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와人드'는 되감는다는 영어 단어 '리와인드(rewind)'와 사람을 뜻하는 한자 '人'을 결합한 것으로서,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스포츠서울 최민지 인턴기자] 이름만 들어도 삼성 라이온즈 팬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이름이 있다. 바로 라이온즈의 영원한 10번, 양준혁(48).


양준혁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기록의 사나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기록을 써 내려갔던 그의 발자취는 은퇴한 지 7시즌이 지난 아직도 KBO리그에 짙게 남아있다. 통산 최다 경기 출장(2,135경기), 최다 안타(2,318개), 최다 볼넷 출루(1,278) 등 깨지지 않은 기록들이 여전하다.


1993년 삼성 1차 지명으로 프로 생활을 시작한 그는 데뷔 첫해 106경기에 출장해 23홈런 90타점 타율 0.341을 기록하며 '괴물 신인'의 등장을 알렸다. 그해 타격왕을 차지하면서 이종범(해태), 이대진(해태), 구대성(빙그레) 등 수많은 경쟁자를 제치고 당당히 신인왕까지 차지했다.


첫 시즌(타율-장타율-출루율)을 시작으로 1996시즌(타율-최다안타-장타율), 1998시즌(타율-최다안타-출루율)에 걸쳐 세 차례나 타격 3관왕을 차지했던 그는 1998시즌 후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됐다. 트레이드 소식을 듣고 은퇴까지 생각했다던 그는 해태에서 보란 듯이 30-20을 찍으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2000년 LG 트윈스로 다시 이적했고, 2001년 타격왕과 지명타자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어느 팀에서든 제 몫을 다했다. 2001 시즌 종료 후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은 그는 친정팀 삼성으로 다시 돌아갔고, 2002년 이승엽, 마해영 등과 공포의 '이마양' 트리오를 이루며 첫 우승을 이끌었다.


당시 뛰어난 이승엽의 활약에 양준혁에게는 늘 '2인자'란 수식어가 뒤따랐지만, 2003년 통산 두 번째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고, 2007년에는 국내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2000안타를 달성하며 설움을 달랬고, 22홈런 20도루로 최고령 20-20을 달성하기도 했다.


<2007년 6월 11일 스포츠서울 1면>


양준혁 2000안타 - 신화는 계속된다


'신화는 계속된다.'


'2000 안타' 신화를 만든 삼성 양준혁(38)이 2007 프로야구가 10일 200만 관중을 돌파한 가운데 또 안타를 기록하며 3000안타와 통산 최다 홈런 기록 경신을 향한 '대망'에 가속 페달을 밟았다.


양준혁은 1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PAVV 2007 프로야구 두산과 경기에서 6회 1사 2루서 동점 중전 적시타를 때려내 2001호 안타를 기록했다. 전날엔 2안타를 몰아치며 데뷔 14년 2개월 만에 전인미답의 2000안타 시대를 열었다. 양준혁은 홈런 부문에서도 통산 323개로 장종훈의 기록(340개)을 17개 차로 뒤쫓고 있다. 올 시즌 14개의 홈런으로 홈런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는 그는 지금의 페이스라면 올해 안에 통산 홈런 부문에서도 신기록 경신이 가능하다.


그러나 삼성은 5-5 동점이던 8회 믿었던 오승환이 두산 내야수 이대수에게 2타점 적시타를 얻어맞아 5-7로 패했다. 두산은 무서운 뒷심을 발휘하며 시즌 첫 1위 자리에 올라섰고, 줄곧 1위를 달렸던 SK는 처음 3위로 주저앉았다.


KIA는 광주 SK전에서 장성호의 결승 솔로홈런과 마운드의 호투를 앞세워 3-2로 승리했다. 장성호는 10호 홈런으로 10년 연속 두 자릿 수 홈런이라는 의미 있는 기록을 세웠다. KIA 선발 신용운은 6이닝을 6안타 2실점으로 막아 승리의 밑거름이 됐고, 한기주는 14세이브를 기록했다.


한화는 청주 LG전에서 마운드의 황금 계투와 홈런 2방을 앞세워 5-1로 승리했다. 이범호는 2-1로 리드하던 8회 쐐기 솔로홈런을 터뜨려 6년 연속 두 자릿 수 홈런을 기록했다. 한화 선발 정민철은 5.1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며 5연승의 휘파람을 불었고, 구대성은 2이닝을 퍼펙트로 막고 세이브를 챙겼다.


