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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스포츠서울 이주상·이우석·황철훈기자] 돼지불고기 백반. 달달한 간장양념에 재운(쉽사리 자진 않는다) 돼지 전지살이나 목살 등을 연탄에 초벌한 뒤 갖은 반찬과 함께 내오는 한상 식단이다. ‘돼지불백’하면 일단 기사식당이 먼저 떠오른다. 원탁의 기사(Knight) 따위가 밥을 먹는 곳이 아니라, 원조 ‘혼밥러(혼자 밥먹는 사람)’인 택시기사(Driver)를 위해 생겨난 식당. 당연히 아서왕이나 랜슬롯이 앉아있을 그런 둥그런 원탁이 아니다. 자신의 밥을 집중해서 먹을 수 있도록 네모난 탁자를 오밀조밀 붙여놓은 식당이다.그 식당에서 우리 택시기사님들이 돼지불백을 먹고 ‘뛰뛰빵빵’ 종횡무진 도시의 미어터진 도로를 누볐다. 푸짐하고 든든한 인심 덕에 이젠 운전자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식도락을 위해 돼지불백집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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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기사식당이자 돼지불백집이다. 돼지를 구워 주차장 딸린 건물을 올렸다. 그 뿐 아니다. 커피숍과 아이스크림을 파는 집 등 일대가 감나무집에서 운영하는 ‘타운’이 됐다. 30년 전부터 ‘기사 맛집’의 명성을 그대로 유지한 덕에 주차장엔 택시가 많다. 양화대교에 계시다던 가수 자이언티의 아버지도 아마 이 돼지불백을 먹었을 것이다. 소문 듣고 찾아온 고급 세단도 많다. 운전대를 잡으면 돼지불백이 당기나 보다.
혼자오면 큰 쟁반에 반찬을 담은 그대로 상에 낸다. 돼지불고기와 미니국수를 제외하고 메뉴는 매일 달라진다. 고기 한접시에 미니국수, 계란부침, 김치, 어묵볶음, 애호박볶음, 생마늘과 고추장 그리고 이날이 누군가의 생일일지 모르니 미역국(시험보는 날이면 어떡하지?).
쌈은 기본이다. 휴식이 별로 없는 택시기사에겐 꿀같은 점심시간이다. 고기를 올려 상추쌈을 싸며 홀로 고독한 미식을 즐길 수 있다. 여느 기사식당과 마찬가지로 생마늘과 풋고추(혹은 청양고추)를 준다. 맵싸라한 오신채(五辛菜)로 잠을 깨고 활력을 보충할 수 있는 충전소다.
차가 없는 이도 많이 찾아온다. 인근 원룸에 자취하는 20~30대 젊은 여성도 누군가와 방에서 라면을 먹는 대신 이곳을 찾아 돼지불백을 먹는다.
고기엔 불향이 깃들었다. 얇은 대신 쫄깃하다. 비계도 넉넉히 붙고 짭조름해 밥을 삼키기에 좋다. 고기를 위한 식탁이 아니다. 철저히 밥을 위한 식탁이다. 그래서 연탄불에서 갓 탈출한 이 집 고기가 유독 밥과 잘 어울리는 이유다.
★가격=돼지불고기백반 8000원. 소불고기백반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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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동 ‘쌍다리불백’
=입소문이 날 대로 난 집이다. 아마도 서울 시내를 운행 중인 택시기사 중에 이 집을 모른다면 오늘 처음 누구 대신 ‘도급 알바’를 뛰는 것임에 틀림없다. 일찌감치 성북동 개천가 쌍다리 앞에 자리잡은 기사식당이다. 단독 건물을 지어 앞뒤로 주차장을 뒀다. 벽돌건물이 근사하고 편안하다. 실내도 여느 기사식당 같지않게 세련된 레스토랑 분위기를 낸다.
언덕배기 비탈길을 올라가야 하기에 차가 없으면 가기 힘든 집인데, ‘식때’ 구분 없이 많은 이들이 쌍다리 불백을 찾아온다.
열이면 아홉은 돼지불백을 주문한다. 갈길 바쁜 기사들을 위한 기사식당은 과연 빨라서 좋다. 접시에 담은 불고기가 곧 상에 올랐다. 양념육이 살짝 타들어가며 불향이 코끝에 머문다. 척 봐도 탱탱한 비계가 부드러운 살코기에 찰싹 붙은 돼지불고기를 직화로 구웠다가 낸다. 한점 들어 맛을 봤다. 부드럽다. 고기도 양념도 좋다,
흔히 돼지불백하면 고추장 양념을 떠올리는데 선입견이다. 잘 된다는 돼지불백집은 죄다 간장 양념이다. 이 집 양념도 그렇다. 살짝 달달하면서도 그리 세지않아 고기맛도 불맛도 지워버리지 않는다. 불을 만난 간장은 더욱 향긋하다.
