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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이 아름다운 도시에 막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자그레브·두브로브니크(크로아티아)=스포츠서울 이우석기자] 동유럽 그 도시의 연말은 화려했고 또 흥겨웠다. 모두 우루루 몰려나와 즐기는 그 가운데에 슬쩍 낄 수 있었다는 것은 올해 내 마지막 행운인 듯 했다.모처럼 유럽에 갔다. “왜 이리 오랜만에 왔냐” 유럽연합 출입국 사무소에서 그리 물어보진 않았지만 자그레브 공항에 내려 ‘눈 내리는 대림절 조형물’과 마주치는 순간부터 가슴이 심하게 벅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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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가장 멋진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인기 높은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파는 것은 비슷비슷하다.
그동안 몇 번의 방송 프로그램이 없었대도 이미 크로아티아는 한국인들에게 ‘핫’한 여행지가 됐을 것이다. 고색창연한 성곽이 두르고 있는 중세풍 도시, 아드리아 해의 아름다운 바다와 옹기종기 모인 붉은 지붕의 멋진 색감 대비. EU국가 중 가장 저렴한 편에 속하는 물가(군밤은 비싸다)와 짜고 맛있는 음식은 한국인의 여행지 선정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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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 풍경. 옐라치치 광장 앞 야간 조명이 아름답다.
‘크로아티아’는 다소 낯설다. 이런 이름이 생긴 것이 사실 얼마 안되기 때문이다. 사실 크로아티아 인들도 낯설긴 마찬가지일 테다. 그들은 스스로 흐르바트스카(Hrvatska)라 부른다.(세상에나!) 좀처럼 안외워지는 그런 이름의 나라에 다녀왔다면 어디 자랑이나 하겠나.크로아티아는 1992년 유고슬라비아(중년들에겐 이 나라에서 1973년 열린 사라예보 세계탁구대회에서 이에리사 선수가 금메달을 땄던 사실로 익숙하다) 연방이 해체되면서 생겨난 이름이다. 1991년 6월27일 유고 연방군이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연쇄 독립을 막기 위해 슬로베니아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시작됐다. 결국 1년 만에 유고슬라비아 연방국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사실 이 이름도 문제가 많다),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 등 6개 국가(왜 서로 비슷하지 않지? 유고란 이름은 어디갔을까?)로 분리됐다.이중 이탈리아 반도 동쪽 건너편 아드리아 해에 면한 크로아티아는 이 아름다운 바다 풍광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기나긴 해안선을 독차지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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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한가운데의 자그레브는 아름다운 불빛으로 수많은 여행객을 불러모은다.

◇거리거리에 성탄빛, 자그레브

아무튼 최종 목적지인 자그레브 행 터키항공에 몸을 실었다 내릴 때까지 내가 아는 크로아티아 출신 인사라고는 하이킥 잘 차는 미르코 크로캅(UFC선수) 밖에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예명(경찰 출신이라 크로캅)인게 다행이지 본명(미르코 필리포비치·Mirko Filipovic)으로 한다면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했을 것이다.

알고보니 당연히 이탈리아 출신으로 알고 있던 동방견문록의 마르코 폴로(1254~1324)부터 에디슨을 능가했다는 발명왕 니콜라 테슬라(1856~1943)가 이곳 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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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까지 자그레브에는 대림절 축제로 많은 시민들이 몰려나와 로맨틱한 겨울을 즐긴다.

아무튼 자그레브에 도착했을 때는 아침이었으며 한국보다 춥지 않아 깜짝 놀랐다. 대림절(성탄 전 4주간을 말함)을 쇠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는 한마디로 거대한 화려한 축제장이었다. 연말까지 이어지는 대림절(Advent)은 도시 분위기를 붕붕 띄워놓고 있다.

축제를 즐기려 도심으로 몰려나온 수많은 키 큰 남녀들과 그들에게 공예품과 데운 와인(Kuhano Vino)을 파는 역시 키가 큰 노점 상인들. 그리고 깔깔대며 스케이트를 즐기는 키 큰 청소년들이 나지막한 자그레브 시가지를 한가득 메우고 있었다.

