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인 볼트
런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400m 계주 결승에서 자메이카의 마지막 주자로 나섰다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쓰러진 우사인 볼트. 사진은 지난 2011 대구 대회 때 200m 결승 때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는 볼트의 모습. 김도훈기자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악몽의 레이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선수 은퇴 무대에 선 우사인 볼트(31·자메이카)의 모습은 기대 이하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영국 런던에서 진행 중인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마지막으로 선수 은퇴를 선언한 볼트는 13일 오전 5시50분(한국시간) 영국 런던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회 남자 400m 계주 결승에서 자메이카의 최종 주자로 나섰으나 20보도 채 뛰지 않았을 때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쓰러졌다. 왼 허벅지 근육 경련. 100m에서 저조한 레이스로 저스틴 게이틀린에게 우승을 내준 볼트로서는 마지막을 금빛 레이스로 장식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더구나 자메이카 남자 400m 계주 팀은 2009년 베를린, 2011년 대구, 2013년 모스크바, 2015년 베이징 세계선수권에서 모두 우승했다. 마지막 경기를 앞둔 볼트를 앞세워 자메이카는 대회 5연패를 노렸다. 초반 강력한 경쟁국인 미국과 대등하게 겨뤘다. 3번 주자 요한 블레이크가 볼트에게 바통을 넘길 때까지만 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볼트가 뜻밖에 근육 경련으로 쓰러지면서 모든 이들을 당황하게 했다.

육상 전문가들은 단거리 대세가 이번 대회를 통해 다시 자메이카에서 미국으로 넘어갔다고 보고 있다. 1982년 뉴델리,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육상 남자 200m 금메달리스트인 장재근 화성시청 감독은 “자메이카는 번뜩이는 선수가 자주 등장했다가 사라지곤 했다”며 “미국처럼 꾸준히 뼈대를 지니면서 경쟁력을 발휘하는 수준이 아니었는데 자메이카가 최근 세대교체에 실패하면서 단거리 주도권이 미국에 넘어갔다”고 설명했다. 실제 여자 400m 계주도 미국이 자메이카를 제치고 6년 만에 우승했다. 무엇보다 볼트의 부진이 가장 충격적이다. 사실 볼트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이번 대회 출전을 앞두고 정상적인 훈련을 소화하지 못했다. 지난 4월 절친한 친구이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높이뛰기 은메달리스트인 저메인 메이슨(영국)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충격에 빠진 그는 장례식에 참가한 뒤 한동안 실의에 빠져 정상 훈련을 소화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달 모나코에서 올 시즌 자신의 최고 기록인 9초95를 기록하면서 다시 기대를 모았으나 세계선수권에서 부진으로 이어졌다. 장 감독은 “볼트가 100m 뛰는 모습을 봤는데 예선과 준결승, 결승 때 뛰는 자세와 표정이 모두 달랐다”며 “준결승과 결승에서는 여유를 못 찾더라. 그만큼 준비가 스스로 완벽하지 못했고 마음이 급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근육이 경직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또 “사실 볼트가 대회 전 (세계기록을 보유한) 200m에 불참한다고 했을 때부터 100m도 쉽지 않다고 여겼다. 200m를 포기한다는 건 그만큼 연습이 부족했다는 뜻이고 단거리에서 가장 중요한 밀어내는 힘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자메이카가 무너진 사이 우승은 개최국 영국에 돌아갔다. 치진두 우자, 애덤 게밀리, 대니얼 탈봇, 느다니엘 미첼-블레이크가 이어 달린 영국은 37초47의 올 시즌 최고 기록을 세우며 미국(37초52)을 눌렀다. 영국 마지막 주자 미첼-블레이크가 미국의 크리스천 콜먼을 제치면서 사상 첫 우승을 조국에 안겼다. 미국은 마지막 주자 크리스천 콜먼이 미첼-블레이크에게 역전을 허용해 37초52, 2위로 밀렸다. 지난해 리우올림픽 ‘깜짝 은메달’을 차지한 일본은 다다 슈헤이, 이즈카 쇼타, 기류 요시히데, 겐지 후지미쯔가 팀을 이뤄 38초04로 3위에 올랐다. 혼혈 선수인 아사카 캠브리지가 뛰지 않고도 시상대에 오르는 저력을 과시하며 400m 계주 강국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kyi0486@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