쌈이 기본이다. 밥을 조금 올리고 부추와 무채를 넣어 쌈을 싸도 짜지않아 좋다. 고기 한 접시가 밥 한 공기 먹기에 다소 넘친다. 곁들인 반찬은 정갈하고 깔끔하다. 김치와 부추 무침을 제외하곤 그다지 자극적이지 않은 찬 일색이다. 돼지불백의 강렬한 맛과 진한 기름의 자취를 바지락 조개 국물이 싹 걷어준다.
★가격=돼지불백 8000원. 돼지불백(특)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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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시 광탄면 ‘맛누리식당’
=강변북로를 타고 문발 IC를 지나 광탄면으로 10㎞쯤 들어가면 국도변에 ‘맛누리식당’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시골길이지만 주변에 공장과 골프장이 많이 있어 식당 앞의 삼거리길은 차량들로 항상 붐빈다. 식당의 주메뉴는 연탄석쇠 불고기백반이다. 부드러운 살코기가 많은 돼지의 목살을 3일 동안 사과와 양파 등 여러 재료로 숙성한 후 식탁에 낸다. 고기는 사과즙에 절여 새콤달콤하다.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깊은 단맛이 스며있다. 반찬은 불고기와 잘 어울린다. 상추를 비롯 깻잎, 된장찌개, 마늘, 꼬시래기 등 비타민과 단백질이 풍부한 찬들이다. 맛은 물론 건강을 책임질 수 있는 메뉴인 덕에 단골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 택시기사는 물론 공장의 인부들, 9홀 또는 18홀을 뛰어야 하는 골퍼 등이 건강과 맛을 위해 주로 찾는다.
★가격=연탄석쇠 불고기백반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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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시 법원리 ‘연탄까스’
= 말그대로 ‘연탄불고기백반’을 주메뉴로 하고 있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레시피를 완성했다. 사과, 배, 파인애플, 키위 등 온갖 과일과 양파를 고기와 섞어 3일 동안 숙성시켜 연탄불에 살짝 초벌구이한다. 초벌한 고기를 먹기 편하게 자른 다음 다시 3일간 냉장고에서 숙성시킨다. 6~7일 숙성된 고기가 비로소 손님들의 식탁에 오른다.
오랜 숙성을 거친 고기라 육질이 대단히 부드럽다. 처음 먹어보는 사람은 소고기라고 착각할 정도다. 양념도 담백해서 여성이나 어린이들도 좋아한다. 국도변에 위치해 택시기사들이 많이 찾지만 인근에 군부대도 많아 혈기왕성한 젊은 군인들도 단골이다. 요즘은 관광객들에게도 많이 알려졌다. 한 외국인은 맛에 반해 리필을 두 번이나 요청했고, 식사 후에는 엄지를 올리며 팁도 두둑하게 내놓을 정도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반찬은 다양하고 정갈하다. 주인이 직접 농사지은 식재료는 깨끗하고 풍성하다.
★가격=연탄돼지불고기백반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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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장항동 ‘장군 돈 연탄불고기 백반’
=자유로를 타다 장항IC로 빠지면 공장지대가 보인다. 많은 식당들이 있지만 차량들로 주차장이 꽉 찬 곳은 ‘장군 돈 연탄불고기 백반’ 식당이다. 이 식당에서 내놓는 음식은 무엇이든 양이 많고 푸짐하다.
큰 접시에 담긴 상추와 깻잎, 엄청난 마늘, 큼직한 김치와 열무가 식탁을 가득 채운다. 주메뉴인 두텁게 썬 돼지고기는 고추장과 물엿에 버무려 아삭한 콩나물, 부추와 함께 석쇠에 올린다. 상냥하고 씩씩한 여주인은 “5000원 중 재료비가 3500원에서 4000원을 차지한다. 죽기살기로 팔아야한다”며 “손님이 배가 불러야 나가게 한다. 수지가 안맞아도 손님이 만족해야 직성이 풀린다”며 활짝 웃었다.
이 집의 특장점은 고기를 추가해도 돈을 받지 않는다. 많이 먹든, 적게 먹든 무조건 5000원이다. 씨름선수가 와서 5만원어치를 먹어도 주인의 손에는 단돈 5000원만 쥐어진다. 계란 한판을 먹어도 5000원이다. 후덕한 인심덕에 되레 손님들의 불평이 쌓인다고. 주인은 “우리 식당에 오면 많이 먹게돼 살이 찐다며 손님들이 짜증도 내고 투정도 한다. 손님들이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행복하다”며 자신 만의 즐거움을 귀띔했다.
