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호 운명의 우즈벡
신태용(가운데) 축구대표팀 감독이 3일(한국시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분요드코르스타디움 보조구장에서 진행된 대표팀 훈련에 앞서 선수들에게 얘기하고 있다. 제공 | 대한축구협회

[타슈켄트=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한국 축구가 ‘4강 신화’를 달성한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치른 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으로는 축구 인프라와 다수 스폰서의 유입, 그에 따른 유소년 시스템의 변화 등을 거론할 수 있다. 그리고 대표팀에 국한해서 들여다보면 유럽파의 존재가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유럽파의 존재는 곧 국내파와 해외파로 나뉘어 불리는 계기가 됐고 단순히 해외파는 유럽리그에서 뛰는 선수 뿐 아니라 국내를 벗어나 활동하는 이들을 모두 지칭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팬들의 주목도가 다를 수밖에 없었고 개인 능력에 따라 벌어들이는 수입도 큰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그 후 15년간 대표팀이 부진할 때마다 단골 소재처럼 나오는 게 국내파와 해외파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었다.

실제 축구계 한 관계자는 “솔직히 해외 괜찮은 리그에 나가는 선수들이 괜히 나가는 건 아니다. 당연히 국내에서 뛰어난 축에 속하기 때문에 좋은 대우를 받고 가게 된다”며 “해외에서 성공하는 건 오로지 본인의 능력과 노력이 따라야 하지만 실패하더라도 국내에 복귀해서 좋은 활약을 펼치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물론 국내파 태극전사들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그러나 그들 역시 팀 내에서 핵심적인 구실을 하는 해외파 선후배들의 기량을 인정하고 신뢰한다. 문제는 몇몇 선수가 팀 분위기를 흐려 ‘원 팀’을 저해한다는 지적을 받는다는 점이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일 월드컵 이후 아시아 축구는 과거보다 경쟁력이 크게 상승했다. 한국, 일본, 사우디, 이란, 호주 등 전통의 강호들이 쉽게 월드컵 본선에 오르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중국, 우즈베키스탄(이하 우즈벡), 시리아 등 그간 복병이나 다크호스 정도로만 불리던 아시아 2류 팀들이 저마다 통 큰 투자와 발전 계획을 세워 성장을 거듭했다. 그 이면엔 ‘내셔널리즘’에 입각한 간절함이 있다. 우즈벡이나 시리아만 하더라도 각각 국가 경제 위기나 내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축구를 통해 분열된 국론을 하나로 묶어내고자 애쓴다. 자연스럽게 실력 뿐 아니라 간절함을 지닌 채 나라를 위해 뛸 수 있는 선수들을 중용, 경기력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한국과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행 직행권을 두고 ‘단두대 매치’를 벌인 우즈벡의 삼벨 바바얀 감독은 경질 압박에 시달리며 ‘좌불안석’하던 가운데서도 간판 공격수인 사르도르 라시도프가 팀 워크를 해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곧바로 한국전 출전 명단에서 제외할 뜻을 밝혔다. 공식 기자회견에서 “중국전을 마친 뒤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발끈했다. 아무리 승부가 중요하고 뛰어난 기량을 지녔어도 진심으로 뛸 마음이 없으면 과감하게 배제한다는 것이다. 물론 라시도프와 갈등을 해소했는지 한국전에서 후반 교체로 투입되긴 했으나 팀 워크에 방해가 된다면 주력 선수도 뺄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확실하게 했다. 중국의 이탈리아 출신 명장 마르첼로 리피도 독일 베르더 브레멘에서 뛰는 장위닝이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이달 대표팀 합류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그를 선발하지 않았다. 대표팀에 대한 헌신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는 다른 선수도 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지난달 31일 우즈베키스탄을 이겼다.

영원한 라이벌이자 ‘이웃나라’인 일본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31일 안방에서 강호 호주를 2-0으로 누르고 B조 1위를 확정하며 본선행을 확정했을 때 팀의 기둥인 혼다 게이스케, 가가와 신지는 벤치만 달궜다. 물론 가벼운 부상 등을 떠안고 있었으나 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날 호주에 비기거나 지면 경질이 유력했던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은 중요한 한판 대결에서도 경험이 풍부한 팀의 정신적 지주와 같은 둘을 벤치에 아껴두고 1994년생인 아사노 다쿠마 등을 기용했다. 이들은 승리를 갈구하듯 엄청난 열정으로 호주를 몰아붙였고 아사노가 선제 결승골을 터뜨리며 승리를 이끌었다. 이를 본 윤정환 J리그 세레소 오사카 감독은 “일본 축구가 앞으로 가야 할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 같다. 이름값 있는 선수를 일부 빼고 정말 싸울 수 있는 선수로 구성했는데 죽을만큼 뛰어다니더라”고 말했다. 그려먼서 “일부 젊은 선수들이 그렇게 뛰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눈에 보였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감독에게 큰 비난에 쏠렸겠지만 좋은 모습으로 바뀌고 결과도 얻었으나 일본으로서는 큰 선물을 받은 셈”이라고 평가했다.

이름값이 사라지는 시대다. 한국 축구도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바라봐야 할 지혜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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