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찌개 굴다리식당
김치찌개가 더욱 맛있는 계절이다. 오랜시간 미리 끓여낸 찌개를 퍼 담아주는 굴다리식당.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글·사진=스포츠서울 이주상·이우석·황철훈기자] 추위까지 한번에 날려버리는 그 뜨겁고 새콤한 국물 맛, 진정한 밥도둑인 김치찌개 얘기다.

오싱코(일본의 채소절임)니 빠차이(중국 배추절임)가 김치와 비슷하다고 주장하지만, 세상의 어느 음식도 김치 만큼 다양하게 다른 음식의 재료로 쓰이는 것은 못봤다.

그냥 먹는 것은 물론이다. 잘게 썰어 볶고, 거기다 밥까지 다시 들들 볶아낸다. 더 잘게 썰면 두부와 만나 만두와 전병, 호빵의 소가 된다. 고깃덩이와 함께 찌거나 씻어서 생선회의 쌈을 싸는 것도 김치다. 국수와 라면에 들어가 주인공을 밀어내고 상을 호령한다. 한식이라면 어디든 당당하게 어색함이 없고 또 양식과 중국, 심지어 이탈리아 등 유럽식이라도 은근슬쩍 끼어서 태극기를 휘날린다.

뭐니뭐니해도 그중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바로 김치찌개다. 팔팔 끓는 김치찌개의 새콤하고 뜨거운 국물은 지금이 차가운 겨울 임을 순간적으로 잊게 만든다. 먹을 것이 모자라던 시절, 돼지비계 한점, 멸치 몇 마리 던져 넣고 끓여내던 것이 김치찌개다. 돼지고기 반 근이나 꽁치 통조림 하나만 있어도 온가족이 밥상에 코를 박고 떠먹던 그 고소한 국물.

한파가 휘몰아친 지금, 여느 때보다 주황색 국물 한 숟가락이 절실하다. 겨울 김장김치가 더욱 잘 어울리는 김치찌개, 그 참을 수 없는 매력을 담아내고 있는 맛집 들을 소개한다.

김치찌개 굴다리식당
동글동글한 고깃덩이가 잔뜩 들어간 김치찌개 굴다리식당.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서울 마포 굴다리식당=

일본만화 ‘심야식당(아베 야로 작)’에 등장하는 ‘어제의 카레’라고나 할까. 어릴적 먹던 진짜 김치찌개다. 오늘 해서 다 못먹으면 내일도 먹고, 그래서 더 맛있어진 그런 김치찌개다.

지금이야 대부분 눈앞에서 팔팔 끓여먹는 김치전골로 바뀌었지만, 예전 김치찌개는 대부분 그랬다. 이 집은 ‘가정식’으로 미리 한솥 끓여놓은 양푼에서 ‘스뎅’그릇에 수북히 퍼다 준다.

시큼하고 부드러운 김치도, 구릿한 돼지고기 덩어리도 잔뜩 들었다. 오래 끓여서 아삭한 맛은 없다. 대신 밥에 올려 한술 삼키면 바로 혀를 감싸는 부드러운 배춧잎의 느낌이 아주 좋다. 국물도 진하다. 김치도 돼지도 함께 오래 있어서 그런지 궁합이 딱이다. 동글동글한 고깃덩이에 김치양념이 제대로 배어 들었다.

돼지고기는 이에 닿는 느낌이 퍽 부드럽고 김치는 여기다 칼칼한 맛을 더한다. 함께 주는 생선도막이나 계란말이, 김까지 모든 반찬이 ‘집밥’을 완성하는 완벽한 조연이다.

★굴다리식당=김치찌개 8000원. 제육볶음 8000원. 계란말이 1만원.

김치찌개 굴다리식당
김치찜으로 유명한 서소문 한옥집 김치찌개.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서울 서대문 한옥집=

큼지막한 돼지고기 덩어리에 포기김치를 넣고 오래 쪄낸 ‘김치찜’으로 전국적으로 입소문이 난 집이다. 몇번 다녀봤다는 이들은 잘 모르지만, 기자는 이 주변에 오래 살아서 잘 안다. 이집은 김치찌개도 맛이 좋다. 오래 끓여낸 김치찜 국물에 시원하고 칼칼한 새로운 육수를 첨가해 다시 한소끔 끓여내면 비로소 ‘환상의 조합’이 완성된다.

전골로 먹는 집이니 당연히 ‘라면 사리’는 넣어야 손해나지 않는다. 팔팔 끓여낸 라면을 후루룩 (밥위에) 덜어먹고 김치찌개 국물을 떠 아삭한 김치와 함께 마시면 된다. 으슬으슬한 감기 기운은 물론 잃어버린 입맛을 단번에 되살려 준다.

진짜 한옥집이다. 이 계절엔 운치도 좋다. 바깥에 눈이라도 내리면 그 향이 온 동네를 뒤흔든다. 양반다리 꼬고 앉아 김치찌개에 소주 한잔 먹기 딱 좋은 날씨다. 요즘은.

★한옥집=김치찌개 8500원, 김치찜 8500원. 김치등뼈찜 2만6000원.

