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정기호기자] "지금까지 몰래카메라였습니다"라는 멘트를 들으면 누가 떠오르나요? 지난 1991년 4월 방송된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는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하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후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 크리에이터가 제작하는 콘텐츠의 단골 소재가 됐죠. 적정선을 지키면서 웃음을 준다면 크게 성공할 수 있지만, 누군가를 속이는 게 쉽지 않을 뿐더러 호의적인 반응을 기대하는 것도 어려운 게 사실인데요. 여기 '독이 든 성배'를 주저 없이 든 크리에이터가 있습니다.


조재원(25)은 페이스북 팔로워 31만명을 보유한 유머 크리에이터입니다. 몰래카메라와 술자리 게임 등을 독특한 콘셉트로 제작해 네티즌의 웃음을 자아내죠. 지난 2일 서울 공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영상 속 모습처럼 유쾌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쳤는데요. 그동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가슴 아픈 가족사를 최초로 공개하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죠. 역경을 딛고 최고의 유머 크리에이터로 우뚝 선 조재원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Q : 배우 여진구를 닮은 외모가 눈길을 끕니다.


조재원 : 제 입으로 얘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주위 사람들에게서 종종 들어요. 워낙 대단한 배우다 보니 욕을 먹기도 하고(웃음). 이젠 닮았다는 얘기를 들으면 여진구가 아니라 '여진족'을 닮았다고 받아칩니다.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것들도 웃음으로 승화시키려고 하죠.


Q : 그렇군요. 학창시절 육상 선수로 활동했다고 들었어요.


조재원 : 중학교 2학년 때 중·장거리 선수로 활동하다가 1년 후 단거리로 전향해 고교 2학년 때까지 선수 생활을 했어요. 서울시 대표로 전국대회에 출전해 5등을 차지할 정도로 실력이 괜찮았지만, 무릎이 좋지 않아 운동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것이 사라지자 허탈하고 우울한 마음에 방황하게 되더라고요. 주변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많았고.


Q : 목표가 사라진 후 순탄치 않은 길을 걸었을 듯한데요.


조재원 : 백화점 판매직과 급식소 설거지 등 가리지 않고 여러 가지 일을 했어요. 어느 정도 돈을 모아 야심차게 마케팅 사업을 했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시원하게 말아먹었죠(웃음). 어렸을 때부터 가슴 한편에 개그맨이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에 지난해 3월 대학로의 한 극단에 들어갔습니다. 무대에 오르기 위해 코너를 짜고 KBS와 SBS 등 방송사 공채 시험에도 응시했죠.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게 정말 기뻤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극단을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출 상환 시기는 점점 다가오는데 하루 24시간 중 16시간 이상을 공연에 투자하니 돈을 벌 수가 없었어요. 휴대전화 요금 등 자잘한 것들까지 합쳐보니 몇 천만원 정도 되더라고요. 일용직 근로자로 생계를 이어가던 중 '꿈보다 돈을 좇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회의감이 들었죠.


Q : 크리에이터로 활동한다고 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요?


조재원 :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야 인정하지 처음엔 무시하거나 비웃는 경우가 많은데요. 뒤에서 묵묵히 장소 섭외와 캐스팅을 도와주고, 힘들다는 말 한마디에 150만원이라는 큰돈을 선뜻 빌려주기까지. 차세현, 고건, 양재형 등 좋은 친구들이 많기에 복 받은 사람 같아요.



Q : 다른 몰래카메라와 차별화를 둔 부분이 있는지.


조재원 : 남들과 똑같은 콘텐츠를 만드는 게 싫어 큰 틀은 같더라도 연출에 차이를 둡니다. 김치찌개를 만들더라도 재료나 요리하는 방법이 다른 것처럼요. 영상을 보면 아랍인과 무속인 등 특정 캐릭터를 잡아 연기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요. 단순히 기획하고 촬영하는 게 아니라 콘텐츠에 저 자신을 녹여내는 거죠.


Q : 가장 기억에 남는 영상을 꼽는다면요.


조재원 : 지난 1일 '맛있는 고기를 먹고 시체가 든 캐리어를 발견한다면?'이라는 콘셉트의 영상을 게재했어요. KBS 공채 28기 개그맨 박성호와 함께 '보물섬' 멤버 이현석을 속였는데, 웃다가 배가 아플 정도로 표정과 행동이 너무 재밌더라고요. 틀을 잡고 그 안에서 우스꽝스럽게 잘 풀었고, 제목과 달리 내용이 자극적이지 않아 반응도 좋습니다.


Q : 웃음과 논란의 경계가 한 끗 차이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자신만의 제작 기준이 있나요?


조재원 : 항상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야 해요. 시청자가 눈살을 찌푸리지 않으면서 속는 사람도 웃어넘길 수 있어야 하죠. 촬영할 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건 기본이고요. 총 43편의 영상을 제작했는데 몰래카메라에 당한 사람이 불쾌감을 드러내 공개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Q : 예상치 못한 논란에 휩싸인 적도 있습니다.


조재원 : 남자 친구를 만나려고 어머니 앞에서 화장하는 동성애자 연기를 한 적이 있어요. 댓글 창은 온갖 욕설로 도배됐고, 수많은 네티즌이 영상을 놓고 설전을 벌였죠. 처음으로 논란이 된 거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영상을 내리고 진심이 담긴 사과글을 게재하며 잘 마무리했지만, 무언의 메시지가 잘못 전달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예민한 소재는 피하게 됐죠.


Q : 이런저런 이유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같아요.


조재원 : 하나의 영상을 제작하는데 최소 1주일이 걸려요. 오랜 시간을 투자했는데 반응이 안좋으면, 모든 걸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죠. 그럴 땐 술자리에서 친구들을 만나 스트레스를 풀어요. 술자리 게임을 제안하는 콘텐츠가 있는데, 한 번은 옆 테이블에서 제가 만든 '마주치는 눈빛' 게임을 하고 있어 놀랍고 신기했죠.


Q : 제작자로서 정말 뿌듯하겠어요. 꾸준하게 몰래카메라를 제작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조재원 :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았던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님께서 식당을 운영하면서 꽤 큰돈을 모았어요. 힘들게 살다가 마음이 놓여서인지 아버지께선 그 이후로 매일 술을 마셨고, 결국 알코올중독자가 됐죠. 본인 의지만으로 치료할 수 없어 병원에 입원했는데, 얼마 후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의료 시설을 제대로 갖춘 병원이었다면 살 수 있었는데. 생전 무표정한 분이었지만,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를 볼 때 만큼은 웃음이 넘쳤던 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어릴 때 접했던 프로그램이 자연스럽게 콘텐츠 제작으로 이어졌는데, 짧은 시간 안에 자리를 잡은 걸 보면 아버지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Q :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아버님께서 일찍 세상을 떠났기에 어머님에 대한 마음이 각별할 것 같아요.


조재원 : 혼자 식당을 운영하면서 아이 셋을 키우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존경할 수밖에 없는 분인데 저로 인해 "아비 없는 자식", "아들을 제대로 못 키웠네"라는 말이 나올까 봐 항상 신중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해요. 시간 날 때마다 일도 도와드리고. 큰 누나와 매형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가족들에게 정말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Q :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에 대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조재원 : 한 가지 분야에만 집중하고 싶지 않아 오랜 시간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했어요. 이제 마무리 단계라 곧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크리에이터이자 방송인으로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싶고. 몇 년 안에 최고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믿보조(믿고 보는 조재원)'가 되기 위해 자만하지 않고 항상 노력할 테니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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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정기호기자 jkh113@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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