비롯됐지만 체육은 적폐청산의 우선 순위에서 밀려 이 일은 그대로 묻혀버렸다. 최순실 사태에 대한 체육계의 안일한 대처가 결국 동계올림픽마다 되풀이 되는 추문의 도화선이 됐는지도 모른다. 해방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게 왜곡된 한국 근현대사의 원인이 됐듯이 체육계에서 최순실 사태의 명확한 정리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역사의 수레바퀴는 절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선 일단 끓어오른 감정의 파고를 낮추고 냉정함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는 얽힌 실타래를 하나 하나 풀고 잘못 알려진 진실을 정확한 팩트체크로 밝혀내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 진실은 시간과의 사투이며 하늘 그물은 성근 것 같지만 모든 걸 잡아내게 돼 있다. 자신의 탐욕을 위해 올림픽과 국민까지 이용하려는 ‘숨은 그림자’에게 반드시 해주고 싶은 말이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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