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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푸·푸나카·파로(부탄)=글·사진 스포츠서울 이우석기자]<지난주에서 이어짐>
날씨는 일정내내 좋았다. 물론 고산지대라 OTP 단말기처럼 하늘이 빨리 바뀐다. 구름이 물결치며 때론 잠깐 비를 뿌리는 등 변덕은 있었다. 일행 중 머리카락이 없는 이가 셋이나 되는 바람에 곳곳마다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설마 스님으로 생각하진 않았겠지만 환경보전을 소중한 가치로 생각하는 부탄에서, 샴푸 따윈 전혀 쓰지 않는 외국인이니 그 얼마나 그들의 국정 가치와 부합되는 민간교류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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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친절한 부탄사람들. 그들에게 해 줄 것이라곤 역시 미소 밖에 없는 우리에게 따뜻한 환대를 보내준다. 길가에 뛰노는 아이들도 삼성 스마트폰으로 검색 중이던 스님도 카메라 앵글을 맞추면 하던 일을 멈추고 바로 상냥한 표정으로 포즈를 취해준다(언젠가 러시아에선 사진을 찍다가 맞아죽을 뻔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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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부터 며칠 간 수도 팀푸의 사찰과 종(Djong), 승가대학, 탕카(탱화)복원연구소, 불교예술공예학교 등을 돌아다녔다. 살짝 싫증이 날 법도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성당 등 삐죽한 돌건물로 가득한 유럽에서도 그랬지만, 며칠 지나자 닮은 듯 다른 점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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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푸 도심은 그리 크지 않지만 있을 것은 다 있다. 나이트 클럽과 바, 당구장도 가끔 눈에 띈다. 부탄인들은 담배는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술은 꽤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로컬 드룩맥주도 그레인 위스키 K5도 훌륭하다. 값도 싸다. 덕분에 매일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재래시장에선 물론 고사리와 아스파라거스, 그리고 달콤한 과일부터 떫은 과일까지 살 수 있었다. 이상한 것이 하나 있었다. 소금 맛과 감 껍질 맛이 나는 과일인데 이상하게도 씹으면 달다. 오미자와 비슷하게 다양한 맛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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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사진을 가져오면 즉석에서 공식 우표로 만들어주는 중앙우체국도 관광객들에겐 굉장한 서비스다. 우표가 만들어지면 바로 그림 엽서를 누군가에게 부칠 수 있다. 소인이 찍힌 부탄 공식우표에 자신의 얼굴이 들어있다니. 누군가에겐 굉장한, 또 어떤 이에겐 딱히 원치 않는 기념선물이 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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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넘어 푸나카와 왕디로 갔다. 많은 것을 선택해서 즐길 수 있지만 사실 부탄 전역을 여행하는데 자유여행은 적절치 않다. 원래 인도인 외에는 자유여행이 허가되지 않을 뿐더러 대중교통도 그리 많지 않다. 국제운전면허 역시 쓸모 없다. 하지만 각 도시(종칵) 안에 국한돼서라면 비교적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특히 팀푸나 파로 정도로 몇 만명이 사는 큰(?) 도시에선 조깅을 즐기거나 자전거를 타는 서양인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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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례 도시에서 가장 중심가에 위치한 종이나 사찰이 들어선 환경은 비슷하지만, 분위기는 지역마다 전부 다르다. 개인적으로 가장 멋진 곳은 물가에 위치한 푸나카 종(Punakha Djong)과 파로(Pharo)의 외곽 산 절벽에 있는 탁상(Taktsang)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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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나카 종은 모추(어머니강)와 포추(아버지강)가 모이는 두물머리 쪽에 우뚝 선 종이다. 종 아래로 지하수가 흐르기 때문에 실제 물 위에 떠있는 형국이라고 한다. 우뚝 솟은 새하얀 건물과 물을 가로지르는 다리 풍경이 주변의 아름다운 꽃나무와 한데 어우러져 ‘신비의 나라’ 부탄이 가진 이미지를 보다 아름답게 상징하고 있다. ‘부탄 종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푸나카 종은 예전 푸나카가 부탄의 수도(~1955년)였을 때 행정의 중심이었다. 푸나카 종의 원래 이름은 ‘행복궁전’이란 뜻의 풍탕데첸포탕종(Pungtang Dechen Photrang Dzong)이다(부탄인은 그 이름을 짧게 고친 후 더 행복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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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자연적인 해자 역할을 하고 높게 솟은 사다리문은 비상 시에 들어올릴 수 있어 천연요새로서도 그 기능이 탁월한 종이다. 내부에는 샵둥의 등신대가 모셔져 있다는데 관광객은 들어갈 수 없다. 푸나카 종의 문 앞에는 아름드리 자작나무와 삼나무로 둘러쌓인 공원이 있다. 새파랗게 물 오른 신록의 봄, 하얀 수피를 자랑하는 자작나무 사이로 걷다보면 뉴욕 센트럴 파크 이상으로 평화롭고 여유롭다. 왜 부탄을 은둔의 나라로 폄훼(?)하는지 모를 일이다. 간 날이 휴일이라 그런지 많은 내국인들이 피크닉과 활쏘기를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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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양쪽 끝에서 서로의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이들. 활쏘기는 부탄의 국기(國技)다. 솜씨도 탁월하지만 얼마나 자신 있는지 안전 펜스도 없다. 구경하다 뭔가 쓱 하고 지나면 놀랍게도 화살이다. 쏜살같이(?) 피해 겨우 살아남았다.
