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지난 7월21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당선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한국 축구가 유례 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축구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본선 9회 연속 진출을 이뤄 한 숨 돌리는 듯 했지만 최종예선에서 보여준 부진한 경기력, 대한축구협회의 회전문 인사와 도덕 불감증, 그리고 ‘히딩크 논란’ 등이 겹쳐 거대한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거스 히딩크 전 대표팀 감독의 복귀에 반대하는 축구인과 언론, 팬들도 협회 행정과 한국 축구 저변에 노란불이 켜졌다는 점엔 동의한다.

위기의 본질은 무엇일까. ‘정몽규식 성과주의’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 2013년 초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당시만 해도 축구계엔 그를 향한 기대가 적지 않았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를 맡아 K리그 초유의 승부조작 사태를 잘 수습한 50대 초반의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서 접전 끝에 승리해 당선됐기 때문이다. 모기업의 규모가 프로구단을 이끌기에 부족함에도 부산 아이파크를 이끌고 있고 영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축구에 관심이 컸던 그의 대한축구협회 입성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 등으로 새 전성기를 맞은 한국 축구의 업그레이드로 이어질 것으로 여겨졌다. 특히 “1000억원 수준의 협회 예산을 2000~3000억원으로 올려놓겠다”는 그의 발언은 축구판에 새 바람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4년 9개월이 지났다. 정 회장이 지난해 8월 엘리트·아마추어 통합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서 만장일치로 재선됐으나 첫 임기의 성과, 재선 뒤 1년간의 행보가 ‘만장일치’ 당선에 걸맞는 것인지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협회 예산은 800억원대로 떨어졌고 스폰서도 갈수록 줄고 있다. 19세 이하(U-20), 16세 이하(U-17) 남자대표팀이 지난해 아시아선수권 예선에서 동반 탈락하는 충격적인 일을 당했다. K리그 흥행도 답보 상태다. 초·중·고·대 현장 지도자들의 불만은 폭발하기 직전이다. 출산율 감소와 함께 유소년 저변도 점점 취약하다. 대표팀을 보면 25세 손흥민의 뒤를 이을 적자가 안 보인다. 2008년 20세 이하(U-20) 및 17세 이하(U-17) 남자대표팀의 아시아선수권 동반 제패, 이듬 해 두 대표팀의 연령별 월드컵 8강행,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 같은 해 U-20 여자대표팀의 월드컵 4강, U-17 여자대표팀의 월드컵 우승 등의 위업이 쏟아진 지 10년도 되지 않아 한국축구는 최악의 상황으로 추락하고 있다.

정 회장은 취임 뒤 ‘성과주의’의 기치를 높이들었다. 사기업처럼 수입을 늘리고 지출을 줄여 예산을 늘려나가면 자연스럽게 축구 발전도 이룰 수 있다는 논리였다. ‘정몽규식 성과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13년 10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진행한 브라질과의 평가전이다. 비싼 대전료를 주고 브라질을 데려와 20만원이 넘는 고가의 티켓을 내놓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 끝에 대박을 쳤다. 과감한 투자로 좋은 콘텐츠를 내놓으니 A매치를 소비하는 구매자들의 반향도 대단했다. 그러나 브라질전을 제외하고 과감한 투자와 훌륭한 성과, 효과적인 수입이 선순환처럼 이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고만고만한 비용을 들여 유럽에서도 3~4류로 취급받는 울리 슈틸리케를 대표팀 감독으로 영입했다가 32년 만의 본선행 좌절 위기에 놓였던 것, 연령별 대표팀의 전체적인 침체 등을 두고 ‘성과를 축구보다 우선하면서 이뤄진 사태’로 보는 시각이 많다.

스포츠서울은 지난 2015년 한국야구위원회와 대한축구협회, 대한체육회의 현실에 대한 기획기사를 다룬 적이 있다. 당시 대한축구협회의 문제점으로 가장 크게 꼽힌 것이 바로 성과주의였다. 내부에서도 “협회는 공익적인 성격을 수행하는 곳인데 성과, 성과를 너무 거론하고 있다”는 우려가 터져나왔다. 지금의 패러다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성과주의의 장점도 있다. 사기업처럼 협회 조직 내 신상필벌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예산 낭비를 막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엔 양면이 함께 있다. 축구가 우선이고, 그 다음이 성과다. 정 회장의 FIFA 평의회위원 당선, 올해 U-20 월드컵 개최 등이 한국 축구의 대외적 입지를 넓히는 것에 플러스가 됐다면 이젠 다시 축구에 집중하면서 내실을 다질 때다. 내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을 위한 총력 지원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축구팀장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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