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창훈
디종 FCO 권창훈. 출처 | 디종 FCO 트위터 캡처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유럽파 중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선수가 23살 권창훈(디종)이다. 손흥민과 기성용은 이미 유럽에서 어느 정도의 수준을 인정받았고 이들의 뒤를 이어 한국 축구를 대표할 선수가 필요한 시점에서 권창훈이 쑥쑥 성장하고 있다. 프랑스 시민권을 갖고 있는 바히드 할릴호지치 일본 축구대표팀 감독도 한국을 거론하며 “프랑스에서 뛰는 유명한 선수도 있다”는 말로 그를 콕 찍었다. 지난해 이맘 때 수원을 떠나 프랑스 1부리그 승격팀 디종으로 이적한 그는 6개월 적응기를 거친 뒤 올시즌 펄펄 날고 있다. 올시즌 전반기 19경기 가운데 17경기를 뛰며 5골을 넣었다. ‘신태용호’에서 러시아 월드컵 엔트리 승선은 물론 주전까지 꿰찰 것으로 보인다.

격세지감이다. 2012년 수원 산하 매탄고 시절의 권창훈을 ‘한국 축구의 샛별’로 소개하는 기사를 썼던 기억이 아련하다. 당시만 해도 그는 한 살 위 형들 속에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쳐보이는 19세 이하(U-19) 대표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때부터 권창훈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2013년 수원 성인팀에서 8경기를 뛰며 ‘예열’하더니, 2014년 20경기로 늘려나가며 프로 데뷔골까지 쐈다. 그 해 겨울엔 아시안컵을 준비하던 성인 대표팀에 전격 호출 받는 기염을 토했다. 2015년엔 수원의 확고부동한 주전이 됐고 그해 8월 성인 대표팀 첫 경기도 치렀다. 지난해 리우 올림픽 핵심 미드필더로 활약하다가 수원의 FA컵 우승에 공헌하고 유럽으로 떠났다. 올해 활약은 앞에서 소개한 대로다.

권창훈의 ‘물 흐르는 것 같은’ 발전상을 보면서 축구인들이 하는 얘기가 있다. 유스팀→1군 적응→1군 주전→대표팀 데뷔→유럽 진출이라는 ‘순리’에 역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원에서 힘든 시간을 지낸 끝에 K리그에서 최고의 선수가 됐고 이후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으며 해외로 나갔다. 2010년 이후 국내 프로팀은 너나 할 것 없이 유소년 키우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권창훈은 자신을 어린 시절부터 키워준 소속팀 수원에 승리와 우승, 그리고 적지 않은 이적료(16억원)를 안겼다. 위기론이 불거지고 있으나 K리그의 수준은 유럽과 비교해 그렇게 떨어지는 편이 아니다. 디종에서 적응을 마치자마자 그의 왼발이 불을 뿜고 있다는 점은 K리그에서 인정받는 선수가 해외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K리그 유스는 법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다. 많은 팀들이 산하 유스팀의 선수들을 무료로 육성하지만 해당 선수가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법적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다는 맹점이 있다. 그래서 몇몇 특출난 유망주들이 고교 졸업 때 해외의 러브콜에 솔깃하면 구단들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게 된다. 각 팀이 유스를 운영하는 목적은 성인팀에서 쓸 선수를 가장 적은 비용으로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1년에 한 명 나올까말까한 프로급 선수를 발굴하기 위해 팀을 꾸리고 많게는 10억원에 가까운 투자를 한다. 그런 다음 국내 무대에서 ‘쓰기 위해’ 키운다. 솔직히 국내 성인팀에서도 증명되지 않은 선수가 해외에서 얼마나 성장할지, 얼마나 많은 가치를 인정받을지를 가늠하기 어렵다.

권창훈도 고교 졸업 무렵부터 이런 저런 유혹에 시달렸지만 묵묵히 한 길을 보고 갔다. 권창훈의 사례는 선수의 축구적인 성장은 물론 인간적인 성장이라는 두 측면에서 롤모델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유스팀을 운영하는 구단, 그 속에서 각종 혜택을 받으며 꿈을 키우는 어린 선수들이 모두 새겨야 할 길이다.

축구팀장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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