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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가 지난해 보낸 스승의 날 화환이 대동초등학교에 놓여 있다. 김현기기자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그게 바로 승우의 본 모습이죠.”

수화기 넘어 들려오는 가족들의 얘기는 2년 전과 똑같았다. 그는 골 넣는 아들도 자랑스러워했지만, 수비하고 헌신하는 아들을 더 뿌듯하게 생각했다. ‘코리안 메시’ 이승우(19)가 한국 축구에 다시 한 번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고 있다. 두 경기 연속골을 폭발시키며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의 ‘2017 U-20 월드컵’ 2연승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특히 하프라인부터 단독 드리블하며 상대 수비수를 추풍낙엽처럼 무너트리고 만든 23일 아르헨티나전 선제골은 이승우가 지난 2014년 10월 U-16 아시아선수권 일본전에서 뽑아낸 70여m 드리블에 이은 골 못지 않게 화려했다.

그러나 그를 어릴 때부터 고생하며 키워낸 가족과 은사는 이승우의 환상적인 득점도 훌륭하지만 팀과 어우러져 수비하고 파이팅을 불어넣는 모습이 더 좋다고 입을 모은다. 그들은 1~2차전을 본 뒤 이승우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며 아들이나 제자가 아닌 대표팀 전체의 승승장구를 기원했다.

◇바르셀로나보다 5~6배 더 수비 “그래서 뿌듯하다”

지난 2015년 10월이었다. 당시 이승우는 칠레에서 벌어진 U-17 월드컵에 출전하고 있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징계로 소속팀 경기에서는 뛰지 못하던 때였다. 체력과 감각이 아쉬운 시기에 이승우는 골보다 다른 쪽으로 팀을 도왔다. 밑으로 내려앉아 부지런히 수비하고 국제무대가 익숙하지 않은 선수들을 박수로 독려한 것이다. 한국은 브라질과 기니를 연파하며 조기 16강행을 이뤘다. 안정환 MBC 해설위원이 브라질전 승리 뒤 이승우의 헌신을 칭찬하기도 했다. 당시 가족들은 “득점보다 더 마음에 드는 플레이를 했다. 이게 승우의 본 모습이다”고 했다.

지금도 똑같다. 아버지 이영재 씨는 25일 “모든 것을 다 쏟아부을 만큼 열심히 수비하더라. 이게 승우의 본 모습이다”고 2년 전과 같은 평가를 내렸다. 이승우는 이번 대회 1~2차전에서 평소보다 5~6배는 더 수비했다고 한다. FC바르셀로나에선 어느 레벨에서건 볼점유율이 70~80%에 달하기 때문에 앞뒤로 오가는 수비의 필요성이 덜 하지만 지금의 신태용호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승우는 두 경기에서 승부의 추를 돌려놓는 선제골을 터트린 것은 물론 전·후·좌·우를 누비며 수비하고 동료들과 파이팅을 외친다. 이영재 씨는 “골을 더 넣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팀에 녹아드는 플레이가 좋다”고 아들을 칭찬했다.

[SS포토]이승우, 골키퍼 송범근과 승리의 세리머니를!
이승우가 23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U-20 월드컵’ 한국-아르헨티나 맞대결에서 한국의 2-1 승리가 확정되자 골키퍼 송범근과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전주 | 박진업기자

◇홍명보 감독처럼…스페인어 듣고 동료와 호흡

가족들은 또 하나의 뒷얘기도 알려줬다. 2011년 가을 FC바르셀로나 유소년팀과 계약한 이승우는 어느 덧 스페인 생활 5년 6개월이 되면서 현지 언어에도 능통하다. 같은 스페인어를 쓰는 23일 아르헨티나전에서 그의 숨은 능력이 더해졌다. 이승우는 상대가 세트피스를 준비할 때 앞 쪽으로 나와 수비하곤 했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얘기를 들은 뒤 최대한 팀 동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애쓴 것이다. 마치 2012 런던 올림픽 3~4위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상대팀 감독이 지시할 때마다 함께 뛰쳐나와 맞대응했던 홍명보 감독을 연상케한다. 홍 감독은 2000년 전후로 일본 J리그에서 생활하며 가시와 레이솔 주장까지 맡았다. ‘신태용호’는 16강 이후에도 스페인어를 쓰는 국가들과 만날 가능성이 또 있다. 이승우의 헌신이 또 한 번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다.

차범근
이승우(왼쪽에서 두 번째)가 2011년 2월7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제23회 차범근 축구대상 시상식을 마친 후 수상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승우는 이날 우수상을 탔다. 이정수기자

◇‘스승의 은혜 감사합니다’…인연을 잊지 않는다

은사도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승우는 초등학교 5학년이던 2009년 하반기에 유소년 명문 대동초등학교로 전학와서 본격적으로 꽃을 피웠다. 당시 그를 스카우트한 강경수 전 대동초 감독은 “처음 전학올 때만 해도 그렇게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다. 공격수도 아니었다”며 “6학년 때부터 실력이 급성장하고 파이팅 넘치는 선수가 됐다. 사람들이 ‘천재’라고 하는데 내가 보는 이승우는 노력을 굉장히 많이 하는 선수다”고 했다. 이승우는 스페인에서 돌아올 때면 가족들과 함께 모교를 가장 먼저 찾아 후배들과 축구도 하고 시간을 보낸다. 5월15일 ‘스승의 날’이 시즌과 겹칠 땐 꽃다발로 감사를 표시하기도 한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대동초를 찾았다고 한다. “명성이 높고 낮음을 떠나 자신과 인연을 맺은 이들은 꼭 기억하고 찾는다”는 게 가족들의 얘기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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