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 히딩크
거스 히딩크 감독이 2012년 7월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2 K리그 올스타전’ 공개 훈련 직후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스포츠서울DB)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거스 히딩크(71) 감독이 입을 열었지만 한국 축구의 혼돈은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히딩크 감독이 예고대로 취재진 앞에 섰다. 그는 14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호텔에서 국내 언론 유럽 주재 특파원들과 기자회견을 전격적으로 진행했다. 이날 그의 인터뷰 성사 사실이 알려진 뒤 ‘히딩크’, ‘히딩크 기자회견’이 포털 검색어 상위권에 오를 만큼 대중의 큰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대표팀 감독보다는 한국 축구를 돕고 싶다는 원론적이면서 애매모호한 수준에 불과했다. 2002년 영광을 다시 이루기 어려울 것이란 자신감 없는 내용도 있었다. 오히려 대리인을 통해 지난 여름 이미 한국 대표팀 감독직을 제안했다고 주장해 대한축구협회와 진실 공방 등 ‘2라운드’에 돌입할 태세다.

◇“신태용 감독 선임 존중, 그러나…”

연합뉴스에 따르면 히딩크 감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감독직 등을 놓고)대한축구협회와 공식적으로 논의된 것은 없다”며 “한국 축구를 위해서, 한국 국민이 원하고 (나를)필요로 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어떤 일이든 기여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여러 가지 여건으로 봐서 축구(대표)팀 감독으로서 2002년 월드컵의 영광을 재현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답해 자신이 대표팀을 맡아도 4강 신화를 다시 일궈내는 등의 큰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신태용 감독의 선임에 대해 히딩크 감독은 “축구협회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다. 신 감독을 인정함과 동시에 자신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기 어려운 현실을 시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내년 러시아 월드컵 기간에 미국의 폭스 텔레비전 해설자 제안을 받아 수락한 사실도 털어놓았다. 그러나 한 켠엔 “현재가 그렇다는 것”이라며 감독직 욕심을 완전히 내려놓지는 않았다.

그가 감독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한국에 기여할 방법을 모색함에 따라 대한축구협회 혹은 축구계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미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나 2002 멤버인 황선홍 서울 감독 등이 기술고문 등을 통한 그의 활용법을 그린 적이 있다. 축구협회도 이날 그의 인터뷰 내용이 알려진 뒤 “한국 축구와 축구대표팀에 대한 히딩크 감독의 관심과 사랑에 감사드린다. 내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대표팀이 좋은 성과를 거두는데 히딩크 감독이 많은 도움을 주시기 바란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및 신 감독과 협의해 히딩크 감독에게 조언을 구할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지 요청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선 축구와 연관된 공적 사업 등엔 그의 명성이나 영향력이 활용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히딩크 감독은 지난 2015년 11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풋살 구장 ‘드림필드’ 착공을 위해 방북한 적이 있다. 축구를 통한 남·북 교류 협력 등에 북한에서도 유명한 히딩크의 힘이 적지 않게 쓰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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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곤 기술위원장이 공개한 히딩크 측 대리인과 카톡 내용

◇김호곤 위원장, 부임 전 ‘히딩크 연락’ 받았다?

문제는 감독 논란과 별개로 히딩크 감독이 지난 6월에 대한축구협회에 비공식 루트를 통해 감독직 지원 의사를 밝혔다고 주장한 것이다. 히딩크 측 대리인은 앞서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9~10차전 이란전과 우즈베키스탄전을 감독대행 체제로 치르고 본선에 가면 히딩크 감독이 부임하는 방식을 제안했다”고 언론에 공개했다. 이에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지난 7일 우즈베키스탄 원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자리에서 “사실 무근이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이 14일 이날 회견에서 “한국에 있는 히딩크재단 사람들을 통해 지난 여름 축구협회 내부 인사에게 내가 한국 축구를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고 축구협회에서 원한다면 할 수 있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히딩크 측의 연락을 받은 적이 있음을 시인했다. 다만 당시는 이용수 전 기술위원장이 막 사임하고 그가 바통을 이어받기 전이라 김 위원장도 이를 어떤 제안으로도 여기질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SNS를 뒤져보니 지난 6월19일 대리인 연락이 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땐 내가 기술위원장도 아니었고 뭐라 확답을 할 위치나 자격도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김 위원장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가 지난 6월26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으로부터 기술위원장 겸직을 임명받았다. 히딩크 측이 보낸 SNS의 내용도 “(김호곤)부회장님~ 2018 러시아 월드컵 한국 국대 감독을 히딩크 감독님께서 관심이 높으시니 이번 기술위원회에서는 남은 두 경기만 우선 맡아서 월드컵 본선진출 시킬 감독 선임하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월드컵 본선 감독은 본선 진출 확정 후 좀 더 많은 지원자 중에서 찾는 게 맞을 듯 해서요~~~ㅎ”라는 식으로 진지하게 여길 구석이 거의 없다.

김 위원장은 결국 지난 7월4일 장시간 회의와 기술위원들의 투표를 거쳐 신태용 현 감독을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신 감독의 임기는 내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까지다. 한국이 최종예선 A조 3위로 떨어져도 임기를 보장한다”며 감독대행 뒤 본선 진출 때 정식 감독 선임을 주장한 히딩크 측 제안과 다른 결정을 내렸다. 감독 선임은 기술위의 독립된 권한이어서 신 감독의 선임 과정엔 아무 문제가 없다. 다만 히딩크 측 대리인이 공식 루트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히딩크 감독을 무책임하게 추천한 것, 김 위원장이 이를 뒤늦게 시인한 것은 계속 논란이 될 수 있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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