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와人드'는 되감는다는 영어 단어 '리와인드(rewind)'와 사람을 뜻하는 한자 '人'을 결합한 것으로서,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스포츠서울 김병학 인턴기자] 2015년 5월 17일. 대구구장서 열린 프로야구 삼성- NC 경기가 끝나고 한 선수에게 이목이 집중됐다. 긴 부상을 털고 일어나 1789일 만에 선발승을 거둔 NC 투수 박명환(40)이었다.


그 흔한 '1승'을 쌓는데 참 먼 길을 돌아왔다.


박명환이라는 이름은 1995년에 열린 '제 25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충암고 3학년이었던 그는 총 6경기에 나서 42.2이닝 동안 탈삼진 50개, 평균자책점 0.84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때의 활약을 인정받아 1996년 당시 고졸 선수 중 최고 계약금인 3억원을 받고 OB 베어스(두산 베어스 전신)에 입단했다.


OB 유니폼을 입은 박명환은 꽤 빨리 두각을 드러냈다. 1998년 14승 11패 평균자책점 3.22로 데뷔 첫 두자리 승수를 쌓는데 성공했다. 187이닝 동안 181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오른손 파워피처의 대담함도 선보였다. 이때부터 박명환은 '닥터 K'라 불리기 시작했다.


남은 잠재력을 펼치려던 찰나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이후 재활을 통해 재기에 성공한 박명환은 2002년 14승을 거두며 '두산의 에이스'로 우뚝 섰다. 2004년에는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26경기에서 12승 3패 평균자책점 1위(2.50), 탈삼진 1위(158⅔이닝 162탈삼진)를 기록하며 '닥터 K'의 면모를 다시 한번 발휘했다.


삼성 배영수(한화)-롯데 손민한과 함께 '우완 트로이카'로 명성을 떨치던 박명환은 그 해 4년 40억 원에 '잠실 라이벌' LG 트윈스로 돌연 이적했다. FA 대박 시대의 포문을 열며 엄청난 기대를 받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의 야구 인생은 이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2007년 처음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 27경기에서 10승 6패 평균자책점 3.19을 기록했다. 기대 만큼은 아니지만 무난한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2008년 어깨 부상을 입었다. 팔을 들어 올리지도 못해 수술까지 받을 정도의 심각한 부상이었다. 재활이라는 긴 터널에 들어선 그는 좀처럼 다시 마운드에 서지 못했다. 부상에 시름하는 동안 거둔 성적은 고작 115이닝 4승 뿐. 2010년 5억원이던 연봉이 무려 90%나 삭감돼 5000만원이 되는 수모를 겪었다.


박명환은 거액의 연봉과 계약금을 쥐어주며 무한한 기대를 줬던 LG에서 꼭 재활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방출 통보와 함께 무참히 짓밟혔다. 그렇다고 주저 앉지는 않았다. 공개 트라이아웃을 열며 재기의 열의를 보였고 과거 두산에서 그를 가르쳤던 김경문 감독이 손을 내민 덕분에 2013년 NC 다이노스의 유니폼을 입으며 한번 더 기회를 잡았다.


<2015년 5월 18일 스포츠서울 6면>


1789일만에 감격승 박명환 "NC 유니폼 감사…보답하겠다"




NC 베테랑 투수 박명환(38)이 1789일 만에 감격적인 승리를 안았다. LG 유니폼을 입고 있던 2010년 6월 23일 문학 SK전에서 선발승을 거둔 이후 5년의 긴 시간을 기다린 값진 승리다. 잊혀져가던 베테랑 투수가 손민한에 이어 다시 한 번 NC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것을 알리는 반가운 소식이기도 했다.


박명환은 17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KBO리그 삼성과 원정경기에서 시즌 두 번째 선발 등판에 나서 6이닝 동안 단 2안타만 맞고 4개의 삼진을 솎아내며 무실점으로 막아내 2-0 승리를 이끌었다. 무엇보다 사사구가 한 개도 없었던 제구력이 일품이었다.


직구 최고 구속은 142km에 머물러 전성기 시절 150km을 웃도는 강속구를 구사하던 파워 피쳐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변화구 투수'로서 성공적인 변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6회까지 투구수 78개의 경제적인 피칭 내용을 보여줬는데 직구(35개)보다 변화구(43개)의 구사 비율이 더 높았다.


125km에서 139km까지 속도의 변화를 준 주무기 슬라이더의 위력이 살아있어 과감한 몸쪽 직구 승부를 펼칠 수 있었다. 변화구 43개 가운데 28개가 슬라이더였다. 직구 35개 중 몸쪽 16개, 가운데 6개, 바깥쪽 13개의 분포를 보였는데 마지막 승부구로 던진 직구 11개 중에는 몸쪽 승부가 7차례나 됐다. 변화구 승부 10개 중에는 7개가 슬라이더였다. 그 외 포크볼(8개)과 싱커(5개), 커브(2개)를 섞어 타자들의 눈을 교란했다.


