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포토] 그랜드슬램 이범호 \'감독님, 우승트로피 선물해 드릴게요\'
2017 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가 30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KIA 이범호가 3회초 2사 만루홈런을 날린 후 김기태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잠실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잠실=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KIA의 통산 11번째 한국시리즈(KS) 우승이 가려진 30일 잠실구장 원정 감독실은 ‘우주의 기운’으로 가득찼다. 지난 24일 KS 미디어데이 때 KIA 왼손 에이스 양현종은 “감독님께서 삼라만상 모든 우주의 기운을 갖고 계시니 이를 선수들에게 조금씩만 나눠주시면 충분히 우승 트로피를 들 수 있다”고 자신했다. KIA 김기태 감독에게 엄청난 기운이 있다는 의미로 들렸는데 이날 드디어 그 ‘우주의 기운’ 실체를 확인했다.

구장에 도착한 오후 3시 20분께 김 감독은 잠실 원정 감독실에서 차분한 표정으로 경기를 준비했다. 조계현 수석코치와 담소를 나누던 김 감독은 “헤드코치께서 모기 세 마리를 잡으셨다”며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과거 정규시즌 순위 결정전을 앞두고 샤워를 하다 빗으로 모기를 잡고는 플레이오프 직행을 확정한 뒤부터 중요한 순간 해충을 잡으면 승운이 따른다고 믿는다. 조 수석코치는 “모자를 던져 천장에 붙어있던 모기 한 마리를 잡은 뒤 펑고배트로 두 마리를 처리했다. 감독실에 들어오는 순간 모기 한 마리를 또 잡았으니, 4연승으로 끝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SS포토]  \'아찔한 충돌\' 버나디나-안치홍, \'다행\'
2017 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가 30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KIA 버나디나와 안치홍이 6회말 상대 최주환의 타구를 잡던 중 부딪힌 후 더그아웃으로 들어오고 있다. 잠실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조 수석코치가 훈련 준비를 위해 감독실을 나서려던 순간 이석범 운영팀장이 감독실 문을 두드렸다. 이 팀장은 “2차전 승리 후 서울로 이동해 했던 일과를 4차전 승리 후에도 똑같이 했다. 루틴을 지키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라며 웃었다. 이 팀장과 김 감독이 둘 만의 눈빛교환을 하고 있을 때 정회열 퓨처스 감독이 합류했다. 정 감독 역시 “경기 후 식당, 식사메뉴, 함께 한 사람들, 앉는 순서까지 똑같이 했다. 시즌 내 이렇다 할 도움 한 번 드린적 없는데 마음으로라도 감독님께 힘이 돼 드려야지 않겠느냐”며 미소를 지었다. 애연가인 김 감독의 담배 한 개피를 슬쩍 집어든 정 감독은 “어제 감독님 담배 한 개피를 가져갔으니까 오늘도 루틴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노대권 마케팅팀장이 감독실을 찾았다. 노 팀장 역시 “한 달 동안 잘 만든 몸, 서울에서 승리 공식 지키느라 다 망가졌다”며 껄껄 웃었다.

돌아보면 정규시즌 개막전부터 김 감독을 만나는 사람마다 마음으로 기운을 불어 넣었다. 사심없이 사람을 대하는 김 감독의 성심에 마음과 마음이 모였다. KS 1차전부터 구장을 떠나지 않는 KIA 자동차 박한우 대표이사나 정의선 부회장에 이어 현대해상 정몽윤 회장까지 5차전이 열린 잠실을 찾았다. 이 대표는 “우승한다는 보장만 있으면 광주로 내려가 홈 팬 앞에서 축배를 들고 싶다. 하지만 8년간 기다린 우리 선수들과 프런트를 생각하면 기세를 잡았을 때 결정짓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경기 시작 후 이범호의 만루홈런이 터져나오자 3루 관중석은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두산의 막판 거센 추격에 혼쭐이 나긴 했지만 KIA는 KS에서는 통산 10차례나 정상에 오른 최다 우승팀의 위용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결국 전통의 명가 자존심을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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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7번 이범호가 30일 열린 KIA와 두산의 한국시리즈 5차전 3회초 2사 만루에서 니퍼트를 상대로 만루홈런을 뽑아낸후 환호하고 있다. KIA가 5-0으로 리드중이다. 잠실 |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존중과 예의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 ‘기태 타이거즈’는 단 3년 만에 원팀으로 거듭났다. 선후배간 위계는 철저히 지키면서도 대화와 소통으로 뒷말 없는 팀이 됐다. 자연히 신뢰가 싹트기 시작했고 끈끈한 동료애로 이어졌다. 양현종이 말한 우주의 기운은 구단과 선수단이 한 마음이 돼 진심으로 서로를 위하는 분위기를 뜻한 게 아닐까. 이날 경기를 앞두고 감독실에서 일어난 얘기들, 워밍업을 마친 선수들이 삼삼오오 KS 최종전을 어떻게 치러야 할지 의견을 교환하는 모습 등은 ‘모두 첫 KS이니 똘똘뭉쳐 이겨보자’는 염원의 표현이었다. KIA는 그렇게 강팀의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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