이곳에서 래프팅도 즐길 수 있다. 어머니강(모추)에서 푸나카 종을 지나 아래 모래톱까지 내려온다. ‘히말라야에서의 래프팅’이라니 근사하다. ‘소변기에 붙은 파리 스티커’처럼 홀딱 젖을 줄 알았지만, 내린천이나 동강에서처럼 그리 거센 급류가 아니었고 부탄인 사공도 보트를 뒤집는 심술을 부리지 않았다. 천만다행이다. 갈아입을 옷을 챙겨오지도 않았고 고산 만년설이 녹아 내려오는 물도 차갑다. 행복한 나라에서 가장 불행한 외국인이 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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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나카를 떠나기 전에 꼭 들러봐야 할 곳이 있다. 농촌마을인 ‘치미’는 15세기 고승 람 둑파퀸리(1455-1570)가 사원을 만들면서 생겨난 마을인데, 망측하게도 집집마다 벽에 남성 성기, 즉 남근이 그려져 있다. 그냥 남근도 아니다. 불끈 힘이 솟은 모습에다 부릅 뜬 눈과 날개까지 달렸다. 게다가 무슨 눈물 같은 것을 뚝뚝 흘리는 해괴한 그래피티라니….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여행자로선 차마 몇 초이상 똑바로 바라볼 수 없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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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남근 그림은 사실 부탄 곳곳에 있지만 유독 치미마을에만 한가득인 이유는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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둑파퀸리는 기행을 일삼으며 히말라야 전역을 방랑하던 행려승이었다. 히말라야의 걸승으로 불리는 이 고승은 육신의 결합으로 도를 닦는다는 자신 만의 수행법을 따라 일생 동안 5000명의 여자랑 잔 것으로 알려졌다(부탄의 행복지수와는 상관 없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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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치미사원을 짓고 입적할 때 자신의 남근을 잘라 나무에 봉인했다. 미라가 된 남근이 아직 남아 있다. 그래서 사내아이를 갖기를 원하는 많은 부부들이 사원을 찾는단다. 치미 마을은 남근 형상을 세우고 그림을 그려 복을 기원한다. 어쨌든 호기심 많은 관광객이 줄을 이으니 남근으로 구복한 것이 주효한 셈이다.
여행의 막바지, 공항이 있는 파로로 이동했다. 도착 후 문제가 생겼다. 일행 중 김산환이라는 늙수구레한 오십줄 사내가 있었는데 원래 타고난 ‘산꾼’이다. 세르파 족 출신이라도 된 것처럼 티벳과 네팔을 동네 뒷산 오르듯 하고 고사리와 아스파라거스를 국수처럼 먹던 사람인데 그에게 탈이 났다. 어울리지도 않게 식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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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빛이 빙어처럼 투명하고 마리오네트처럼 여리여리한 서른살 여기자들도 끄떡 없는데 뭔일인지 대낮부터 끙끙댄다. 헨젤과 그레텔처럼 가는 곳마다 토사물을 남기더니 끝내 드러누웠다. 일행 중 가장 부탄 방문횟수가 많고 뚱뚱한 윌리엄(부탄문화원장)도 두드러기가 났다. 파로의 병원에 달려갔다. 김과 윌리엄은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약을 처방받았는데 거짓말처럼 금세 깨끗히 나았다. 화타라도 사는 곳인가? 명의의 나라 부탄이다.