6회까지 21명의 타자를 상대하는 동안 단 세 차례만 주자를 내보냈다. 1회 2사 뒤 채태인에게 첫 종전안타를 내주었다. 최형우를 1루 땅볼로 처리하며 첫 이닝을 가뿐하게 출발했다. 2,3회는 삼자범퇴, 4회에도 2사 뒤 최형우에게 우전안타를 맞았다. 역시 다음타자 이승엽을 좌익수 플라이로 처리하며 손쉽게 진화했다. 5회 다시 삼자범퇴, 6회 들어 1사 뒤 박한이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으나 원바운드된 공이 옆으로 빠지면서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으로 주자 출루를 허용했다. 그러나 구자욱을 투수 땅볼, 채태인을 유격수 땅볼로 각각 처리하며 이날 투구를 마쳤다. 큰 실점 위기조차 없었고, 상대에게 단 한차례도 2루를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피칭이었다.


그는 지난 6일 마산 KIA전에서 시즌 첫 등판해 선발 5이닝 동안 5안타 5탈삼진 2실점하며 부활을 예고한 뒤 11일 만에 두번째 등판에 나서 시즌 첫 승을 5년 만의 승리로 장식했다. 삼성전에서는 2007년 5월 19일 대구경기에 이후 2920일 만의 승리다. 그는 2006년 시즌 뒤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어 두산을 떠나 라이벌 구단인 LG로 4년간 총액 40억원의 거액을 받고 이적했으나 첫 해인 2007년에만 10승6패 방어율 3.19로 제 몫을 했을뿐 이후 부상에 시달리며 2008~2009년 무승에 그쳤고, 2010년 4승6패 방어율 6.63의 성적을 남긴 뒤 재계약에 실패하고 방출됐다.


그는 이후 3년 동안 개인 훈련을 하면서 재기의 칼날을 갈았고 지난해 연봉 5000만 원을 받고 NC에 입단해 5경기에서 2패 방어율 7.20의 성적을 거둔 뒤, 연봉이 4000만 원으로 삭감된 올해 외국인투수 1명이 빠진 선발 로테이션의 경쟁 후보 가운데 한 명으로 도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박명환은 경기 뒤 "NC 유니폼을 입게 해준 구단분들에게 감사 드린다. 보답하는 길은 이기는 것뿐이다. 삼성이 강팀인데 이겨서 기분 좋다. 5~6년 만에 승리한 것 같다. 제구가 잘됐고 몸쪽 승부가 잘돼 이길 수 있었고 투구수 조절을 할 수 있었다"면서 "김경문 감독과 인연이 있었고, 나라는 선수를 기용해 줘 감사하다. 앞으로 좋은 모습으로 보답하겠다. 방출 후 지인, 가족 등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앞으로도 그 분들의 힘을 빌어 팀에 도움되는 선수가 되겠다"고 말했다.


한화전에서 5이닝 3실점으로 시즌 7승째(5패)를 기록, 이 해에 데뷔 첫 10승 고지에 올랐다.


프로야구 2003 삼성과 개막전에서 포수 홍성흔과 볼배합 관련해 얘기를 나누고 있는 박명환



LG 입단 후 투수 봉중근(좌)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박명환



왼쪽부터 박명환, 김경문 감독, 이혜천, 손민한. NC 다이노스 아너스클럽 가입식에 참여하고 있다.


박명환은 공룡처럼 강해지고 싶었다. 1군과 퓨처스리그를 오가며 절치부심하며 재기에 힘썼다. 하지만 이미 부상으로 흠집이 난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2014년과 2015년 NC에 몸담았던 두 시즌 동안 거둔 성적은 16경기 1승 3패에 평균자책점 6점대였다. 초라한 성적만 남겨둔 채 그는 홀연히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마지막 해에 따낸 그 '1승'이 무척이나 값졌다. 당시 강타자들이 즐비했던 삼성을 상대로 6이닝 2피안타 무실점 호투로 만들어 낸 승리였다. 삼성 타자들은 2루 베이스를 밟지도 못했다. 1789일 만의 선발승. 이 승리는 박명환 커리어의 더할나위 없는 완벽한 '스완송'이 됐다.


달콤함과 쓴맛을 고루 맛봤던 그는 현재 스포츠투아이 야구학교가 운영하는 성남 블루팬더스의 투수코치가 되어 제2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오는 28일, '리와人드'를 통해 못 다한 이야기들을 공개한다.


wwwqo2@sportsseoul.com


사진ㅣ스포츠서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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