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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는 프런티어의 집념, 역사의 변곡점은 바로 그 지점이다. 시대를 앞서는 프런티어는 빠른 머리회전보다 목표를 향해 우직하게 걸어가는 끈기와 집념이 남다르다. 한 사나이의 집념이 일본 스피드스케이팅의 역사를 바꿨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32)가 금메달을 따낸 것도 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일본 스피드스케이팅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시미즈 히로야스(1998 나가노올림픽 남자 500m)도 그의 섬세한 지도에 의해 키워졌다. 결과적으로 일본 스피드스케이팅 최초의 남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모두 그의 손끝에서 배출됐다. 일본 스피드스케이팅의 역사를 쓴 집념의 사나이는 바로 유키 마사히로(53) 코치다. 1992년 월드컵 남자 500m에서 3위를 차지했던 일본 대표선수 출신의 유키 코치는 자신이 못다 이룬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제자를 통해 이뤄내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다.

구도자의 자세로 연구하고 다양한 과학적 이론을 트레이닝에 접목하면서 그는 일본 최고의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 지도자로 자리잡았다. 고다이라가 졸업한 일본 신슈대학 교수이자 스피드스케이팅 코치인 그는 결국 10년의 세월을 건너 뛰며 남녀 500m 올림픽 금메달리스를 배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유키 코치의 지도력이 새삼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한가지다. 30대를 훌쩍 넘겨 절정의 기량을 뽐내고 있는 고다이라의 경기력 때문이다. 18년 동안 고다이라를 가르치며 잠재력을 확인한 유키 코치는 2년 전, 서른에 접어든 고다이라에게 어쩌면 모험일수도 있는 자세교정을 단행했고 결과적으로 이게 ‘신의 한 수’가 됐다. 일각에선 고다이라의 네덜란드 유학이 기량향상의 큰 힘이 됐다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일본 스피드스케이팅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유키 코치의 공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유키 코치는 스피드스케이팅의 두 강국인 한국과 네덜란드의 주법과 자세를 절묘하게 융합해 고다이라에게 최적화된 폼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하체는 한국 선수처럼 낮은 자세를 취하고 상체는 네덜란드 선수처럼 등을 살짝 드는 자세,유키 코치가 고안한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폼은 고다이라에게 날개를 달아줬다.이 같은 자세는 고관절이 내려가 발을 내미는 스트로크를 쉽게 하는 장점이 있다. 자연스럽게 스트로크가 길어져 하체의 파워를 보다 효과적으로 얼음에 전달함으로써 기록향상의 든든한 발판이 됐다. 이밖에 유키 코치는 다양하면서도 과학적인 트레이닝을 고안해 냈다. 얼음판 위에 얹어 놓은 양동이를 손으로 잡고 도는 코너링 훈련이나 밸런스 유지와 장딴지 근력을 키우기 위한 나막신 훈련 등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흥미로운 훈련방식을 통해 대기만성형의 고다이라의 잠재력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화려한 스타플레이어의 탄생 뒤에는 음지에서 묵묵히 인생을 불사른 지도자가 꼭 있기 마련이다. 고다이라와 유키 코치는 한 몸에 깃든 두 영혼처럼 목표를 향해 쉼없이 달려왔다. 두 사람이 18년동안 한 곳을 응시하면서 달려올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서로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올림픽 금메달은 두 사람의 신뢰에 감동한 하늘이 내린 선물이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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