게다가 놀라운 일은 원무과가 없다는 것. 의료서비스는 국가가 무료로 제공한다. 미국과 유럽으로 유학을 보낸 의사들이 고연봉과 영주권을 마다한 채 돌아와 자국민을 진료하며 산다. 놀러온 외국인에게도 똑같은 혜택을 제공하니 놀라운 일이다. 미국에서 아팠다면 차라리 자연치유를 기다리는 편이 낫다. 실감나지 않던 ‘부탄의 행복’. 그 속을 잠시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부탄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탁상사원이다. 절벽 한 가운데 붙어 있는 탁상 사원은 부탄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명승이다. 국왕 사진 다음으로 자주 볼 수 있다. 냉장고 자석에도, 티셔츠에도 그려졌다. 에펠탑이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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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으로 올라가는 트레킹은 올적 갈적 2시간 씩, 사원에서 둘러보는 시간 1시간, 중간 휴게소에서 커피와 밥을 먹는 시간 1시간을 더해 모두 6시간이면 충분하다. 소모품인 ‘도가니’를 아끼려면 말을 타면 된다. 말을 타고 오르는 히말라야라니 뭔가 멋져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행복한 나라에서 가장 운이 없는 말(하필 나를 태웠으니)을 탔다. 대놓고 힘들어 하는 말은 80㎏이 넘는 기자를 태우고 비틀비틀 비탈을 오른다. “푸드드” 거품을 내고 거친 숨을 몰아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찔한 절벽 사이로 난 길을 한참 오르면 중간 휴게소 격인 카페테리아에 닿는다. 마당을 가득 메운 중국인과 인도인들 사이로 멀리 탁상 사원이 보인다. 해발 3000m 고지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커피를 마시는 기분이 썩 좋다. 밥도 고사리도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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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년 히말라야에 불교를 전한 인도 왕자 파드마삼바바(대충 둘러댄 이름이 아니다)가 지었다는 사원이다. 파삼드파바바(?)가, 아니 파드마삼바바가 그의 아내를 호랑이로 변신(원래대로 됐으니 환원이 올바른 표현 아닐까?)시켜 그를 타고 올라와 이 멋진 곳에서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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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마드삼…(뭐 였더라?), 아까 그 왕자는 금강승 불교에선 달마대사 급이다. 해발 3200m 쯤이라 사방팔방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이 곳에서 그는 외로이 고사리를 먹으며 수행에 전념했을 것이다. 존경받는 그가 이곳에서 수행했기 때문에 나중에 많은 승려들이 이곳을 찾았다. 지금의 그림 같은 사원은 나중에 생겼다. 천년 후인 17세기에 이르러서야 지금의 모습으로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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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로를 떠나며, 아니 행복의 나라를 떠나며 산속에 펼쳐진 층층 밭과 붉은 지붕을 인 마을을 아쉬운 눈으로 지켜봤다. 세계에서 가장 치열하게 사는(때론 죽는) 나라에서 잠시 부탄을 느껴본 열흘, ‘그 동안 나는 좀 더 행복해졌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리더와 정치가 바뀌고 계절 또한 바뀌어가는 한국에서 내가 느낀 부탄을 기록하며 다시금 ‘행복’의 의미에 대해 되새기고 있다.
demory@sportsseoul.com
여행정보
●부탄관광청=한국~부탄왕국 간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부탄 방문을 희망하는 순례자 및 관광객을 위해 부탄관광청(Tourism Council of Bhutan) 한국사무소(Representative Office in Korea)가 문을 열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부탄문화원 내에 위치한 부탄관광청 한국사무소(대표 윌리엄 리)는 한국인 대상 특별 부탄 자유여행 프로그램을 한시 운영할 예정이다. 방문객은 부탄관광, 여행정보 등과 함께 민간단체, 정부기관, 기업, 신도회 등 단체의 목적에 맞는 맞춤형 관광일정상담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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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미뎀 부탄관광청장은 “한국어로 정확하고 객관적인 부탄관광정보를 제공하는 곳이 없었다. 부탄관광청 한국사무소를 통해 한국인들이 정확한 여행정보를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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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무소 대표로 공식업무를 시작하게 된 윌리엄 리 한국부탄우호협회장은 “천년 전통문화와 은둔왕국으로서 부탄의 문화와 역사, 정보를 모른 채 부탄을 관광한다면 단순히 풍경만 즐기다 오는 반쪽 여행이 될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제대로 부탄의 정보를 이해한다면 여행을 통해 부탄의 진면목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관광청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 부탄 관광청 홈페이지(www.bhutan-korea.com). 페이스북 ‘부탄문화원’.(02)518-5012
●둘러볼만한 곳=타종은 파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종이었으나 현재 박물관으로 쓰고 있음. 공예품, 불상, 동물, 식물 등 부탄의 자연·문화 유산을 모아뒀다.
닝미파 사원에 속하는 네젤강은 13세기 고승 울링파가 지었다. 67대 제켐포(國師) 나왕을 배출하면서 명성이 상승했다. 네젤강이 있는 르위사 마을은 주민 모두가 재가수행자(승려는 아니지만 생업 속 수행을 하는 이들)로 밀교 교리에 따라 각각 수행하고 있다.
팀푸와 중부탄(왕디·푸나카)을 잇는 고개(3100m)에는 도출라패스가 있다. 휴게소와 전망대 역할을 하는 카페와 사원이 함께 있다. 이곳에선 북부탄의 7000m급 연봉들을 관찰할 수 있다(이번엔 구름 밖에 못봤다). 도출라 사원에는 108개 스투파(탑)을 세웠다.
특이하게 원통형으로 만든 둥체라강은 108개 철교를 건설한 ‘부탄의 장영실’ 탕동걀포 스님이 설계한 사원이다. 3층으로 이뤄진 스투파 사원으로, 1층은 지옥, 2층 현상세계, 3층은 티벳사자의서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티벳사자의서는 사후 49일 간의 세계를 묘사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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