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지난 1982년부터 36년째 국민과 희노애락을 나눈 프로야구 KBO리그는 팀과 선수, 그리고 팬이 함께 만든 역사의 산실이다. 프로야구는 단순히 구기 종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와 문화를 직·간접적으로 반영하면서 세대와 세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20년 전 오늘도 야구장의 조명은 밤하늘을 빛냈다. 그날에는 어떤 에피소드가 야구팬을 울고 웃게 만들었을까. 20년 전 오늘 스포츠서울 기사를 통해 당시를 돌이켜 본다. 이것이 프로야구 태동기를 직접 목격한 기성세대와 현재 부흥기의 주역이 된 신세대 사이의 연결 고리가 되기 바란다.


<1997년 10월 27일 스포츠서울 7면>


V9 이끈 지도력 원천은 무엇인가? - '승부사 김응룡' 철저 해부


'코끼리가 수술대에 오른다.'


해태를 한국시리즈 9회 우승의 반석에 올려놓은 승부사 해태 김응룡 감독이 철저하게 해부된다. 한국체육대학 부설 체육과학연구소는 지난 8월 한국을 대표하는 지도자로 김응룡 감독을 선정하고 그의 지도력의 원천을 무엇인가를 분석하는 프로젝트를 해태에 제안해왔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장수 감독으로 선수단 장악력, 적기에 세대교체를 단행하는 결단력, 과감하게 승부를 거는 추진력 등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 스포츠과학적인 측면에서 김 감독의 이러한 면목을 일일이 분석해 나가면서 '리더십이란 무엇인가'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는 계획이다.


해태의 한 관계자는 "당시에는 시즌 중이라 확답을 주지 못했지만 다시 한번 우승컵을 들어 올린 지금에 와서는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다"는 방침. 이 프로젝트의 마무리와 함께 해태에서는 체육과학연구소의 보고서를 토대로 '김응룡 감독과 리더십'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을 출간할 예정이다.


김응룡 감독의 지도력을 파헤치기 위한 시도는 그동안 몇 차례가 있었으나 모두 불발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의 SK그룹 측의 사원 교육용 VTR제작 건. 당시에는 조건이 맞지 않은 데다 김응룡 감독이 한사코 거절해 좋은 기회가 무산됐다.


야구밖에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김응룡 감독이 이제는 야구가 아닌 리더십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이종범보다 더 인기가 있다'는 자신의 농담처럼 앞으로는 프로야구팀의 감독으로서뿐만 아니라 인기 강사로 성가를 높일지도 모를 일이다.



1991년 5월 21일 대전구장. 선동열(우)이 감독 통산 500승을 달성한 김응룡 감독에게 꽃다발을 전달하고 있다.


*연구 결과 김응룡 감독의 리더십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겸비한 '기관차형'으로 분류됐다. 자신의 감정을 말보다는 묵묵히 행동으로 표현하는 스타일이다. 일례로, 나무 방망이로 벽을 세게 내려치거나 더그아웃의 벤치를 부숴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이 역시 선수들의 자만심을 방지하기 위한 계산된 행동.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는 비결이기도 했다.


김병학 인턴기자 wwwqo2@sportsseoul.com


사진ㅣ스포츠서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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