‘덩크슛’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닐 듯 기골이 장대한 이 발칸반도의 청년들은 죽죽 뻗은 고딕과 바로크 양식의 중세·근대 건물들과도 퍽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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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바라본 자그레브 어퍼타운.

자그레브가 자랑하는 대림절 크리스마스 마켓(2015~2017년 유럽 크리스마스 여행지 1위)을 도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크리스마스 한달 전 시작해 새해까지 이어진다. 축제가 끝나도 가로등과 건물을 장식한 도심 야경은 그대로 이어진다고 한다.

도시는 거대한 스타벅스라도 되는 듯 캐럴이 하루종일 흐른다.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한데 어울려 노점에서 소시지를 사먹고 맥주와 와인을 마신다. 근처에 서성이는 내가 더욱 춥기를 바라는 와인 장수는 난해한 표정으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와인잔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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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레브 도심 곳곳에서 펼쳐지는 흥겨운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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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레브 도심을 가로지르는 트램. 무척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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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레브 도심 곳곳에는 대림절 축제를 장식하고 있다.

물건은 대동소이했다. 듣기와는 달리 밭을 가는 김태희는 없었지만 애견용품을 파는 매건 폭스는 있었던 것 같다. 크로아티아 특유의 붉은 색으로 장식한 공예품이 눈길을 끈다. 국기에도 새겨진 고유의 붉은 체크 무늬(크로캅이 경기중 입는 팬티의 그 문양) 이외에도 붉은 색 하트 자석과 열쇠고리 등을 판다. 미셸 파이퍼처럼 생긴 주인이 파는 자석에 철핀처럼 끌려간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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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레브 360에서 바라본 야경.

하지만 이런 점에선 무척 굳건한 나는 애견용품이나 자석 대신 노인이 파는 군밤을 샀다. 반 평생 유고슬라비아 국적이었을 그 노인은 주름진 손으로 군밤 열알 정도를 봉투에 주워담고는 40쿠나(약 7600원)나 받아 챙겼다. 미셸 파이퍼가 파는 자석도 20쿠나 밖에 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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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 겨울의 자그레브는 재미있고 흥겹고 즐거운 볼거리가 많다.

도시는 그리 크지않아 몇 바퀴 걸어서 돌다보면 끝이지만, 건물이나 장식에 하나하나 의미를 새겨 들여다 보고 거리 공연을 즐기다 보면 겨울의 하루는 무척 짧다. 다만 내일도 모레도 계속 머무른다면 일상이 매번 비슷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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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레브 대성당.

어퍼타운과 전망대는 강력 추천할만 하다. 어퍼타운은 로워타운과 구분되는 개념으로 반 옐라치치 광장을 중심으로 윗쪽으로 오르는 성곽 도시를 말한다.

광장에서 살짝 올라가면 쌍둥이 첨탑이 우뚝한 자그레브 대성당이 있다. 전쟁, 화재, 지진 등으로 무너져 현재의 모습은 복원한 것이다. 지금도 일부 공사 중이다.

관광객이 가장 많은 곳으로 성수기에는 소매치기들이 많다고 하는데 요즘은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군밤 장사를 하는지 나오지 않았다. 성당 안에도 종교를 불문한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내부는 외부보다 더욱 웅장하고 엄숙했다.

어퍼타운으로 오르는 길은 좁은 골목 계단과 푸니쿨리라 불리는 짧은 트램 중 하나를 고르면 된다. 마침 로트르슈차크 탑에서 정오를 알리는 대포를 쏜다고 해서 서둘러 골목을 올랐다. 나중에 알고보니 대부분 관광객들의 동선과는 반대로 가는 바람에 헷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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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는 유럽에서 가장 인기있는 연말 여행지로 꼽히는 곳이다. 어퍼타운 오르는 길.

