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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8일(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VEB아레나에서 끝난 러시아와 평가전에서 전반 선제골을 내준 뒤 허탈해하고 있다. 제공 | 대한축구협회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다소 어수선한 축구국가대표팀 사정을 고려하면 평가전 본연의 목적 그 이상을 달성해야 했다. 그런 점에서 두 번의 자책골이 나와 유의미한 내용마저 희미해진 건 매우 뼈아팠다.

출범 이후 처음으로 유럽 원정 평가전에 나선 신태용호. K리그 일정을 배려해 이례적으로 전원 해외파로 멤버 구성, 전문 측면 수비수 자원 부상 등 여러 제한된 상황에서 ‘변칙 스리백’으로 첫 번째 상대 러시아를 상대했으나 비교적 내용은 괜찮았다. 하지만 신 감독 역시 ‘이렇게도 운이 없나’라고 쓴웃음을 지었을지 모르겠다.

한국은 8일(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VEB아레나에서 끝난 러시아와 평가전에서 수비수 김주영의 자책골이 두 번이나 나오는 등 불운이 겹치면서 2-4로 졌다. 지난달 끝난 이란, 우즈베키스탄과 월드컵 최종 예선 2연전에서 모두 득점 없이 비겨 가까스로 9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에 성공한 한국은 실험적인 성격이 강했으나 러시아전에서도 고개를 숙였다. 가뜩이나 경기력 부진, 히딩크 논란 등 대표팀 안팎으로 떠들썩한 상황에서 완패로 귀결돼 신태용호를 향한 팬들의 불신은 이어지게 됐다.

◇공격은 예상보다, 수비는 예상대로

전반 18분이었다. 신태용 감독이 추구하는 공격수들의 자유로운 위치 변화에 따른 기회 창출 장면이 나왔다. 세 번의 원터치 패스로 만들어졌다. 미드필드 왼쪽에서 공을 잡은 손흥민이 페널티박스 가운데로 움직인 원톱 황의조에게 공을 연결했다. 황의조는 다시 뒤따르던 손흥민에게 연결, 손흥민은 오른쪽에서 문전으로 쇄도한 권창훈에게 찔러줬다. 권창훈의 왼발 다이렉트 슛으로 연결했다. 비록 공은 러시아 골문 왼쪽을 벗어났지만 이날 한국이 펼친 공격 작업 중 가장 으뜸이었다. 전반 32분엔 권창훈이 하프라인까진 내려와 공을 받은 뒤 왼쪽으로 침투하던 손흥민에게 절묘한 스루패스를 찔러넣었다. 손흥민이 빠르게 질주, 페널티 아크 왼쪽에서 때린 슛이 이고리 아킨페예프 러시아 골키퍼에게 걸렸다.

신 감독은 연령별 대표팀 감독 시절서부터 원톱의 폭넓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2선 요원의 침투, 연계 플레이로 득점 기회를 만드는 공격 축구를 펼쳐왔다. 결과가 중요했던 지난 월드컵 최종 예선 2연전에서는 이런 모습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으나 이날 상대 홈구장에서 비교적 잘 풀어갔다. 사흘간 발을 맞춘 점을 고려했을 때 손흥민~황의조~권창훈 공격 삼각 편대의 움직임은 나쁘지 않았고 2선 중앙 구자철의 침투, 공세 시 측면 윙백 이청용의 오버래핑도 돋보였다.

하지만 수비가 문제였다. 임시방편의 변칙 스리백이었던만큼 잦은 실수가 나왔다. 이청용 김영권이 낯선 윙백에 포진한 것 뿐 아니라 권경원~장현수~김주영 스리백 요원도 처음 호흡을 맞췄다. 전반 25분 문전에서 수비 동선이 엇갈리면서 알렉산드르 코코린에게 결정적인 왼발 슛을 허용했고, 3분 뒤에도 김승규 골키퍼의 공을 받은 권경원이 어설프게 돌려세우다가 공을 빼앗겼다. 재빠르게 동료의 오른쪽 크로스를 받은 코코린이 또 한 번 골키퍼와 맞섰으나 슛이 골문 위로 떴다. 잘 버티던 한국은 전반 44분 세트피스에서 상대 대인 방어에 실패하면서 표도르 스몰로프에게 선제골을 내줬다. 그리고 추격에 나선 후반 9분과 11분 뜻밖에 수비수 김주영의 두 번의 자책골로 무너졌다. 나름 변칙 스리백이 최소 절반의 성공으로 귀결될 뻔 했으나 불운의 자책골로 빛을 잃어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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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 지역에서 자유롭게 뛴 손흥민.

◇손흥민 활용법 ‘프리롤’도 안 통했다

멈춰버린 손흥민의 A매치 득점 시계는 1년을 훌쩍 넘겼다. 이날 후반 33분 교체될 때까지 무득점에 그친 손흥민은 지난해 10월6일 카타르와 월드컵 최종 예선 골 이후 367일째 침묵했다. 전임 슈틸리케 감독 체제에서도 토트넘 손흥민과 붉은 유니폼을 입은 손흥민은 늘 비교 대상이었다. 소속팀에서 개성있는 정상급 공격수와 발을 맞추면서 기회 창출을 늘린 손흥민은 대표팀에서는 유독 제한된 움직임에 갇혔다. 신 감독은 부임 이후 손흥민 활용법을 두고 여러 구상을 해왔다고 밝혔는데, 이날 사실살 프리롤로 두고 손흥민 움직임에 따라 다른 공격수도 잦은 위치 변화를 줬다. 하지만 전반 32분 한 차례 왼발 슛 외엔 이렇다 할 모습이 없었다.

최근 일부 축구 전문가들은 손흥민이 대표팀에서 짊어진 여러 부담과 더불어 팀 전술의 고립을 고려, 그를 당분간 조커로 활용하는 방안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신 감독은 내년 월드컵 본선에서도 공격의 핵심 구실을 해야 하는 손흥민을 지속해서 선발진 구상에 포함하면서 깨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프리롤 역할을 매긴 러시아전에서도 해법을 찾을만한 장면이 비교적 적었다. 여전히 고민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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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측면에서 드리블하는 이청용.

◇질이 달랐던 크로스+패스, 반가웠던 이청용 활약

러시아전에서 가장 빛난 건 베테랑 이청용이다. 낯선 윙백에서 경기를 맞았지만 특유의 예리한 크로스와 양질의 패스, 경기 템포 조절 등 노련미를 뽐냈다. 소속팀 크리스털 팰리스에서 입지가 축소돼 최근 대표팀 발탁도 들쭉날쭉해진 이청용이다. 신태용호 출범 이후 처음으로 합류한 경기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제대로 뽐냈다. 특히 후반 42분 권경원의 A매치 데뷔골을 도울 때 차올린 크로스는 대표팀 내 전문 윙백과 비교해서도 클래스가 달랐다. 추가 시간 지동원의 만회골을 도운 예리한 침투패스도 마찬가지였다. 변칙 전술을 즐기는 신 감독으로서는 이청용의 개인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활용도를 더 넓게 가져갈 수 있게 된 건 소득이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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