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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은 실로 대단한 음식이었다. 아무때나 맛볼 수 있는 그런 흔한 음식이 아니라 특별한 날에만 싸주던 ‘스페셜 요리’였다.

[스포츠서울 이우석·황철훈기자]

늘 설렜다. 장판에 껌딱지처럼 붙어 자다가도 그날이면 장닭처럼 일찌감치 깼다. 플라스틱 알람시계의 역할을 대신한 것은 부엌에서 흘러나오는 고소한 참기름내.엄마는 부지런히 김밥을 말고 있었다.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가가 냉큼 김밥 하나를 통째로 집어 입에 물고 줄달음친다. 아직 썰지도 않은 굵직한 김밥은 따스한 온기가 가득했다. 밥속에 든 아삭하고 짭조름한 단무지, 분홍빛 소시지가 그리도 맛있었다. 어묵도, 심지어 시금치도 입에 짝짝 붙었다.그날은 소풍가는 날, 아니 김밥먹는 날이었다.김밥은 굉장한 별미였다. 평소 해주지 않는, 그래서 소풍이나 가야 먹는 음식.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좋아하는 메뉴가 김밥이었다. 지금이야 끼니를 때우는 ‘구황음식’이지만 옛날엔 값도 비쌌다. 귀하신 몸이었다. 1981년 4월 10일자 매일경제신문에는 롯데쇼핑센터 지하 1층에서 인근 회사원들의 점심식사로 각광받던 김밥이 900~1500원에 팔리고 있다는 기사가 등장한다. 10여년 후인 1992년 10월25일 동아일보는 1000원하던 김밥을 1200원으로 올렸다며 고속도로 휴게소의 일방적인 바가지 상술에 대해 비판했다.지금과 비슷한 가격이다. 2000원쯤 한다. 내용물은 더 좋아졌다. 35년 동안 거의 가격이 오르지 않은 먹거리는 김밥과 바나나(이건 오히려 내렸다) 밖에 없다.이처럼 몸을 한껏 낮추고 여전히 사람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김밥. 전국에 김밥 깨나 말아낸다는 김밥 맛집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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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인근에서 인기몰이 중인 연우김밥. 평범해보이지만 속과 밥의 조화가 좋다. 청정 계란을 써 요즘에도 계란말이를 맛볼 수 있다.

연우김밥

(서울 성산동)=홍대 앞 상수동 젊음의 거리 일대에서 칭송이 자자하다. 인근 사무실 회사원들은 물론 원룸 자취생의 일용할 양식이자, 별미로 인기를 모으는 집. 2000원이란 착한(?) 가격이지만 좋은 식재료와 숙달된 솜씨로 맛있는 김밥을 금세 쓱쓱 말아준다. 그래서 피크닉 및 워크숍, 직장인 야구단 등이 단골로 단체 주문하는 곳이다.

시그니처 메뉴인 연우김밥에는 홍당무와 우엉조림, 단무지, 시금치, 햄에다 요새 보기 힘든 계란말이가 들어간다. 문의해보니 살충제 계란과는 무관한 청정 사육방식의 강원도 철원군에서 직접 가져온 계란을 쓰는 덕에 아무 문제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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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역 사거리에 위치한 연우김밥. 최근엔 인근 성산동에도 직영2호점이 생겼다.

매운 멸치조림을 넣은 멸치김밥과 새빨간 명태회를 넣어 싼 명태김밥, 참치김밥, 더블치즈김밥, 유부김밥 등 다양한 메뉴가 있다. 특히 꽃나물김밥은 여성들에게 인기있는 아이템. 전주에서 가져온 꽃나물 무침을 잘게 썰어넣어 담백하고도 짭조름한 맛이 일품이다.

아! 뭔가 서정적인 느낌을 주는 연우김밥 상호의 유래는 간단하다. 사장 이름이 박연우 씨다.

★가격=연우김밥 2000원. 인근 (성산동 250-18)에도 직영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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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동 지하라면집 즉석 김밥.