관광객들이 탑 아래 모여있는 가운데 창문이 열리고, 곧 ‘펑’ 소리와 함께 허연 포연이 허공으로 퍼져나갔다. 도시 전체에 12시가 됐으니 밥을 먹으라는 무시무시한 알람이다. 원래는 시종(時鐘)이 있었는데 누가 종을 훔쳐가는 바람에 대포를 쏜다고 했다. 이 대포마저 훔쳐간다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도 쏠 기세다.

탑을 지나치면 색실로 짠 듯 예쁜 지붕을 얹은 성 마르코 성당이 나온다. 골목 멀리서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가는 길에는 미술관과 박물관이 여럿 있다.

이중 가장 인상깊었던 곳은 바로 이별 박물관(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이다. 관계 단절, 즉 이별을 테마로 한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작지만 아주 볼거리가 많다. 세계 각국에서 기증한 다양한 전시품엔 눈물겨운 사연이 가득했다. 한글 자료도 제공한다.

네덜란드 한 여성의 전 남편이 17살 사랑을 시작했을 때 줬던 스누피 인형도 외로이 전시되어 있다. 스누피를 기증한 그녀는 30년간 세 아이를 낳고 살면서 단 한번도 자신을 사랑한 적 없었다고 한 전 남편을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고 남겼다. 죽은 강아지가 갖고 놀던 햄버거 모양 장난감, 한 순간 만났던 ‘선수’가 벗어던져놓고 간 농구 유니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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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박물관의 전시품. 제목은 ‘자살한 어머니의 쪽지’다.

예전 남자친구와 학교를 ‘땡땡이’치고 놀러 간 플로리다 호수의 사진. 빛바랜 사진에는 벤치를 향해 화살표가 그려졌고…(그 다음은 기사에 쓸 수 없으니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남녀 간 애정과 관련한 전시품만 있는게 아니다. 전시물 중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 아픈 사연은 바로 ‘자살한 어머니의 마지막 쪽지’였다. 암스테르담에 살던 H에게 그의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짧은 덕담을 남겼고, H는 이별박물관에 이를 기증했다.

신음소리 비슷한 것을 남기고 입구로 나오니 슬픈 이별을 테마로 한 각종 기념품들이 나를 즐겁게 만들었다. 안좋은 기억 지우개, ‘네 엉덩이가 계속 커지길 바란다’는 절실한 메시지가 담긴 초콜릿 등을 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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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흥겨운 것만은 아니다. 경건하고 엄숙하게 연말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어퍼타운 오르는 길, 성 마리아 성당에서 기도하는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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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게이트 내에는 항상 촛불을 켜고 봉헌을 드리는 가톨릭 신자들이 있다.

어퍼타운은 성곽 도시다. 중심 광장에 성 마르코 성당이 있다. 삐죽한 탑 하나를 옆에 둔 새하얀 건물인데 벽에는 두개의 문장이 그려졌다. 하나는 크로아티아·달마티아·슬라보니아의 것이며 또 하나는 자그레브의 문장이다.

원래 관문은 스톤게이트. 안에는 성모 초상이 있고 매일 신도들이 찾아와 촛불을 밝힌다. 18세기 대화재에도 성화는 훼손되지 않아 성지가 됐다고 한다. 어퍼타운을 나오면 예상처럼 기념품 가게들이 도열해있고 맛좋은 식당도 많다. 고풍스러운 골목에서 짠 음식과 빵을 맛볼 수 있다. 커다란 넥타이를 내건 가게를 봤는데 알고보니 넥타이는 바로 크로아티아에서 유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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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에서 유래한 넥타이. 넥타이 파는 곳이 많다.

