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현의 창(窓)과 창(槍)]문재인 대통령의 롱패딩…무지가 빚은 과잉충성
    • 입력2018-02-11 14:06
    • 수정2018-02-11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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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지난 9일 개막했다. 하늘이 도왔는지 살을 에는 칼바람도 잠시 숨을 골랐고 다른 대회에 견줘 적은 자본이 투여된 개막 행사도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아날로그 감성과 디지털 기술의 절묘한 조화를 뽐내며 세계에 감동을 선사했다. 임팩트 넘친 개막행사에 이어 펼쳐진 남·북한 선수단 동시입장은 평화 올림픽이라는 위대한 가치를 구현하면서 올림픽 무브먼트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모든 걱정거리를 훌훌 털어버린 개막식에서 굳이 ‘옥에 티’를 잡아내자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의 롱패딩이 아닐까 싶다. ‘딸깍발이’ 기자의 까탈스런 지적일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많은 게 함축돼 있어 감히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두 사람의 롱패딩은 한국 선수단 단복과 같은 제품이었지만 오른쪽 가슴에 새겨져 있어야 할 브랜드 ‘노스페이스’의 영문 로고인 ‘THE NORTH FACE’가 살짝 지워져 있었다. 청와대 담당 보좌진이 보기에 아무래도 대통령이 착용한 패딩이 상업화의 수단으로 쓰여지는 게 상당히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청와대 보좌진의 세심한 배려(?)가 브랜드 로고 삭제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게 개인적 추측이다. 결론적으로 이 같은 발상은 청맹과니의 과잉충성이요, 스포츠에 대한 무지가 빚은 한편의 촌극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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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9일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개회식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2018.02.09 / 평창 | 박진업기자upandup@sportsseoul.com
메가 이벤트인 올림픽은 그 자체가 거대한 플랫폼 비즈니스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나 해당 올림픽조직위원회가 기업의 스폰서십에 독점적 지위를 부여하고 그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주는 건 기본이요, 상식이다. 로컬 스폰서십을 관장하고 있는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는 공식 파트너(500억원 이상), 공식 스폰서(150~500억원), 공식 공급사(25~150억원) 등 세 등급의 후원 계약을 체결했다. 조직위에 스포츠 의류 전체를 후원하는 것은 물론 대한체육회에 선수단 단복 등을 공급한 ‘노스페이스’는 가장 높은 후원 단계인 공식 파트너의 지위를 확보한 기업이다. 스포츠에 대한 식견이 있는 청와대 보좌진이라면 최고 후원등급사의 스폰서 로고 노출권리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보호해주는 게 마땅했다. 문 대통령과 영부인의 롱패딩에 브랜드 로고를 지울 게 아니라 오히려 이를 적극 홍보해주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는 상식적인 태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문 대통령은 최순실 사태의 여파로 평창조직위의 기업 후원금 모금이 뚝 끊기자 “기업들이 평창올림픽을 위해 좀 더 마음을 열고 좀 더 많은 후원을 부탁한다”며 국가 어젠다인 평창동계올림픽에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했다. 그리고 정부 차원에서도 평창올림픽 후원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앰부시 마케팅(ambush marketing)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된 ‘평창동계올림픽대회 및 동계패럴림픽 대회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해본다면 대통령과 영부인의 롱패딩에서 사라진 브랜드 로고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휑하니 사라진 로고가 우물안 개구리의 좁은 식견이 빚어낸 시대착오적 산물이라는 비판은 짜장 틀린 말이 아닐 듯 싶다.

만약 문 대통령이 올림픽이 거대한 플랫폼 비지니스이며 후원기업의 독점적 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좌진으로부터 전해 들었다면 본인 스스로가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패딩을 흔쾌히 입었을 게 틀림없다. 늘 낮은 자세로 임하는 문 대통령은 힘겨운 경제상황에서 조직위에 후원한 기업의 권리보호에 결코 눈을 감을 성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기획한 보좌진은 아마도 대통령을 감히 범접하기 힘든 국가의 존엄으로 받들고 여긴 것 같다. 이 또한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세월은 변했고, 시대정신도 달라졌다. 국민들은 너무 어렵고 위대해 보이는 대통령보다 공감할 수 있는 가깝고 친밀한 대통령을 원하고 있다. 그게 바로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의 바람직한 상(像)이다. 뜻을 펴기 위해선 몸을 굽혀 국민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게 우리 시대의 대통령이다. 무지가 빚은 과잉충성,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로고가 사라진 문 대통령의 롱패딩을 보면서 느낀 서글픈 단상(斷想)이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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