무교동 ‘지하라면집’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오피스 가(街)인 무교동·다동에서 ‘어딘지 안 알려주고 쉬쉬하면서 지들끼리 먹는다’는 김밥이다. 지하 1층 예닐곱명 밖에 못받는 조그마한 가게. 노부부가 함께 라면을 끓이고 김밥을 만다. 주문 즉시 준비해놓은 재료를 쓱쓱 올려 둘둘 말아준다. 연륜이 느껴지는 솜씨를 보면 라면과 김밥엔 도가 텄다는 느낌.

약간 푸른 빛이 감도는 김은 향기가 좋고 재료도 튼실하다. 조린 우엉과 어묵에 홍당무, 시금치, 햄과 맛살이 들었다. 살짝 조리고 무쳐내 쫄깃하고 아삭하다. 밥의 양이 약간 많은 듯하지만, 간을 김치까지 먹는 것에 맞춘 듯하다. 김치까지 곁들여야 비로소 입안에서 맛이 완성된다. 라면과 김밥을 같이 먹는 손님이 많아서인 듯하다.

‘지하라면집’이란 상호답게 라면 종류도 다양하다. 독특하게도 100원 단위로 가격을 차별화했다. 신라면은 2000원이고 짬뽕라면은 2600원, 오뎅신라면은 2800원, 오뎅짬뽕라면은 2900원. 이런 식이다. 취향에 따라 참깨라면, 감자라면 등도 골라서 맛볼 수 있다.

공기밥을 반 공기(500원)만 파는 것만 봐도, 분식집 장사로는 과연 이집을 따를 곳이 몇곳이나 되겠나 싶다.

★가격=즉석김밥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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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성동시장 보배김밥 우엉김밥

경주 성동시장 보배김밥

=관광 성수기엔 하루 400~500줄 판다는 집이다. 경주역 근처 성동시장은 이집 우엉김밥과 한식 뷔페 때문에 많은 관광객이 몰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콤짭조름하게 조려낸 우엉을 김밥 가운데 듬뿍 넣는 것도 모자라 아예 따로 수북히 얹어주기까지 한다.

밥의 양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바삭한 김과 어우러진 향긋한 우엉 향이 밥맛을 온통 지배한다. 고소한 내음이 코를 찌르는 참기름을 쓱쓱 발라 참깨까지 뿌려내면 그 향기로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개인적인 입맛으론 계란말이를 많이 넣은 김밥보다 우엉이 낫다.

김밥이 묵직하니 손에 드는 순간 포만감이 인다. 입안에서 퍼지는 달콤한 우엉향은 그 많은 밥을 삼킬 때까지 간다. 이것저것 섞였으니 웬만한 한식정찬보다 든든하다.

1인분 개념으로 2줄씩 판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가격은 같지만 성동시장 안에서 한식뷔페도 먹고 김밥도 맛보려는 혼행객에겐 부담이다.

★가격=우엉김밥 1인분(2줄)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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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마녀김밥 직영점의 ‘마녀김밥’과 ‘고추김밥’

●서울 한강대로 ‘청담동 마녀김밥’=

연예인이 많이 찾는 김밥집으로 유명해진 청담동 마녀김밥은 두터운 마니아층을 보유한 강남 대표 김밥집이다. 맛있는 김밥을 맛보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개그우먼 심진화. 심지어는 제주도에서 직접 공수해서 먹을 정도로 김밥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그녀를 단번에 중독시켜 버린 김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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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마니아이자 청담동 마녀김밥 직영점 대표인 개그우면 심진화가 김밥을 먹는 익살스런 표정을 짓고있다.

김밥 20인분을 매번 사다가 냉동보관까지 해서 먹었다는 그녀가 마녀김밥 이영숙 대표를 찾아가 두 달여를 조르고 졸라 아예 감밥집을 차렸다. 삼각지역 인근 청담동 마녀김밥 직영점이다. 이 집 김밥의 가장 큰 특징은 밥에 있다. 돼지고기와 양념을 볶은 후 급랭시켜 숙성해 밥과 버무려 사용한다. 송화 소금물에 데친 야채와 함께 이 집 만의 특징인 맛살을 튀겨서 김밥 속재료를 완성한다.

