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렛 필
KIA의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로 일하게 된 브렛 필이 지난 16일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2017. 5. 16광주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광주 = 스포츠서울 박현진 체육부장] 브렛 필(33)이 KIA의 해외 스카우트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게 무슨 대수냐’ 싶었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외국인선수 재활용’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강했다.

그러나 필이 아직 30대 초반의 많지 않은 나이에 특별한 부상도 없는 상태에서 과감하게 메이저리그에 대한 도전을 접었다는 점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더구나 그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는 동안 역대 어느 외국인선수보다 한국에 대한 강한 애정을 보여줬던 터였다. 야구를 떠나 대체로 외국인선수들은 그다지 정붙일 곳이 많지 않은 지방구단 보다는 서울이나 수도권 구단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필은 그렇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가장 지역색이 강하게 드러나는 광주에서 마치 토박이처럼 지난 3년을 보냈다. 팀 동료들 뿐만 아니라 이웃들과도 스스럼 없이 어울리며 정을 쌓았고 아이 둘도 모두 광주에서 낳았다. 외국인으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오죽했으면 모국으로 돌아간 뒤 오히려 소외감을 느끼고 다시 한국과 인연을 잇기로 했을까 싶어 광주구장을 찾은 필의 속내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필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동안 한 시간이 그야말로 훌쩍 지나갔다. 한국과 KBO리그를 사랑하는 필의 진심이 느껴졌고 ‘KIA 가족’의 일원으로서 팀을 위해 충분히 헌신할 준비가 됐다는 그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SS포토] 해외스카우터 필 \'소사와 수다\'
2017 KBO리그 KIA 타이거즈와 LG 트윈스의 경기가 16일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다.KIA 해외 스카우터 필(가운데)가 LG 소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17. 5. 16광주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 워낙 한국과 KIA에 대한 애착이 커서 처음 재계약하지 않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섭섭한 마음도 컸을 것 같다.

프로야구에서 구단과 선수는 기본적으로 비즈니스 관계에 있다. KIA에서 더 뛰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다. 구단 측에서 알려왔을 때 섭섭한 마음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보다는 다음에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 이후 메이저리그에 재도전했다가 실패하자 곧바로 은퇴를 선언했다. 부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직 나이도 많지 않아서 유니폼을 벗겠다는 결심을 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아쉬움은 없나.

스프링캠프에서 마이너리그행을 통보받은 뒤 가족과 의견을 나눴다. 아직 나이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마이너리그 생활은 충분히 겪어봤다. 이동거리도 길고 가족들과 함께 할 시간도 적다. 바뀐 환경에 적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11년 동안 선수 생활을 하지 않았나. 한국에서라면 더 뛰었겠지만 마이너리그에서는 나를 움직일 에너지나 동기부여를 찾기가 어려웠다. ‘여기까지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후회스럽지는 않다. 가족의 일원으로서 결정을 했고 내게는 가족이 먼저다.

- 한국야구와 다시 인연을 잇게 됐다. 소감은?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다. 비록 선수로서는 아니지만 KIA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해준 것은 그만큼 나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렸다는 얘기 아닌가. 경기력을 떠나 인간적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했고 매 순간 성실한 모습을 보여드리려 했던 것을 인정받은 것 같아 정말 고맙고 뿌듯했다.

- 현재 KIA는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당신이 바라본 KIA의 올 시즌 전망은?

미국에 있는 동안에도 KIA 경기를 꾸준히 지켜봤다. 지금의 KIA는 좋은 성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성이다. 프리에이전트(FA) 영입도 큰 부분이지만 트레이드를 통해 이명기, 김민식 등을 영입하면서 선수 구성이 참 잘됐다. 베테랑 선수들과 젊은 선수들이 고르게 섞여 있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좋은 성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부상 없이 건강한 시즌을 보내는 것이 관건인데 지금 선두를 달리고 있으니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내달릴 수 있을 것 같다.

- 올 시즌 국내 외국인 선수들의 수준은 어떤가?

올시즌엔 유난히 경력이 좋고 몸값이 비싼 선수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솔직히 기량에서 큰 차이는 느끼지 못하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야구에 어떻게 적응하느냐다. 그 차이가 결정적이다. 외국인선수는 거의 100% 성공여부가 적응력에 달렸다.

