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1991년 4월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코리아’ 단일팀이 우승한 뒤 시상식에서 환호하고 있다. 스포츠서울DB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스포츠 이벤트에서 남·북 단일팀은 딱 두 번 이뤄졌다. 1991년 4월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같은 해 6월 포르투갈에서 열린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였다. 이후 남과 북은 27년간 올림픽 등 메이저대회 공동 입장, 통일 축구 및 통일 농구 등의 교류를 하면서도 단일팀으로 출전한 적은 없었다.

두 대회에서의 공통점은 ▲남과 북의 실력이 비슷하고 ▲단일팀 구성을 대회 개막하기 오래 전부터 합의해 전지훈련을 충실히 거쳤으며 ▲성적도 훌륭했다는 점이다.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하늘색 한반도기를 앞세운 ‘코리아’ 단일팀은 여자 단체전에서 ‘만리장성’ 중국을 넘고 세계 정상에 올랐고 남자단식(김택수·한국·동메달)과 여자단식(리분희·북한·은메달), 혼합복식(리분희-김성희·북한·동메달)에서도 입상하는 등 좋은 성적을 올렸다. 이 때 단일팀 스토리는 2012년 하지원과 배두나가 출연한 영화 ‘코리아’로 재조명받았다.

U-20 월드컵에서도 ‘코리아’ 단일팀은 인기였다. 남과 북은 1990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U-19 아시아선수권 결승에 나란히 올라 이듬해 U-20 월드컵 본선 티켓을 모두 땄다. 두 팀의 기량이 아시아 최고임이 밝혀지면서 단일팀 논의가 오갔고 남측에서 골키퍼와 수비라인, 북측에서 공격라인을 맡는 방식으로 ‘코리아’ 깃발 아래 뭉쳤다. 1차전에서 강호 아르헨티나를 1-0으로 눌러 파란의 주인공이 된 ‘코리아’는 8강까지 갔다. 비록 준결승 길목에서 브라질에 1-5로 크게 패했으나 많은 박수를 받았다.

1991 포르투갈 세계청소년 축구대회 남북단일팀
코리아 단일팀 선수들이 1991년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서 훈련하고 있다. (스포츠서울DB)

탁구와 축구 모두 납득할 만한 엔트리 구성을 했다는 것도 특징이다. 세계탁구선수권 땐 국제탁구연맹(ITTF)이 남과 북 모두 남·녀부 5명씩의 출전권을 전부 인정, 선수만 20명의 메머드급 엔트리가 가능했다. 탁구는 단체전조차도 4단식 1복식을 합쳐 만드는 등 개인전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단일팀 구성으로 피해를 보는 선수가 없었다. U-20 월드컵 땐 남측에서 10명, 북측에서 8명으로 남측 선수가 두 명 더 많았다. 대신 사령탑을 북한의 안세욱 감독이 맡았다. 세계선수권에 출전하지 못하는 남과 북의 선수들이 생겼으나 양측이 단일팀 결성을 오래 전에 합의하고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합숙 훈련 및 테스트를 통해 18명의 옥석을 가린 만큼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반면 이번 여자 아이스하키 평창 단일팀은 4년간 남측 선수들이 치열한 노력과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 평창행을 코 앞에 둔 시점에서 북한 선수들이 ‘숟가락’만 얹는다는 점에서 예전의 단일팀에 비해 졸속 논의라 할 수 있다. 남측의 일방적인 구애라는 점, 여론의 동의도 얻지 못한 ‘밀어붙이기’ 식이란 점도 다르다. 적어도 1991년엔 긴 논의와 사회적 동의를 얻어 ‘코리아’가 탄생됐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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