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포토] \'여왕기\' 우승후보 한양여대의 매서운 골맛!
한양여대 송지연(왼쪽)이 지난 6월3일 경북 경주시 알천체육공원에서 진행된 제25회 여왕기 전국여자축구대회 조별 예선 대전대덕대와의 경기에서 후반 추가골을 성공시킨 뒤 동료들과 얼싸안으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김도훈기자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지소연, 임선주, 정설빈, 서현숙 등 수많은 국가대표를 배출한 ‘여자 대학축구의 명문’ 한양여대가 재정난을 이유로 축구부 창단 24년 만에 전격 해체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또다른 명문인 여주대가 문을 닫은 데 이어 한양여대마저 쓰러지면서 어려운 환경에도 꿋꿋이 축구부를 유지해온 여자 대학축구계에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자 축구계 한 관계자는 최근 스포츠서울을 통해 “여러 대학이 등록금 동결 등 문제로 재정난을 호소하는 상황에서 축구부 운영에 부담을 떠안는 게 현실”이라며 “한양여대도 최근 6~7년간 교수 급여가 동결되는 등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다. 안타깝지만 축구부 운영도 더이상 지속하기 어렵다는 뜻을 밝혔으며 2018년 신입생(16명)까지만 받고 2019년엔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다”고 전했다. 이보숙 한양여대 총장은 최근 교수 및 교직원 등 학교 관계자에게 재정 상황 프레젠테이션을 직접 진행하며 축구부 해체 등 일부 조직 개편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양여대 축구부는 1993년 2월 창단했다. 1997년 IMF 한파가 몰아치며 한 차례 해체 위기에 몰린 적이 있으나 이상엽 전 감독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2000년부터 신입생을 다시 받으며 팀을 살려냈다. 그후 한양여대는 각종 전국대회에서만 13회 정상에 올랐고 수차례 준우승하는 등 여자 대학축구의 명문으로 거듭났다. 한국 여자 축구 최고 스타인 지소연 등을 배출하면서 유망주에겐 선망의 팀이 됐다. 그러나 이번엔 피해가기 어려웠다.

기은경 한양여대 감독은 스포츠서울과 통화에서 “해체 결정은 사실”이라며 “학교 측의 상황은 이해할 수 있으나 착잡한 마음 뿐”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한양여대 출신으로 숭민 원더스와 대교를 거친 기 감독은 전남 광영중 감독으로 8년 간 일한 뒤 모교에서 3년 동안 코치로 이 전 감독을 보좌했다. 2년 전 이 전 감독이 정년퇴임한 뒤 지휘봉을 물려받아 감독대행을 맡다가 올해 감독으로 승격했다. 그는 “7월에 선수, 학부모에게 해체 결정을 알렸는데 개인적으로는 올초에 통보를 받았다. 하필이면 모교에서 내가 감독을 맡고 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져서 큰 죄를 지은 기분이다. 너무 속상하다”고 털어놨다. 기 감독은 해체 통보를 받은 뒤 축구부 유지를 위해 선수들 모르게 동분서주 뛰어다녔다. 한국여자축구연맹 등을 방문해 협조를 구했으나 축구부 유지 및 해체 결정권은 학교가 지니고 있어 한계가 있었다. 기 감독은 “최근 대회에서 4강 문턱을 넘지 못했는데 다 내 책임이다. 축구부 유지에만 신경쓰느라 훈련에 100% 집중하지 못했다. 선수들에게 미안하다”고 울먹였다.

기은경
한양여대 기은경 감독이 작전지시를 하고 있다. 최승섭기자

학교 측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한양여대 한 관계자는 “총장을 비롯해 대학 관계자들도 축구부를 없애는 결정을 내리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모든 대학이 연간 4~5억원이 드는 축구부 운영비를 감당하는 것에 대해 어려워하고 있다. 우리 학교는 여대라는 특성상 타 대학보다 운동부 유지를 위한 수입 창구가 부족하다. 최근 대학구조개혁 평가를 통해 입학인원마저 74명이 줄어들면서 등록금 수입이 감소해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갈수록 학령 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대학들의 운동부 축소는 장기적으로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30년이 채 되지 않는 한국 여자축구는 2009년 WK리그 출범과 함께 2010년 국제축구연맹(FIFA) U-17 월드컵 우승, U-20 월드컵 3위, 2015년 캐나다 성인월드컵 16강 등 과거와 비교하면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대표팀 호성적으로 황금기를 향해 달려갈 계기를 마련하고도 일선 초, 중, 고교에서는 선수 수급 부족과 재정난 등 불안정한 운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본은 2011년 여자 월드컵 우승 이후 대학 팀만 30개 팀 가까이 창단하는 중흥기를 끌어냈고 현재 유소년부터 성인까지 1500여개 팀 4만5000여 선수가 등록돼 있다. 반면 한국 여자 축구는 초, 중, 고, 대학, 실업을 다 합쳐도 70개 팀에 불과하다. 한양여대가 물러나면 대학 팀은 기존 등록 9개 팀에서 8개 팀으로 줄어들게 된다. 대학 팀 한 관계자는 “한양여대처럼 전통의 팀이 없어지면 나머지 팀끼리 경쟁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허탈해했다.

[SS포토]허탈한 한양여대,\'눈 앞까지 온 결승인데\'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한양여대. 스포츠서울 DB

일각에선 여자 축구팀 해체를 두고 정부의 정책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있다. 축구부를 운영하는 학교에서 교육부, 문체부 가이드를 현실적으로 따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선수들은 대회도 나가고 대표팀에도 가야하는데 교육부 등에서 내려오는 지침을 따라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갑자기 감사가 나와서 지적받으면 모집정원을 줄여야 하는 등 또다른 문제로 이어진다”고 호소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해 여자축구 발전을 위한 전담반을 꾸리는 등 장기적인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큰 그림을 그리기도 전에 그 기반이 돼야 할 일선 팀이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다. 꿈을 제대로 펴 보기도 전에 보금자리를 잃어버리는 선수가 늘어나면서 축구에 입문한 유망주들이 하나 둘 동기부여를 잃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하지 못하면 한국 여자 축구의 뿌리는 송두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kyi0486@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