[SS포토]견제사 확신하는 양현종과 브렛 필
필(왼쪽)은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수 있을 것 같은 선수를 꼽아달라는 말에 선뜻 팀 동료였던 좌완 양현종(오른쪽)의 이름을 꺼냈다. 사진은 지난해 9월27일 LG와의 홈경기 3회초 1루 견제 아웃에 대한 합의판정이 진행되는 동안 양현종과 대화를 나누는 필. 취 재 일 : 2016-09-27취재기자 : 박진업
- 스카우트의 시각으로 볼 때 메이저리그에 충분히 도전할 만한 국내 선수들은 누구라고 보는가.

투수로는 두산 장원준과 우리 팀(KIA)의 양현종이 생각나고 야수들 가운데는 NC 나성범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경쟁력 있는 선수들이 많은데 황재균은 이미 미국으로 건나가지 않았나. 물론 기회를 잡는 것은 본인이 얼마나 자신의 능력을 확실하게 보여주느냐와 그 때 팀 상황에 달렸다. 황재균은 마이너리그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 미국과 다른 한국야구의 색깔은 무엇인가?

미국에서는 파워 피처와 파워 히터가 대접을 받고 팀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부여한다. 전형적인 힘 대결 양상으로 경기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야구는 수싸움이 더 치열하다. 마치 체스를 두는 것 처럼 두뇌게임과 전술전략이 중요하다.그게 가장 큰 차이인 것 같다.

- 한국야구를 경험한 외국인선수들이 현지 스카우트를 맡는 사례가 늘고 있다. 어떤 부분에서 장점이 있다고 보나.

한국적인 시각과 미국적인 시각을 함께 갖고 있고 그런 환경이 장점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 어느 정도 한국 야구의 경험을 갖고 있고 미국에서 뛰었으니 그 선수들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한다. 현지의 인맥도 광범위해서 어떤 선수가 필요할 때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얻기도 쉽다. 스카우트 업무는 처음이지만 혼자 움직이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서 큰 부담을 느끼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경험을 통해 선수를 보고 의견을 제시하며 그 정보를 팀원들과 함께 공유하면 된다.

- 이제 선수가 아닌 스카우트로 일하게 됐다. 경험을 통해 체득한 외국인선수의 성공의 잣대는 무엇인가.

물론 실력이 빼어난 선수들은 기록이 좋고 누가 보더라도 그 실력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평소 생활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게임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을 때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는지, 동료들과의 관계가 어떤지 등을 세밀하고 집중적으로 살펴본 뒤 선택해야 할 것 같다. 인성이 좋은 선수는 대부분 적응력이 뛰어나고 새로운 환경에서도 스스로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이 있다.

- 기술적으로는 어떤 선수를 데려와야 성공 확률이 높을까?

투수는 일단 제구력이 좋아야 한다. 한국 타자들은 아주 까다로와서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특히 주자를 내보낸 상황에서 제구가 흔들리면 안된다. 타자의 경우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상대 투수의 노림수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타자의 성향은 상대의 분석에 완전히 노출된다. 가령 커브에 약점을 보였다면 재빨리 그 부분을 알아차리고 커브에 배트를 내밀지 않거나 적절히 커트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야구와 한국야구를 떠나 개인적으로도 그런 스타일을 선호한다. 똑같은 조건이라면 제구가 나은 투수, 파워보다는 콘택트가 좋은 멀티플레이어를 선택하겠다. 빠른 공은 초반에는 효과가 있지만 결국은 제구가 동반돼야 한다. KBO리그에서도 LG의 헨리 소사 같은 경우 더 빠른 공을 던지기보다 변화구 제구에 더 신경을 쓰지 않나. 타자도 팀 상황이나 포지션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콘택트 히터가 더 효과적이다. 힘이 들어가면 삼진을 당하기 쉽고 슬럼프도 길어지지만 정확히 맞히다보면 타구를 멀리 보낼 수도 있다.

- 한국야구가 마냥 좋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외부의 시각에서 바라봤을 때 이런 점은 좀 지양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리그의 층이 두껍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 미국은 마이너리그 경쟁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인력 풀이 많고 자연스럽게 좋은 선수들이 성장해서 메이저리그로 올라온다. 한국도 매년 새로운 선수들이 나오지만 경쟁 구도를 더 활성화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마련돼야 좋은 선수들이 더 많이 배출되고 리그도 발전할 수 있다. 경기적으로는 선수들끼리 콜 플레이가 조금 더 세밀하게 이뤄져야 할 것 같다. 예를 들어 플라이볼 같은 경우 미국에서는 거의 구역을 정해두고 해당 선수가 콜을 하면 다른 선수가 접근하지 않는데 한국은 주변 선수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온다. 응원소리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소통이 조금더 명확해지면 좋을 것 같다.