현대는 사직 롯데전에서 17안타를 몰아치며 롯데 마운드를 맹폭, 10-3 대승을 거뒀다. 4회까지 매회 점수를 뽑으며 4-1로 앞서가던 현대는 5회 타자일순하며 8안타로 6득점, 일찌감치 승부를 갈랐다. 현대 선발 김수경은 6이닝을 4안타 7탈삼진 1실점으로 막아 6승째를 챙겼다. 롯데 내야수 이원석은 승부와 관계가 없었지만, 7회 2점 홈런을 터뜨려 대패에 실망한 홈팬들을 위로했다.


한편, 이날 4개 구장엔 총 5만 1818명의 관중이 입장해 200만 9927명으로 지난 96년에 이어 역대 3번째로 빠른 211경기 만에 시즌 200만 관중을 돌파했다. 총 관중수도 전년 대비 40%가 증가해 400만 관중 돌파에 대한 희망을 부풀렸다.


2008년 부상의 여파로 잠시 주춤하며 2군에 내려가기도 했던 양준혁은 2009시즌 통산 홈런, 통산 450 2루타, KBO 최초 350홈런 등 많은 기록을 써내려갔다. 그러나 기록을 달성하는 경기마다 팀이 지는 바람에 팬들 사이에서는 징크스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양준혁은 현역 마지막 시즌까지도 묵묵히 제 몫을 다 해냈다. 2010년 4월 30일 최초로 2300안타를 기록했고, 마지막 올스타전에서는 3점 홈런을 작렬시키며 '양신'의 존재감을 남겼다. 양준혁의 은퇴 경기는 9월 19일 대구 홈경기로 치러졌으며 그의 등 번호 10번은 영구 결번으로 남게 됐다.


은퇴 후 MBC sports+에서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양준혁 재단을 설립해 자선 경기, 야구캠프, 멘토리 야구단 운영 등 야구 꿈나무와 청소년 야구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스포츠서울은 그라운드를 떠난 뒤에도 야구와 함께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양준혁의 인터뷰를 오는 18일 공개한다.


1993년 8월 6일 양준혁이 경기에 앞서 선배 선동열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1993시즌 타격왕에 신인왕까지 수상한 양준혁(오른쪽)이 그해 MVP를 수상한 김성래(왼쪽)와 꽃다발을 든 채 환하게 웃고 있다.


1998년 4월 22일 양준혁이 해태전에서 6회 말 팀 통산 1000승을 알리는 우월 2점 홈런을 터트린 뒤 의기양양하게 홈으로 들어오고 있다.


1998시즌 올스타전 홈런레이스에서 1위를 차지한 양준혁.


98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최다 표를 얻은 양준혁과 박용오 당시 총재 등이 케이크 커팅에 앞서 촛불을 끄고 있다.


양준혁은 1998시즌 후 해태 타이거즈에 트레이드됐다.


1999년 11월 10일 한일 프로야구 슈퍼게임 4차전 2회 1사에 양준혁이 우월 홈런을 터트린 뒤 날아가는 볼을 바라보고 있다.


2000년 4월 24일 양준혁이 2억 원에 LG 트윈스와 계약한 후 신교식 당시 LG 야구단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2000년 5월 14일 삼성전에서 4번 타자 양준혁이 1회 초 3점 홈런에 이어 2회 초 또다시 우월 솔로 홈런을 날린 뒤 친정팀 더그웃을 향해 헬멧을 벗어들며 의미 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프로야구 2001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양준혁이 지명 타자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2001년 시즌 후 양준혁은 계약기간 4년 23억 2000만 원에 마이너스 옵션 6억 원, 플러스 옵션 4억 원에 삼성과 계약했다.


2002년 양준혁은 우여곡절 야구인생에서 친정팀 삼성에 돌아와 첫 우승을 확정한 뒤 이승엽을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05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있는 진갑용(왼쪽)과 양준혁.


2006년 5월 16일 두산전에서 1회 말 1사 후 우월 2점 홈런을 날리며 당시 한국프로야구 최다 타점인 1146타점 신기록을 세우고 있는 양준혁.


2007년 6월 9일 두산전, 9회 초 1사에서 타석에 들어선 양준혁이 2000안타의 대기록을 세우며 1루 베이스를 밟았다. 당시 선동열 삼성 감독이 건넨 꽃다발을 들고 2만여 관중이 보내는 환호에 두 손을 번쩍 들며 화답하고 있다.


2010년 9월 19일 양준혁의 은퇴경기날, 그는 야구장 밖에서 팬들과 기념촬영을 진행했다.


은퇴 경기 첫 타석에서 삼진을 당한 양준혁이 은퇴 모티브를 준 당시 SK 와이번스 김성근 감독에게 인사하고 있다.

julym@sportsseoul.com


사진ㅣ스포츠서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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