한국에서 고등학생이 되면 비로소 목을 조르기 시작하는 넥타이는 원래 크로아티아의 것이다. 17세기 30년 전쟁 당시 가톨릭 프랑스를 지원하기 위해 전장에 나선 크로아티아(당시 합스부르크 크로아티아) 병사의 무사생환을 기원하며 가족들이 매어줬던 붉은 천에서 기원했다. 크로아티아 군이 전승 후 파리에서 개선행진을 할 때도 매고 있었다. 호기심이 강한 루이14세가 “저게 뭐냐”고 물었고, 질문 뜻을 제대로 이해 못한 시종장(예전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구나)이 ‘크라바트(크로아티아 군인)’이라고 알려줬다.

아무튼 이때부터 패션 강대국 프랑스 귀족 사이에 대유행하게 된 크라바트(Cravate)는 넥타이가 되어 지금까지 남녀노소에게 굉장히 중요한 패션 아이템이 되어 세계인의 목을 조르고 있다.

가난한 한국인 여행자는 고르고 고른 끝에 트로트 가수의 것과는 좀 다른 느낌의 나비 넥타이를 하나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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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자그레브 크리스마스 마켓.

해가 일찍 진다. 어둑해지면 더 좋다. 온 도시를 성탄불로 치장한 자그레브 야경이 근사하기 때문이다. 다소 생뚱맞은 현대식 건물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전망대 구실을 하는 자그레브360이다. 12층에 카페가 있고 사방으로 화려한 자그레브의 야경을 둘러 볼 수 있다. 공연을 펼치는 옐라치치 광장과 어퍼타운, 멀리 스케이트장이 있는 중앙역 광장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입장료는 어른 기준 30쿠나(약 5400원)인데 아이들 기준이 우습다. 무료인데 3살부터 신장 150㎝까지는 15쿠나를 내야한다. 평균신장이 세계에서 가장 큰 축에 속하는 크로아티아 인은 1.5m가 넘으면 어른으로 친다. 아마도 초등학생 이상부터 돈을 많이 받아내기 위한 상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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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레브 도심 풍경.

자대(자그레브)입구 근처에 미마라(Mimara) 미술관이란 곳이 있는데 아주 재미있는 곳이다. 자칭 르누와르와 루벤스 등 세계적 거장의 명화들을 비롯해 다양한 골동품과 예술작품을 전시해놓았다는데 모든 작품을 아무런 장애없이 전시했다. 동화 ‘플랜더스의 개’에서 넬로는 루벤스의 그림을 한번이라도 보기 위해 숨을 거두기 전 성당에 들어가 그림 앞에서 파트라슈와 함께 얼어죽는다. 하지만 이곳에선 그 귀중한 작품을 마음대로 사진찍고 심지어 손으로 만지려면 그리 할 수도 있다는 것은 정말 미스터리하다. 그림을 저 멀리서 봐야하는 파리 오르셰 미술관 같은 곳에선 ‘택도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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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의 루브르’ 미마라 박물관. 매우 의심스럽긴 하지만 이것저것 볼것은 많다.

자그레브 출신 수집가이자 미술품 복원가 토피치 미마르(1898~1987)가 평생 모은 개인 소장품을 이곳에 기증했다. 선사시대부터 20세기에 이르는 회화 450점, 조각품 250점, 비단과 공예품 1000점 등 모두 3750점의 소장품을 전시 중이다. 국가별 시대별 미술품을 모아놓았는데 살펴보면 의심이 가는 대목이 많다.

여행가이드나 위키트리 사전에는 이곳을 ‘위작(Fake art) 미술관’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박물관 측은 여전히 모두 진품 임을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크로아티아 정부 역시 ‘동유럽의 루브르’라 자칭하며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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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아 해의 진주, 두브로브니크.

◇아드리아 해의 진주, 두브로브니크

자그레브를 떠나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 불리는 두브로브니크로 갔다. 이 어려운 이름을 가진 항구도시는 세계적으로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중세 도시. 거미줄처럼 이어진 골목과 높은 성벽, 그리고 붉은 지붕이 푸른 색 아드리아 해를 만나 고운 색채의 조화를 이뤘다.