브렛 필
필은 선후배간에 위계질서가 뚜렷하면서도 정이 넘치는 한국 특유의 팀 문화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사진은 필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꼽았던 지난해 와일드카드 결정전 2차전에서 1회 볼넷으로 출루한 뒤 후속 안타의 불발로 이닝이 종료되자 아쉬움에 고개를 떨구는 모습. 취 재 일 : 2016-10-11취재기자 : 김도훈
- 문화적 적응력도 중요하다. 당신은 한국 문화와 잘 맞았던 것 같다. 외국인선수가 이처럼 한국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동화된 사례는 아주 드물다.한국 사회가 어떤 매력으로 당신을 사로잡았는지 궁금하다.

중요한 것은 다른 문화에 대해 열려 있는 마음가짐,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아닐까. 나는 성격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서 무엇이든 경험하기를 좋아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문화도 다르고 야구를 둘러싼 시스템도 다르지만 ‘왜 이런 것을 하지?’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여기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 규칙이구나’라고 받아들였다. 스프링캠프에서도 아침에 함께 산책을 하는데 미국서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지만 해보니 나름대로 좋은 점도 많았다. 그런 부분이 야구는 물론 다른 환경에도 잘 적응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세대 간에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해주는 문화가 가장 인상깊었다. 선배가 후배를 챙겨주고 후배는 선배를 깍듯하게 따르는 것이 정말 보기 좋았다. 미국에서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데도 잘 따르지 않는데 경험이 많은 베테랑 선수들이 후배들의 잘못된 부분을 꾸짖으면 그것을 잘 받아들이고 고치더라. 그동안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 혹시 한글도 따로 공부한 적이 있나.

첫 해였던 2014년에 시즌 도중 한화 배영수(당시 삼성)의 투구에 손등을 맞아 한 달 가까이 경기에 뛰지 못한 적이 있다. 그때 본격적으로 한글을 배웠고 원정경기 때도 틈틈이 공부했다. 쓰는 것은 익숙치 않지만 읽는 것은 거의 다 읽는다. 단어의 의미를 몰라서 소통이 안되는 경우가 있지만 어느 정도의 일상적인 대화는 대부분 이해한다.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말도 더 잘하고 싶다.

- 한국에 있는 동안 가장 인상깊었던 순간을 꼽자면.

지난해 LG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정말 재미있었다. 마치 월드시리즈를 치르는 것 같았다. 열정적인 응원으로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주신 팬께 감사한다. 한국에서 야구했던 순간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아이 둘을 모두 이곳에서 낳았기 때문에 더 많은 추억이 쌓였다. 이웃 분들도 가족 이상으로 대해 주셨다. 정말 반갑게 맞아주셨고 수시로 정이 듬뿍 담긴 선물까지 주셨다. 그런 분들이 주변에 계셨기 때문에 오히려 고국인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 더 낯설고 허전함을 느낀다.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 당신에게 야구는 무엇인가? 그리고 야구에서 남은 꿈과 희망이 있다면 무엇인가?

4살부터 야구 좋아했고, 너무나 야구를 사랑한다. 지금은 선수로서 은퇴했지만 다행히 야구와 관련된 일을 하게 됐다. 이 정도면 내 인생의 거의 전부 아닌가. 선수가 아닌 직업으로는 처음 야구를 대하게 됐기 때문에 앞으로 내 야구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겠다. 먼 훗날의 꿈을 얘기하기엔 이른 시점이다.

jin@sportsseoul.com

◇ KIA 브렛 필 해외 스카우트

▲출생년월일=1984년 9월 9일

▲출생지=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마스

▲출신학교=코비나고~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풀러턴캠퍼스

▲경력=2006년 ML 드래프트 7라운드 샌프란시스코 지명

2011년 9월 메이저리그 데뷔(~2013년)

KBO리그 KIA 타이거즈(2013.12~2016.12)

디트로이트 타이거즈(2017.1~2017.3)

ML통산 타율 0.233 9홈런 32타점

KBO리그 통산 타율 0.316 61홈런 253타점

KIA 타이거즈 해외 스카우트(20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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