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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왼쪽)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와 신태용 전 U-20 대표팀 감독. 제공 | 대한축구협회

[인천공항=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 ‘도하 참사’를 빚은 울리 슈틸리케 한국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의 경질이 확실시되고 있다. 자연스럽게 백척간두의 한국 축구를 구출할 ‘소방수’ 후보가 누구인가에 관심이 쏠린다. ‘백전노장’ 허정무(62)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와 ‘신흥명장’ 신태용(47) 전 U-20 대표팀 감독의 양자 구도로 좁혀지는 분위기다.

‘기적의 땅’ 카타르 도하마저 ‘참사’로 물들었다. 슈틸리케 감독이 지휘한 축구 국가대표팀은 14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8차전 카타르와의 원정 경기에서 상대 공격수 하산 알 하이도스에 두 골을 내주는 등 졸전 끝에 2-3으로 졌다. 한국은 카타르에 패했음에도 전날 이란(승점 20)이 한국을 턱밑 추격하는 3위 우즈베키스탄(승점 12)을 2-0으로 완파하고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러시아행 티켓을 따내는 덕분에 2위를 지켰다. 최종예선 4승1무3패(승점 13)을 기록하며 각 조 1~2위에 주어지는 본선 직행권을 일단 사수했다. 하지만 남은 9~10차전을 생각하면 본선 직행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몰렸다. 한국은 최근 맞대결에서 4연패를 기록 중인 이란과 8월 31일 홈에서 9차전을 치른다. 이어 9월 5일 2위 자리를 놓고 피말리는 싸움을 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과 원정 경기로 최종 10차전을 펼친다.

◇슈틸리케 “순위는 그대로인데”…이용수 기술위원장 “변화가 필요하다”

침울한 귀국이었다. 그 동안 경질론에 발끈하던 슈틸리케 감독도 이젠 자신의 중도 하차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다. 대표팀은 카타르전 직후 비행기에 올라 14일 저녁에 돌아왔다. 멍한 표정으로 취재진 앞에서 선 슈틸리케 감독은 “최근 우리가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인 것을 인정한다. 그런 면에서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며 “내일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가 열린다고 들었다. 기술위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 켠엔 대표팀 감독직을 맡고 싶은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그가 스스로 감독직을 내려놓지 않는 이유다. 그는 “카타르전을 치르기 전과 (최종예선 2위의)순위 차이는 없다”며 “어떻게 해서든 다음 경기를 잘 치러야 한다. 나와 함께든 다른 감독이 오든 그건 두 번째 문제다. 우선 팀이 재정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표팀과 함께 귀국한 이용수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변화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개인적으론 대표팀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위에서 심도 있게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기술위는 15일 오후 2시 파주 축구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NFC)에서 회의를 열어 슈틸리케 감독 진퇴를 다룬다. 기술위는 지난 3월 중국전 패배, 시리아전 졸전 뒤 ‘카타르전 승리’를 조건으로 슈틸리케 감독을 ‘한시적으로’ 유임했다. 그와 더 이상 함께 할 명분도, 이유도 없다.

◇큰 대회 경륜+코칭스태프 지속성→허정무가 제격

슈틸리케 감독이 경질되면 과연 후임자가 누가 될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일단 9~10차전을 통해 급한 불을 꺼야 하기 때문에 지금의 대표팀 선수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국내파 유력 지도자들로 폭이 좁혀질 수밖에 없다. 첫 후보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의 사상 첫 월드컵 원정 16강행을 이끈 허정무 프로연맹 부총재다.

허 부총재는 남아공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기성용, 이청용, 구자철 등 현 대표팀 주력 선수들을 대거 등용해 성적도 내고 한국 축구의 세대교체에도 성공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또 속공과 세트피스를 공격의 ‘양대 무기’로 꺼내든 ‘한국형 축구’로 세계적인 팀들과 당당히 겨뤘다. 성인대표팀 경험과 위기에 강한 저력 등이 난파 위기의 한국 축구 살리기에 부합한다는 평이다. 현 대표팀의 문제점을 알고 있는 코칭스태프를 고스란히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지목된다. 그는 남아공 월드컵 때는 수석코치를 맡았던 정해성 현 대표팀 코치와 호흡을 맞췄고, 설기현 현 대표팀 코치와는 2012년 인천 감독 시절 한솥밥을 먹었다. 다만 2012년 중반 인천에서 사임한 뒤 어떤 팀의 지휘봉도 잡은 적이 없어 현장 감각이 얼마나 남아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시아 다른 나라의 실력이 성장하고 있고 세계 축구가 역동적으로 변하는 상황에서 허 부총재가 현장을 5년 넘게 비운 것이 아킬레스건이다. 젊은 지도자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진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판단도 변수다.

◇신바람 공격 축구+특급 소방수→신태용 승격하나

신태용 감독도 또 하나의 유력 후보다. 신 감독은 최근 몇 년간 한국 축구의 ‘전문 소방수’로 자리매김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참패 뒤 열린 그 해 9월 A매치 2연전에서 감독대행을 맡아 한국 축구의 건재와 구름 관중을 이끌었다. 2016년 리우 올림픽과 최근 국내에서 열린 20세 이하(U-20) 월드컵 때도 전임 사령탑의 도중하차로 중간에 지휘봉을 잡아 특유의 공격 축구로 각각 8강과 16강이란 성적을 냈다. 최고의 결과는 아니었지만 위기 때 믿고 맡기기엔 큰 흠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손흥민, 황희찬 등 현 대표팀에서 에이스급으로 큰 20대 초·중반 젊은 선수들과 친하고 ‘슈틸리케호’에서 2014년 10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코치를 했다는 것도 장점이다. 스리백과 포백, 원톱과 투톱 등 각종 전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상대팀 분석이 날카롭다는 점은 신 감독의 ‘성인 대표팀 승격론’이 탄력받는 또다른 이유다. 임기응변에도 능하다. 다만 9~10차전을 그르칠 경우 브라질 월드컵 때 홍명보 전 대표팀 감독처럼 40대의 전도유망한 지도자 인생에 큰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그에겐 러시아 월드컵보다는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맡기는 게 낫다는 의견도 적지 않아 축구협회가 고심할 수 있다. 안정감이 다소 떨어진다는 일부의 지적도 있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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