★가격=연탄불고기 백반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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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문래동 ‘문래돼지불백’=
서울 문래근린공원 공영주차장 맞은편에 자리한 문래돼지불백은 2013년 개업과 동시에 입소문을 타더니 4년 만에 지역을 대표하는 맛집으로 등극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삼삼오오 밀려드는 손님들로 어느새 식당 안은 만석이다. 혼자서 식사를 하는 ‘혼밥러’ 여성과 ‘원조 혼밥러’ 택시기사, 직장인 남녀까지 식당 안은 각양각색의 손님들로 가득찼다.
가게 안은 온통 노란색. 벽면은 해체한 자개농의 문짝을 붙여 놓았다. 자개장을 재활용한 메뉴판이 인상적이다. 가게 입구에는 손을 씻을 수 있도록 개수대도 마련돼 있다. 잠시 후 숯불 향 가득한 돼지불고기와 상추, 콩나물, 무생채, 양파, 마늘 그리고 우거지 된장국이 차려졌다. 초벌구이한 돼지불고기는 주문과 함께 숯불에 다시 한번 구워 낸다. 양념을 안한 듯 보이지만 불맛과 함께 적당한 단맛이 느껴진다. 간도 적당해 고기 자체의 담백함을 느낄 수 있다. 양념이 자극적이지 않고 순하다. 집밥 느낌이다. 밥과 함께 나온 우거지 된장국은 약간 싱거워 더 좋았다. 상추위에 야들한 돼지불고기 몇점과 밥을 올리고 마늘과 쌈장, 무생채를 올리면 순식간에 밥 한그릇 뚝딱이다.
사실 문래불백의 시작은 문래동이 아니다. 이 집의 주인장 서홍석(75)씨는 지난 1983~1994년까지 양천구에서 돼지불백집을 크게 운영했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2013년에 이곳 문래동에서 ‘문래돼지불백’ 상호로 영업을 재개했다. 이 집의 인기비결을 묻자 불고기 양념 비법은 본인과 아들만 안다며 빙그레 웃었다.
★가격=문래불백 1인분(200g) 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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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망원동 ‘만복기사식당’=
낯선 여행지에서 맛있는 식당을 고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택시 기사에게 묻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택시기사 만큼 구석구석을 누비며 몸소 보고 듣고 느끼는 직업이 또 어디 있으랴. 그래서 웬만한 기사식당 치고 맛없는 집을 찾기가 더 어려운 이유다. 더군다나 오랜 전통을 지켜온 기사식당이라면 십중팔구 확실한 맛집이다. 만복기사식당도 망원동에서 18년을 지켜온 토박이 식당이다.
점심시간에 서울 망원동 한강변의 위치한 만복기사식당을 찾았다. ‘만복기사식당·불백전문’이라 쓴 붉은 간판이 눈에 띈다. 입구에는 식사를 마친 손님 몇이 삼삼오오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고 가게 안은 제법 손님들로 북적인다. 일단 안심이다. 손님이 북적이는 식당치고 허탕치는 일은 없을 터. 이 집의 대표 메뉴 고추장 불백을 주문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손님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어 온다. 몸에 딱 달라붙은 사이클복을 입은 무리와 유니폼을 입은 택시기사, 인근 지역주민 등 다양한 손님 군이 이채롭다.
곧이어 ‘고추장 불백’이 모습을 드러냈다. 뻘건 고추장 양념이 밴 돼지고기와 큼지막하게 썬 양파가 불판에 올려져 나온다. 고기는 날고기가 아닌 주방에서 살짝 초벌을 해서 내놓았다. 국내산 돼지의 앞다리와 뒷다리살을 적당히 섞어 쓴다는 이 집 고기는 삼겹살처럼 살코기에 비계가 적당히 붙어있어 씹을 때 퍽퍽하지 않다. 칼칼하고 촉촉한 고추장 양념에 재워 12시간 숙성을 거친 고기는 육즙과 양념이 어우러져 부드럽게 넘어간다. 매콤한 불고기 양념 탓에 입안이 얼얼하다. 밥과 함께 나온 구수한 우거지 된장국을 들이켜면 입안의 매운맛을 가시게 해줘 속이 편안하다.
★가격=돼지불백·고추장불백 1인분(200g) 7000원.
demory@sportsseoul.com
연남동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감나무집 돼지불백. 사진| 이우석기자 demory@sportsseoul.com기사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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