두브니크로(뭐였더라?)아니 아까 그 도시는 해상무역으로 한때 잘 나가던 도시 국가였다. 뒤로는 높은 산맥(보스니아)이 있고 앞에는 바다, 그리고 중간에는 20~30m에 이르는 철옹성같은 성벽으로 무장하고 외침에 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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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아드리아 해에 펼쳐진 빨간색 지붕의 물결.

크로아티아는 독립할 때 해안선의 대부분을 독차지 함으로서 해양강국이 됐다. 잘츠부르크의 대표적인 스토리,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면 폰 트랍 대령이 나오는데 사실 그는 해군 소속이다. 내륙국가 오스트리아에 해군이라니…. 알고보니 그 역시 크로아티아 인이었다.

아무튼 해안선 남쪽 끝자락 두비니로브크(어쨌든 다른 곳을 얘기할 리가 없잖은가)를 가려면 여권을 꺼내들어야 한다. 칠레처럼 기나긴 해안선을 따라 크로아티아의 영토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잠깐 뚝 끊겼다 다시 이어진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너희도 항구 하나쯤 있어야지”하며 떼준 것이 아니다. 원래 18세기까지 두부리노크치(?)가 있던 라구사 공화국은 오스만 제국의 보호국이었고, 그 윗쪽 달마티아는 베니치아 공화국의 영토였다. 이들 사이의 네움 지역(약 21㎞ 해안선)을 DMZ같은 완충지대로 뒀는데 훗날 유고연방 해체 때도 이렇게 영토가 확정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섬처럼 월경지로 남았다.

아무튼 오랜 세월 지중해 중심 도시였던 터라 두브로베니스크(?) 시민들은 지금도 자부심이 상당히 세다. 물론 그 성곽처럼 키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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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성곽 안에 집들이 층층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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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향해 우뚝 선 로브리예나츠 요새. 굳건한 이미지지만 무척 아름답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성곽의 라인과 로브리예나츠 요새는 애초의 그 용도와는 달리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한다. 파란 물 앞에 우뚝 선 망루와 대포 진지, 뒤로 붉은 지붕들이 산쪽으로 층층 이어진다. 구시가지로 들어가기위해선 우선 해자처럼 공중 다리가 놓인 필레문을 지나야 한다. 이때부터 웅장하고도 높은 돌담 사이로 구불구불한 길이 200m 정도 이어지는 것이 꼭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에 등장하는 배경같다. 끝에 과연 무엇이 나올지 궁금한 돌담길이 끝나면 매우 평안하고 멋진 비밀의 도시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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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최근 스타워즈를 촬영했을만큼 비현실적인 분위기의 두브로브니크의 성곽.

사실 이 견고하고도 근사한 성벽은 1990년 유고 독립전쟁 당시 집중 포화로 무너져 없어질 뻔 했다. 유고슬라비아 연방군 함대가 두브로브니크(!)성을 에워싸고 650차례 포격을 가했다. 유네스코 유산이던 이 성벽은 다행히 국제사회의 원조로 복원됐지만 아직도 선연한 총흔과 포흔이 곳곳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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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니크 성곽 안은 판타지 소설에서나 등장할 듯한 중세유럽도시의 풍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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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러운 유럽의 성곽, 신부님과 무슬림 여성이 함께 이 도시를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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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석으로 포장된 스트라둔. 비가 와도 운치가 있는 좁은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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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상점이 입점한 중세 옛도시 두브로브니크 스트라둔의 조화로운 풍경.

도시를 가로지르는 고풍스런 스트라둔(Stradun)과 플라차에도 역시 열심히 성탄불을 밝혔고 다들 부지런히 소시지를 굽고있다. 자그레브보다 관광객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더욱 흥겹고 늦은 밤까지 이어진다. 연간 400만 명이 이곳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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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전망창을 통해 아드리아 해의 푸른 물이 보인다.