DSC_6309
장호왕곱창 김치찌개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서울시 순화동 ‘장호왕곱창’=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 건너편에 자리한 장호왕곱창은 곱창집이지만 오히려 김치찌갯집으로 더 유명한 집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수많은 사람이 몰려 영하의 날씨에도 긴 줄이 이어진다. 원형 양철 테이블로 채워진 식당 안은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로 시끌벅적 이다.

이 집의 김치찌개는 유난히 신맛이 특징이다. 황석어젓을 넣어 익힌 김치는 감칠맛이 살아있다. 노란 양은냄비에 묵은김치와 돼지 앞다릿살, 큼지막하게 두부를 썰어 넣고 보글보글 끓여낸다. 김치찌개가 끓기 시작하면 지체없이 라면사리를 투하한다. 곰삭은 김치맛이 밴 라면사리는 또 다른 별미다.

DSC_6303
장호왕곱창의 또 하나의 명물 ‘짤라’는 소의 내장수육을 말한다.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신맛이 느껴지는 김치찌개는 뒷맛이 개운하고 깔끔하다. 또한 칼칼한 국물은 자연스레 소주를 부른다. 김치찌개와 함께 단골로 등장하는 인기 메뉴는 ‘짤라’다. 짤라는 점심시간에만 파는 소의 내장수육으로 곱창과 두 번 째 위인 벌집양을 삶아 내놓는다. 짤라는 모양새와 달리 기름기가 쏙 빠져 연하고 부드러우며 맛 또한 담백하고 고소하다.

★가격=김치찌개 7000원, 짤라 8000원.

DSC_7027
서울 경운동 간판 없는 김치찌갯집 ‘김치찌개’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서울 경운동 ‘간판 없는 김치찌갯집’=

운현궁 건너편 골목 안쪽에 자리한 이 집은 간판 없는 김치찌갯집으로 유명하다. 골목 입구로 들어서면 느닷없이 ‘김치찌개’, ‘칼국수’, ‘콩국수’라고 쓰인 글자가 눈길을 끈다. 골목안은 벌써 긴 줄이 늘어섰다. 기다림 없이 바로 식사를 하는 방법도 있다. 가게 밖 야외테이블을 선택하면 된다. 대신 추위를 견뎌야 한다.

이 집의 특징은 김치찌개 맛도 맛이지만 찌개에 넣어 먹는 3가지 사리가 특징이다. 김치찌개의 단골로 등장하는 라면사리(1000원)를 비롯해 칼국수사리(2000원) 그리고 가장 인기 있는 오뎅(어묵)사리(2000원)다.

DSC_7019
서울 경운동 골목에 자리한 ‘간판없는 김치찌갯집’과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오뎅사리를 넣고 끓인 김치찌개는 끓이면 끓일수록 돼지고기의 기름진 맛과 어묵의 고소한 맛이 더해져 국물맛이 더욱 풍성해진다. 보들보들한 어묵은 김치 국물이 깊게 배들어 매콤하고 고소하다. 라면사리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나온다. 덕분에 금세 익어 바로 맛볼 수 있고 찌개 맛도 텁텁해지지 않는다. 청양고추의 알싸한 맛이 느껴지는 김치찌개는 고소한 뒷맛이 매력이다. 여기에 푸짐한 양과 저렴한 가격은 이 집의 최고 강점이다. 단 김치찌개는 2인분 이상 주문해야 한다.

★가격=김치찌개 5000원(2인 이상).

KDH_5394
서울 광화문집 돼지김치찌개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서울 광화문 ‘광화문집’=

서울의 한복판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인근에 ‘광화문집’이라는 김치찌개 전문집이 있다.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면 ‘광화문집’이라는 투박한 푯말이 눈에 띈다. 골목이며, 식당이며 예스런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36년 전에 문을 열었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식당 내부도 마찬가지. 몇 평 안 되는 좁은 공간에 식탁이 놓여 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손님들과 분주히 음식을 나르는 종업원들이 서로 인사하며 사담을 즐긴다. 단골들이 주 고객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광화문집표 김치찌개는 얼큰함과 시원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잘 익은 김치가 주재료다 보니 깊은 맛이 메운 맛을 앞서며 굵은 땀방울을 흘리게 한다. 함께 썰어 넣은 돼지고기도 먹기 편하게 되어 있어 김치에 함께 훌훌 입속으로 털어 넣으면 그만이다. 찌개라고는 하지만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아 냄비에 남겨질 것은 없다. 그야말로 탈탈 털어 먹게된다. 너무 일찍 냄비를 비워 한 그릇 더 시키고 싶어지는 맛집이다.

식사가 끝날 무렵 한 외국인이 홀로 식당에 들어 왔다. 속으로 ‘잘못 들어왔나?’ 하며 생각했지만 외국인이 자리에 앉자 자동적으로 김치찌개가 놓여진다. 그러고는 ‘소주요!’라는 작은 외침이 들려 왔다. 식당 단골손님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김치찌개와 소주를 즐기는 외국인. 이제 김치찌개의 세계화도 멀지 않았다.

★가격=돼지김치찌개 7000원 제육볶음 1만원.

demory@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