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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의 ‘법정의 프리네’ 디테일. 프리네의 완벽한 나신이 여신의 그것임을 암시하며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예고하고 있다.
[스포츠서울 이주상기자] 기원전 400년 경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의 법정. 한 젊은 남자가 힘차게 망토를 열어 젖힌다. 마술사가 신비감을 제공하며 커튼을 열어 젖히듯, 드라마틱하다. 보는 사람들도 커다란 궁금증을 자아내며 놀라는 표정이다.
망토 속 주인공의 이름은 ‘프리네’로 고급 창부를 뜻하는 ‘헤타이라’가 직업이다. 그녀의 고객은 일반인이 아닌 유명 지식인이나 철학자, 부유한 정치인이 대부분이다. 단순히 몸을 파는 창부가 아닌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그 시대의 지성인이다. 그녀가 법정에 선 죄목은 ‘매춘’이 아닌 ‘신성모독’이었다. 당시 매춘은 규제의 대상도 아니었다. 동성애도 처벌의 대상이 아닌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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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의 ‘법정의 프리네’ 전경 80x128cm 독일 함부르크 미술관.
그림의 제목은 ‘법정의 프리네(Phryne before the Areopagus,1861)’로 실제 있었던 일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프리네는 ‘아프로디테의 재생’이라 불릴 만큼 대단한 미모를 자랑했다. 또한 뛰어난 재능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요즘말로 ‘뇌섹녀’였다.
당대의 모든 권력자와 부자는 그녀와 관계를 맺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림의 맨 왼쪽 어두운 곳에서 프리네의 나신을 음침하게 쳐다보고 있는 아테네의 부유한 권력자 에우티아스도 그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프리네는 그를 거부했다. 의심 많고 권위적인 그가 마음에 안 들었다. 실패한 사랑은 질투를 낳았고, 질투는 증오로 변질됐다.뜨거운 한여름날 , 프리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위한 축제 ‘엘레우시스’에서 자신의 매력을 한껏 보여주고 싶어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에게해에 몸을 담궜다. 스스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라고 여겼기 때문에 거리낌이 없었다. 이 행위가 에우티아스의 귀에 들어갔다. 프리네에 대한 증오심에 불탔던 에우티아스는 즉각 신성모독죄로 프리네를 고발했다. 신의 축제에 알몸을 보였다는 것이 이유였다. 에우티아스는 권력자여서 프리네를 법정에 세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신성모독죄의 최고 형벌은 사형이었기 때문에 프리네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도움을 요청한 사람은 연인이자 전도유망한 젊은 정치인 히페레이데스였다. 히페레이데스는 프리네를 구하기 위해 꾀를 냈다. 프리네를 망토에 둘러싸고 법정에 들어간 후 배심원들 앞에서 다이나믹한 제스처로 프리네의 눈부신 나신을 보여줬다. 그리고 히페레이데스는 이렇게 웅변했다. “보라, 이 아름다움을! 이것은 인간의 몸이 아닌 신의 몸이다. 여신의 몸에 신성모독이라는 죄를 씌울 수는 없노라” 히페레이데스의 포효는 배심원단의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아무리 여자의 용모와 몸이 아름답다 해도 인간의 것임을 뻔히 알고 있었지만 배심원단은 프리네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넋이 나갔다. 결국 히페레이데스의 손을 들어주며 그녀를 방면시켰고, 프리네는 자유를 되찾았다. 단순히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석방된 것이다.
과연 배심원단이 여성들로 구성되었다면 그런 판단을 내렸을까? 프리네의 일화는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과 함께 외형적인 아름다움에 진실을 쳐다보지 못하는 맹목적인 남성들의 그릇된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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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네를 둘러싸고 두 남자가 법정에서 조우했다. 한명은 프리네를 고발한 에우티아스이고 왼쪽 어두운 곳에서 음침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프리네를 쳐다보고 있다. 또 한 남자는 프리네를 변호하기 위해 법정에서 카리스마를 떨치는 히페레이데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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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옷을 입고 프리네를 쳐다보는 배심원단들. 경이로운 아름다움에 넋이 나간 표정이지만 권위를 상징하는 붉은 색으로 의상을 표현해 그들의 이중성을 은연중 나타내고 있다.
★ 고대그리스는 서양문명의 요람이자 배꼽이다. 서구문명의 근간을 파헤치면 모든 것은 그리스로 귀결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16:9, 황금비, 8등신 등 유독 그리스에는 미에 대한 탐구와 숭배가 심했다. 우리의 관념으로는 먹히지도 않을 히페레이데스의 변호가 통한 이유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름다움을 통해 철학적 진리를 찾으려는 탐구가 수백년 동안 진행됐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그리스의 정신은 14세기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고전으로의 회귀와 복구를 뜻하는 르네상스는 이후 유럽의 철학과 예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르네상스 이전 종교가 지배했던 1000여년을 ‘중세암흑기’라 부르며 유럽문명이 최악의 시기를 보냈던 것에 반해 르네상스는 옛것을 바탕으로 미래를 활짝 열어젖혀, 서구가 세계를 지배하는 단초가 됐다.★ 헤타이라-‘코르티잔’이라고도 불리는 헤타이라는 고급창부를 뜻하는 말이다.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여성으로 수많은 남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지금으로 치면 인기배우와 같은 존재였다. 고대 그리스는 매춘에 관대했다. 창부의 계급 중 최상위 계급으로 많은 남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한국의 기생과 일본의 게이샤도 그에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최하위 계급은 ‘포르네’라고 불렸는데 단지 금전에 의한 상호 육체적 관계에 국한된 것이었다. 요즘 흔하디 흔한 말이 되어 버린 포르노, 포르노그래피의 어원이다. ★ Areopagus는 아테네의 중심인 아크로폴리스 북서쪽에 위치한 바위산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곳에서 재판을 진행했다. 북쪽에는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아고라’가 있다. ★ 장-레옹 제롬(Jean-Leon Gerome, 1824 ~ 1904) 프랑스의 화가이자 조각가다. 그리스 신화를 비롯 고대 역사와 오리엔탈리즘을 소재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역사적인 소재를 중심으로 묘사의 정확함을 기하는 신고전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다. 젊었을 때부터 터키 등 중근동을 여행하며 오리엔탈리즘에 매료됐다. 대중도 기존의 화단과는 다른 이국적 정취와 관능성이 넘쳐나는 묘사로 어필했던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 대표작으로는 ‘법정의 프리네’를 비롯 ‘노예시장’, ‘닭싸움’, ‘스핑크스 앞의 보나파르트’ 등이 있다. 
그림 출처| 위키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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