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순
5회말 한화 <신경현>의 파울팁 타구에 머리를 맞은 최규순 야구 심판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무심코 지나쳤던 일이 화를 부르는 경우가 많다. 지나고 나서야 인재(人災)라는 것을 알고는 땅을 치고 후회해봐야 이미 늦었다. 사전에 막을 수 있던 재난을 선량한 피해자가 속출한 뒤 수습해봐야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도박빚 탕감을 위해 KBO리그 관계자들에게 돈을 갈취한 한국야구위원회(KBO) 최규순 전 심판위원 사건도 그렇다. 개인의 일탈로 애써 외면한 결과가 대형 스캔들로 돌아온 꼴이다. 도박에 비교적 관대했던 KBO의 문화가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지난 2015년 당시 삼성 소속이던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임창용(KIA), 안지만(제명) 등이 해외 카지노에서 도박을 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오승환과 임창용은 72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받았고, 안지만은 퇴출됐다. 오승환과 임창용은 단순도박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지만 안지만은 도박 사이트 개설에 자금을 댄 혐의로 항고심에서도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구형받는 등 실형을 받아 퇴출이 불가피했다. 이 전에도 삼성과 LG 등에서 활약한 A선수가 이른바 ‘하우스 도박’에 빠져 동료들에게 돈을 빌려 논란이 됐고 프로 원년에 활약했던 B선수도 도박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리그가 확장하는 과정에서는 갖은 스캔들이 터지기 마련이다. 메이저리그나 일본프로야구도 도박과 승부조작, 약물중독 등의 시련을 겪으며 성장해왔다. 하지만 KBO 이를 ‘성장통’으로 당연시하면서 쉽게 넘어가서는 안된다. ‘제 식구’에게 관대했던 처벌기준 탓에 스스로 화를 키웠다는 비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최 전 심판위원뿐만 아니라 심판 출신 모 인사는 해외에서 추태를 부리다 사실상 해임됐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KBO에서 전관예우를 받고 있다. 최 심판위원을 해임하는 과정에서도 도박빚이 직접적인 문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KBO는 파면이 아닌 재계약 불가로 마무리했다. 스스로 면죄부를 줬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도박문제 예방교육 사진
넥센이 18일 고척 롯데전을 앞서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와 함께 선수단을 대상으로 도박 예방 교육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 넥센 히어로즈

도박은 마약보다 끊기 힘든 중독성을 갖고 있다. 호기심에 발을 들였다가 헤어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물 불 가리지 못하게 된다. 현행법상 처벌을 받지 않는 수위라 하더라도 클린스포츠를 표방하는 KBO리그에서는 단호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작은 실수 하나로 야구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길 수 있다는 공포감을 심어주지 않으면 근절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뢰를 먹고 사는 야구인들의 사회적 약속인 KBO리그 규약은 어떤 면에서 법보다 더 냉혹해야 한다. 개인의 부도덕함이 리그 전체의 신뢰저하로 귀결된다는 것을 ‘최규순 사태’로 확인했다. 구본능 총재와 10개구단 구단주 등 KBO리그 고위 결정권자들의 책임있는 결단이 요구된다. 공든 탑은 미세한 균열로 무너지기 마련이다.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불신은 경기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다. 한 번 무너진 신뢰는 몇 배의 시간이 지나도 회복하기 어렵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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