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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감독이 22일 서울 이촌동 ‘차범근 축구교실’에서 열린 가을 페스티벌에서 폐회사를 하고 있다. 김현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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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감독이 22일 서울 이촌동 ‘차범근 축구교실’에서 열린 가을 페스티벌 도중 어린이들 셔츠에 사인을 하고 있다. 김현기기자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학부모님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이들이 축구할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불세출의 스타’ 차범근(64) 감독이 아들 혹은 딸과 같은 이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올렸다. 이어 그는 손자 같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여러분은 물론이고 이제 친구들에게도 권해야 할 것 같다”고 부탁했다. 이유가 있었다. 축구의 인기가 뚝 떨어지고 어린이들이 축구 대신 다른 취미를 선택하는 것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다. 차 감독은 “어떤 집단, 어떤 사람의 책임이 아니다. 축구로 사랑을 받았던 나부터 책임을 크게 느끼고 있다. 반성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차 감독은 22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차범근 축구교실’에서 열린 가을 페스티벌에 참석했다. 1990년 차 감독이 독일에서 귀국한 뒤 인생을 걸고 시작한 축구교실은 한국 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명 같은 사업이었다. 초등학교 4~5학년 때 축구를 시작하던 풍토는 ‘차범근 축구교실’이 등장하면서 5~6살로 무려 6년 가까이 낮아졌다. 어릴 때부터 공을 갖고 노는 선수들은 볼터치 등 기본기부터 다를 수밖에 없었다. 엘리트 선수로 대성하지 않는 선수들은 축구를 좋아하는 팬으로 오랜 기간 남게 됐다. ‘차범근 축구교실’은 봄과 가을에 한 차례씩 페스티벌을 여는데 이날은 초등부 행사가 열린 날이었다. 160명의 어린이들과 학부모들이 하루 종일 축구하고, 음식 먹으면서 축제 같은 하루를 즐겼다.

차 감독은 페스티벌을 물끄러미 지켜보더니 “이렇게 아이들이 축구하는 것을 보면 근심과 걱정이 달아난다. 너무 흐뭇하다”며 웃었다. 하지만 마냥 웃을 순 없었다. 대표팀 부진은 물론이고, 한국 축구의 저변 약화와 인기 감소를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 감독은 자신이 부위원장으로 일했던 지난 6월 20세 이하(U-20) 월드컵이 끝난 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최근엔 전남 지역을 방문해 초등학교 지도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지도자들은 윗선에서의 지원 부족과 고용 불만 등을 차 감독에게 토로했다고 한다.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15년이 지났지만 풀뿌리 축구를 가르치는 이들은 여전히 기본 생계부터 위협받고 있다. “1년에 초교 축구부마다 고작 공 5개만 지급된다”며 축구 행정 쪽에 대한 불만을 전하는 이도 있었다.

차 감독이 고민하는 것은 그런 차원을 넘는다. 축구에 대한 무관심이었다. ‘차범근 축구교실’만 해도 1100명에 육박하던 회원 수가 최근엔 800명 가량으로 줄었다고 한다. 출산율 감소에 따른 부분도 있지만 축구에 대한 외면도 크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차 감독은 무엇보다 “아이들 축구를 시키면 돈이 너무 든다”는 견해에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페스티벌 폐회사를 통해 “요즘 아이들이 축구를 안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축구를 선택한 여러분들이 너무 고맙다. 축구는 혼자 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좋은 운동이라고 본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팀을 이루기 때문에 남을 배려할 수 있다. 또 페어플레이 정신 아래서 뛰기 때문에 어른이 된 뒤에도 룰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고 역설했다.

차 감독은 취재진을 만난 뒤 “지금 이렇게 된 이유가 뭐라고 보느냐”고 물었다. 기자가 “한·일 월드컵 이후 국내 축구 시장의 파이가 커지고 대한축구협회나 구단에 돈이 많아졌다. 그러나 그 돈이 유소년이나 축구 환경 조성에 제대로 활용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차 감독은 고개를 끄덕인 뒤 “2000년 독일이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예선탈락한 뒤 축구인들이 토론을 하고 유소년 육성을 최우선으로 두지 않았는가. 그게 지금의 독일 축구(2014 월드컵 우승)을 만들었다”며 “누굴 책망할 것이 아니라 축구계가 모두 반성해야 한다. 나부터 반성하며 다시 뛰겠다”고 했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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