대표메뉴 마녀김밥은 바삭바삭 씹히는 튀긴 맛살이 이채롭다. 고기양념으로 맛을 낸 담백한 밥과 고소하고 바삭한 맛살튀김이 어우러져 맛과 식감을 모두 잡았다. 이 집의 또 하나의 대표메뉴 고추김밥은 실멸치볶음에 청양고추가 들어가 알싸한 매운맛으로 뒷맛이 깔끔하다. 또한 김밥의 기본 재료인 계란지단과 햄, 단무지, 어묵 등이 실하게 채워져 김밥 한 줄에 속이 든든해진다.

신랑 이름은 김원효지만 원효로가 아닌 그 옆 한강대로 자이 아파트 상가에 위치했다.

★가격=마녀김밥 3300원, 고추김밥 3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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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원조깁밥

서울 방배동 ‘해남원조김밥’

=김밥 하나로 40년 전통을 이어온 방배동 토박이 맛집이다. 방배동 남부시장에서 김밥 장사를 이어오다 20여 년 전에 방배동 골목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20년을 지켜왔다.

방배동 카페골목에 이르러 다시 작은 골목으로 80여 미터를 들어가니 한눈에 봐도 역사와 전통이 느껴지는 초록색 바탕에 흰 글씨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주문과 동시에 김 위에 밥을 잘 펴서 놓고 갖은 재료를 얹은 다음 마지막으로 이 집만의 필살기인 많은 양의 조린 우영과 볶은 유부를 밥 위에 솔솔 뿌려준다. 다시 김밥을 돌돌 말아 순식간에 썰어내 알루미늄 포일에 한 줄씩 포장해 건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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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원조김밥의 필살기인 조린 우영과 볶은 유부

계산은 매장 입구 빨간 ‘소쿠리’에 돈을 내고 거스름돈을 알아서 챙겨가면 된다. 일명 셀프계산이다. 주유소도 셀프주유소가 가격이 저렴하듯 이 집도 그래서인지 가격이 착하다. 또한 이 집은 무조건 테이크아웃이다. 매장 안은 테이블은 커녕 앉을 의자도 없다. 대표메뉴 유부김밥은 볶은 유부와 짭조름한 우엉조림이 어우러져 색다른 맛이다. 마치 맛있는 김밥과 유부초밥을 동시에 맛보는 느낌이랄까. 새콤하고 짭조름한 맛이 입맛을 자극한다. 그러면서도 뒷맛은 개운하다. 은근히 중독되는 맛이다.

이 집의 단무지는 유난히 희멀건하다. 이유를 물었다. 손수 담근 단무지만을 사용한단다.

★가격=유부김밥 2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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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합 등을 조려내는 전통식 통영 엄마손김밥

통영 엄마손김밥

=경남 통영시는 원래 통영이다가 1955년부터 1994년까지 충무(忠武)시였다. 이곳에 유명한 김밥이 있는데 여전히 ‘충무김밥’으로 불리고 있다.

여수에서 충무를 거쳐 부산 가는 여객선이 있었는데, 충무항에 들어서면 고무대야에 김밥을 잔뜩 담아 승객과 선원들에게 팔던 ‘뱃머리 김밥’으로 이름났다. 김에는 순전히 밥만 말고, 호래기(참꼴뚜기)나 홍합을 조려 무김치와 함께 먹던 독특한 방식이다. 중간에 소를 넣지 않으니 잘 쉬지않아 인기를 모았다.

이후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서 충무김밥으로 팔며 전국에 널리 퍼졌다.

강구안 인근 엄마손김밥은 사실 역사는 그리 오래된 집이 아니다. 하지만 오징어조림을 쓰는 여느 집과는 달리 호래기와 홍합조림을 주는 옛날 방식으로 유명한 집이다. 개업한 지 얼마 안돼서 가봤는데 그 맛이 충격적이었다. 호래기는 오징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미가 좋고, 말린 홍합은 불린 다음 다시 조려내 진한 감칠맛을 낸다. 어묵조림도 쫄깃하니 맛이 좋고 무김치도 딱 사나흘 전에 담가 가장 맛이 들 때 어슷어슷 썰어 담아준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입소문나 택배까지 보낸다는 옛날식 뱃머리 김밥과 구수한 시락국(시래기국)으로 관광객, 통영시민할 것 없이 인기를 누리는 집이다.

★가격=특미김밥 7000원(호래기+홍합+어묵).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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