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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생각이 세상을 창조한다고 했다. 고대 올림픽의 탄생도 그렇다. 전쟁으로 피폐한 그리스 도시국가의 간절한 염원과 바람이 고대 올림픽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했다. 신의 제전이라는 이름을 빌려 지옥같은 전쟁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고안된 게 바로 고대 올림픽이다. 원활한 선수 출전과 관중 확보라는 미명하에 올림픽 전후 3개월동안 모든 폴리스는 전쟁을 멈추는 휴전을 약속함으로써 넌덜머리 나는 살육의 피바람에서 잠시 벗어났다. 올림픽은 전쟁으로 찌든 폴리스의 돌파구였고 이는 곧 평화의 제전이라는 새로운 가치로 승화된 빅이벤트였다. 합리적 이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긴 그리스인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고대 올림픽의 신성한 휴전은 ‘에케체이리아(ekecheiria)’로 불렸다. 그리스어로 ‘무기를 내려놓다’는 뜻의 ‘에케체이리아’는 올림픽을 관통하는 상징적 의미로 지금도 여전히 유용하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코앞에 다가오면서 북한의 올림픽 참가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어 천만다행이다. 오랫동안 끊겼던 남북한 고위급 회담이 9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개최되는 가운데 북한의 올림픽 참가문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남북한 관계개선 방안 등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대화가 뒤늦은 감은 있지만 양측이 마음의 문을 열고 올림픽의 기본정신에 충실해 한국이 개최하는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해 대회를 더욱 빛내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최근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유독 강조하고 있는 올림픽 유산(legacy)은 물질적인 게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올림픽 무브먼트의 확산에 도움되는 정신적 가치가 올림픽 유산에 더욱 부합할 수 있다.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에서 ‘에케체이리아’ 전통과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는 가장 훌륭하고 고귀한 올림픽 유산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다만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논의하는 고위급회담에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과욕이 화를 부른다고 복잡다단한 정치적 문제를 북한의 올림픽 참가와 연계해 물밑에서 거래하는 일은 자제했으면 좋겠다. 모든 문제가 복잡하게 연결돼 무 자르듯 싹둑 자르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올림픽 헌장에 나와있듯이 스포츠는 정치와 권력에서 자유로워야 하기에 드리는 충고다.

북한이 참가하게 되면 더욱 부각될 올림픽의 ‘에케체이리아’ 정신은 지속가능한 가치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동지역과 함께 세계의 화약고로 돌변할 수 있는 지역이 바로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다.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일본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와 미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는 동북아시아에서는 공교롭게도 세 차례의 올림픽이 잇따라 열리게 돼 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2020도쿄하계올림픽 그리고 2022베이징동계올림픽이 동북아시아에서 잇따라 개최된다. 국제 분쟁지역으로 돌변할 수 있는 지역에서 세 차례 연속 올림픽이 열리기는 이례적이다. 올림픽의 ‘에케체이리아’ 정신을 되새기게 하는 하늘의 조화일지도 모른다.

올림픽 유산은 무엇을 남기느냐가 아니라 남겨진 그 무엇이 어떤 메세지를 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에케체이리아’ 정신은 세 차례 연속 올림픽이 열리는 동북아시아 올림픽역사에서 가장 의미있는 올림픽 유산으로 남을 수 있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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