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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렴대옥-김주식 조가 지난 2월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피겨 페어 연기를 펼치고 있다. 제공 | 대한체육회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세계 평화로 가는 작은 발걸음을 보고 있다.”

2012년 피겨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딴 머빈 트란(27·미국)은 지난 13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끝난 ‘2017 퀘벡 여름 피겨 챔피언십’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유가 있다. 트란은 마리사 카스텔리와 짝을 이뤄 쇼트프로그램 3위, 프리스케이팅 4위에 올랐는데 두 종목에서 준우승한 팀이 바로 북한 커플이었기 때문이다. 내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북한 선수로는 유일하게 자력 진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렴대옥(18)-김주식(24) 조가 그들이다.

렴대옥-김주식 조는 지난 2월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3위를 차지해 북한에 유일한 메달을 안겼다. 한 달 뒤 핀란드 헬싱키 세계선수권에선 15위에 올라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헬싱키에서 평창 올림픽 본선 티켓을 아깝게 놓친 것이 아쉬웠다. 그런 그들이 ‘퀘벡 챔피언십’에 출전해 2017~2018시즌 첫 연기를 펼쳐보였다. 그들의 목표는 6개월도 남지 않은 평창 올림픽이었다.

독일의 스포츠 전문 통신사 SID는 지난 14일 보도를 통해 그들의 스토리를 자세하게 다뤘다. 렴대옥-김주식 조는 대회 기간 내내 공식적인 발언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취재진이 질문을 할 경우, 그들 대신 통역을 담당하는 이가 답변을 내놨다. SID는 답변자를 ‘감시자(Aufpasser)’로 표현했다. ‘감시자’는 “남과 북은 지금 좋은 관계가 아니다”며 “그럼에도 우리 선수들은 올림픽에 나가고 싶어 한다”고 짧게 답변했다. 둘은 캐나다에서 김현선 코치 외에 캐나다 출신 유명 지도자인 브루노 마코트와도 계약을 맺어 몇 주째 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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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렴대옥-김주식 조가 지난 2월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피겨 페어 연기를 펼치고 있다. 제공 | 대한체육회

렴대옥-김주식 조는 3월 세계선수권에서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각각 64.52점과 105.13점을 얻었다. 이번 ‘퀘벡 챔피언십’에선 시즌 첫 대회임에도 쇼트프로그램 67.38점, 프리스케이팅 113.62점을 획득, 더 많은 점수를 받았다. 실력이 점점 업그레이드되는 셈이다. 같은 대회에 출전한 한국 대표 김규은-감강찬 조(쇼트프로그램 50.66점, 프리스케이팅 91.76점)보다 우월한 실력을 드러냈다. 북한은 피겨 종목 중 세계적으로 선수층이 얇고,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페어에 많은 신경을 써 아시안게임 메달까지 따내고 있다. 피겨를 잘 하는 남·녀 싱글 선수가 보이면 짝을 지어 팀을 맺어주는 형식이다. 그런 노력이 맺은 결실 중 하나가 렴대옥-김주식 조다. 둘은 2016년 대만 타이페이 4대륙선수권에서 7위에 오르면서 국제 무대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피겨 커플의 평창행 자격 획득은 다음달 27~30일 독일 오베르스트도르프에서 열리는 ‘네벨혼 트로피’를 통해 결판난다. 이 종목에서 평창행 티켓을 이미 거머쥔 선수들의 소속 국가 외에 나머지 국가 선수들 가운데 4위 이내에 진입하면 꿈에 그리던 올림픽 무대를 밟을 수 있다. 세계선수권 등을 통해 나타난 기량을 볼 때 평창행 가능성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동계올림픽 피겨 종목엔 개최국 자동진출권이 없다. 한국에선 김수연-감형태 조가 네벨혼 대회에 출전한다. 남·북간 선의의 경쟁도 기대된다.

북한 커플이 자격을 따낸다고 평창에 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종 결정권은 결국 북한 당국,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와 평창올림픽조직위는 북한 선수단 참가를 적극 권하고 있다. SID는 “마코트 코치는 북한 커플이 좀 더 많은 대회에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그러나 북한이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황이고, 외화도 부족해 문제에 직면했다. 이들은 2016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려 했으나 입국을 거부당했다. 독일 네벨혼 트로피에선 다행히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고 전했다. 지난 4월 여자 축구 및 여자 아이스하키의 남·북 대결 뒤 북한의 평창 올림픽 출전 여부가 갈수록 화제가 되고 있다. 렴대옥-김주식 조의 캐나다 전지훈련 및 대회 참가는 한반도 긴장 고조에도 불구하고 두 스케이터의 올림픽 꿈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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