이 자그마한 성곽 안에 성당만 두 곳에다 그리스정교 교회당도 있다. 성 블라이세 성당, 성모승천 대성당 등이 있어 스카이라인이 멋지다. 바다에서 산쪽으로 이어진 골목도 느낌이 좋다. 건물과 건물 사이로 난 좁은 골목은 성곽 윗부분까지 격자로 이어진다. 전체를 대리석으로 포장한 이 중세도시의 거리는 옛모습을 오롯이 간직한 가운데 다양한 현대식 상점이 입점해 있어 신구의 멋진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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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니크는 베네치아 식 붉은 지붕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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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길에 올라 걷는 투어는 다양한 풍경을 선사한다.

이곳에선 성벽과 스르드(Srd) 산 전망대를 올라야한다. 오후 3시까지만 진행하는 성벽투어는 약 2㎞ 길이 성벽을 한 바퀴 걸어서 돌아나오는 코스다.

원래는 도시를 수호하기 위해 만든 길인데 지금은 훌륭한 경관 탐방로가 됐다. 푸른 바다와 요새, 성곽 내 주택과 건물이 번갈아 눈에 들어온다. 바다로 향한 벽에는 대포를 겨누는 포대 구멍이 있는데 지금은 전망 창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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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르드 산으로 오르는 길에선 성곽과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보다 더 높은 스르드 산 전망대에 오르면 드넓은 바다와 성곽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바다에서 바로 치솟아 인근 풍경을 조망하기엔 더할 나위없다. 반대편엔 또 다른 느낌의 보스니아 땅의 대평원과 이를 가로지르는 산맥을 바라볼 수 있다.

해질녘엔 풍경이 더욱 아름답다. 바다와 성벽, 대리석 건물의 색이 수시로 변한다. 로쿠룸 섬 역시 낙조의 분홍 기운을 받아 아름답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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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니크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한 한국인 부부. 눈부신 풍광만큼이나 아름다운 그들의 인생 2라운드가 이제부터 쭈욱 펼쳐질 듯 하다.

폭풍 전야라 바람이 심하게 몰아치는 이곳에서 한국인 신혼부부를 만났다. 우린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결혼 생활의 고난을 들려줄까 했지만 어차피 고막에서 튕겨버릴 듯 매우 견고한 다정스러움으로 방패막을 치고 있었다.

일을 하러 온 나, 그리고 그야말로 달콤한 허니문 여행을 떠나온 그 들. 똑같이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들의 눈에 덧씌워진 ‘로맨틱 필터’는 아드리아 해의 진주가 더욱 선명하게 기억에 남을 듯 보였다.

demory@sportsseoul.com

크로아티아 여행정보●가는길=

크로아티아 직항편은 없다. 유럽의 관문 이스탄불을 경유하는 터키항공을 이용하면 자그레브와 두브로브니크로 입출국이 가능하다. 터키항공은 인천∼이스탄불 구간을 주 11회 운항하며, 이스탄불∼자그레브는 주 10회, 이스탄불∼두브로브니크는 주 4회 운항한다.

이스탄불 경유 자그레브 행, 두브로브니크에서 이스탄불로 돌아와 인천 행을 기다릴 때 공항 대기시간이 2∼3시간 정도로 최적의 환승 스케줄을 자랑한다.

한편 터키항공은 마일리지 프로그램 마일즈&스마일즈 회원을 대상으로 생일 또는 기념일(전후 3일까지 이용 가능)을 맞이한 이들에게 기내에서 축하 케이크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여행정보=

전원 콘센트는 110V 한국과 같다. EU 가입국가지만 통화는 자국 화폐(KN)를 쓴다. 1쿠나는 약 180원이다. 자그레브에서는 내년 1월 1일까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대중 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대림절 기간에는 트램 등 시내 대중교통과 케이블카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둘러볼만한 곳=

크로아티아의 자랑거리인 플리트비체는 16개의 호수와 90여개의 폭포를 품은 자연국립공원이다. 겨울이지만 아름다운 물빛과 다양한 탐방코스를 자랑한다. 맑고 고운 호수와 우뚝 선 절벽들은 설악산과 알프스를 섞어놓은 듯 이국적이면서도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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