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지난 1982년부터 36년째 국민과 희노애락을 나눈 프로야구 KBO리그는 팀과 선수, 그리고 팬이 함께 만든 역사의 산실이다. 프로야구는 단순히 구기 종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와 문화를 직·간접적으로 반영하면서 세대와 세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20년 전 오늘도 야구장의 조명은 밤하늘을 빛냈다. 그날에는 어떤 에피소드가 야구팬을 울고 웃게 만들었을까. 20년 전 오늘 스포츠서울 기사를 통해 당시를 돌이켜 본다. 이것이 프로야구 태동기를 직접 목격한 기성세대와 현재 부흥기의 주역이 된 신세대 사이의 연결 고리가 되기 바란다.


<1997년 11월 11일 스포츠서울 4면>


문희수 호텔방에 쳐들어와 '성토' - 발로 던지는 게 낫다고 했느냐 따져 물어


95년 2월 5일. 해태 선수단은 시즌에 대비해 김응룡 감독의 인솔로 하와이에 첫 발을 내디뎠다. 훈련 첫날 김 감독이 심통을 부렸다. 대만에서는 발로 책상을 걷어차거나 배트를 부러뜨렸지만 이곳에서는 달랐다. 아침에 선수들이 집합하는데 호텔 문 앞에서 김 감독이 운동 가방을 땅바닥에 집어던지며 고함을 고래고래 질렀다. 선수들은 "또 무슨 일이 났나?"하며 잔뜩 긴장했다.


선수단이 탈 버스가 호텔 정문 앞에 서지 않고 뒷문 쪽에 있다는 것이 문제였던 모양이다. 김 감독은 선수들과 함께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윤기두 매니저 등이 사정을 설명했으나 "차 하나 제대로 섭외 못하고 말이야. 난 들어가겠어"하며 방으로 올라가버렸다. 원래 호텔 정문엔 승용차와 택시, 뒷문에 버스 같은 큰 차가 서도록 돼 있었다. 그러니까 공연히 구단 직원들의 군기를 잡으려고 생트집을 잡은 셈이다.


해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운동장에 나타난 김 감독은 또 무엇이 불만인지 방망이를 운동장 바닥에 내던지며 분위기를 얼어 붙였다.


그해 3월 초 하와이 훈련이 무사히 끝나고 다음날이면 귀국하는 그날 밤, 우려하던 사고가 터지고야 말았다.


밤에 파티가 열렸다. 그야말로 술에 '떡'이 된 L 선수가 자신 앞으로 비틀거리며 다가오더니 얼마나 마셨던지 감독도 못 알아보고 바로 앞에 속에 것을 와락 쏟아내는 것이 아닌가. 김 감독은 생애 처음 당해본 일이었다. L은 귀국 즉시 곧바로 2군으로 내려갔고 그해 내내 2군에 있다가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됐다.


88년 한국시리즈 MVP 문희수도 사연이 많다. 93년부터 쇠퇴 기미를 보인 그는 95년 6월 전주에서 사건을 쳤다. 문희수는 유독 쌍방울에 약했다. 하도 많이 얻어맞자 더그아웃에서 김 감독이 한심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발가락으로 던져도 저것보다는 잘 던지겠다"


발가락 운운하는 말은 투수들에게 가장 치욕적인 말이다. 이 얘기를 전해 들은 문희수는 분기탱천. 그날 밤 선수단 숙소인 전주 코아 호텔의 김 감독 방에 쳐들어갔다.


"김 감독님, 진짜 그런 말씀하셨어요?. 저 이제 야구 안 할랍니다"


그해 6경기에 나간 문희수는 진짜 그라운드를 떠났다. 그의 나이 30세 때의 일이다.


김병학 인턴기자 wwwqo2@sportsseoul.com


사진ㅣ스포츠서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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