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 서천범 이사장.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위원석 체육1부장]국내 골프장의 한해 총 내장객 수는 2013년 3000만명을 돌파한 이후 꾸준히 증가해 지난 해에는 3672만명에 이르렀다.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의 지난해 총 관중수가 833만명이었다. 이런 수치는 골프를 즐기는 사람이 체감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휠씬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직도 골프를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인식하는 흐름은 크지 않은듯 하다. 무언가 보통사람들, 서민들과는 거리가 먼 이미지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 대중제골프장이 많아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비싸게 인식되는 그린피, 골프장내 매장의 바가지 요금 등이 이런 인식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지난 해 하반기부터 시행중인 부정청탁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도 과거 골프장안에서 벌어졌던 ‘음습한 거래나 관행’을 바꾸겠다는 함의를 많이 품고 있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국내 여자골퍼들을 중심으로 골프가 스포츠를 통한 국위선양에도 상당한 역할을 해왔음에도 대중적인 이미지가 좀처럼 바꿔지지 않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오랜 시간동안 ‘골프 대중화’를 신념처럼 외쳐왔던 이가 있다. 서천범(59) 한국레저산업연구소 소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1999년 연구소를 오픈한 이후 국내 레저산업의 활성화를 위해서 꾸준히 ‘개인 연구’를 거듭해 왔다. 1999년부터 그가 매년 발행하고 있는 ‘레저백서’는 국내 레저산업을 다양한 데이터로 분석하는 거의 유일한 종합보고서 역할을 하고 있다. 레저업계에서는 필수서적으로 인식된지 오래다. 그는 이런 연구과정을 거치면서 국내 골프의 대중화를 신앙처럼 간직하고 있다. 단순한 연구를 넘어서 골프 대중화를 위한 여러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면서 이론과 현실의 접목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김영란법’ 시행 이후 국내 골프업계에서는 과연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지, 또 골프 대중화의 체감지수는 과연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의 한 빌딩에 있는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서 서 소장을 만났다.

-지난 해 김영란법 시행 이후 국내 골프문화나 업계에 전례없이 큰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예측했다. 막상 시행 이후 벌어진 현상은 어땠나.

지난 해 9월 28일 법이 시행됐지만 그리 큰 영향을 느끼지 않고 있다. 우리 연구소가 분석한 2016년 골프장 경영실적 분석에 따르면 제주권을 제외한 134개 회원제 골프장의 매출액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1.2% 하락했지만 131개 대중골프장은 오히려 0.7%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보면 법의 영향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른바 ‘접대골프를 받는 사람’의 연인원은 최소 100만명에서 최대 150만명으로 추산됐는데 이들이 가명이나 차명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골프를 치면서 이용횟수가 조금 준 것같고, 반면 그린피 인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평일에 편하게 치는 사람이 늘고 스크린골프 동호인들도 필드로 많이 영입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미 김영란법이 시행돼도 골프장 경영실적은 오히려 더 좋아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물론 회원권 가격은 하락하겠지만 접대용으로 쓰던 무기명 회원권의 사용이 줄어든 만큼 다른 유입요소들이 발생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큰 영향은 없어 보인다.

-김영란법 시행이후 골프업계에 나타난 긍정적인 효과는 무엇인가. 또 부정적인 효과가 있다면.

가장 긍정적인 것은 단연 ‘내돈 내고 치는 문화’가 확산된 점을 들 수 있다. 이전에 법인카드로 접대를 받고 이럴 때는 (골프장내)매장의 식음료값이 아무리 비싸도 먹는데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비싼 식음료값이 골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킨 것도 사실이다. 내돈 내고 치는 문화가 늘어날 수록 골퍼들이 식음료값에 예민해 질 수밖에 없다. 법 시행으로 골프가 진정한 대중화의 길목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부정적인 효과가 있다면 김영란법의 시행범위가 너무 광범위해 실질적인 단속이 안된다는 점이다. 이 법은 원래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를 막는다는 취지로 집중해서 운영되는 것이 맞았다. 대상이 지나치게 확대되니 단속도 잘 안되고 골프치는 사람들을 범법자로 만드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근본적으로 아직 골프는 사치스포츠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릇된 접대문화와 연결된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우리나라는 골프가 접대문화로 들어오다 보니 젊고 예쁜 캐디가 동반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됐다. 몇몇 사회적 명망가들이 캐디와 관련된 성희롱 사건으로 망신을 당하지 않았는가. 이런 사건들이 골프에 대한 이미지를 훼손시킨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사장으로 있는 사단법인 한국골프소비자모임에서는 올해 ‘노캐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실제로 옆에서 시중하고 공닦아주고 채 뽑아주는 역할을 하는 캐디가 없어져야만 궁극적으로는 골프가 스포츠로 발전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서 소장은 지난 해에는 ‘마샬 캐디’ 도입을 주장했다. 캐디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강한 것같은데.

그렇다. 마샬 캐디는 퇴직 남성이나 경력단절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이 전동카트 운전, 남은 거리 불러주기 등의 최소한의 일만 하게 된다. 캐디피도 대폭 낮아지고 사회적 약자들의 고용창출 효과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골퍼들이 하우스캐디로부터 풀 서비스를 받는데 너무 익숙해있다보니 캐디가 없으면 불안해 하는 경향이 있다. 마샬 캐디의 근무조건 등 여러가지 고충이 있어서 아직 확산은 많이 되지 않고 있다.

-결국 캐디문화의 변화를 위해서는 골프업계 시장의 호응이 중요하다는 뜻인데.

노캐디 운동을 벌이는 것은 기존 하우스캐디의 일자리를 빼앗자는 의미가 아니다. 골퍼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자는 뜻이다. 캐디가 없으면 불편한 골퍼도 있고, 캐디의 도움이 별로 필요없는 골퍼도 있다. 그렇다면 골퍼들에게 캐디를 쓸 싸람은 쓰고, 쓰고 싶지 않은 사람은 쓰지 않는 선택의 여지를 남겨두자는 것이다. 풀서비스를 제공하는 하우스 캐디, 최소한의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비용은 휠씬 저렴한 마샬 캐디, 그리고 노 캐디 가운데 골퍼들이 선택하게 하는 것이 맞는 흐름이다. 지금은 거의 무조건 하우스캐디를 써야 하는 실정아닌가. 실제적으로 보면 서울에서 1시간30분 이내의 수도권 골프장에서는 하우스캐디가 없어질 것같지는 않다. 수요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방 골프장을 중심으로는 마샬캐디나 노캐디의 도입이 마케팅 차원에서 활성화될 여지가 많다. 예를 들자면 주말 프라임타임에는 하우스캐디로 가고, 평일에는 노캐디를 활성화하는 등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비성수기 새벽 타임을 노캐디로 한다면 (비용 절감효과로)안오던 사람이 올 수 있게 된다. 골프장 입장에서도 마케팅에 도움이 된다.

-일부 대중제 골프장은 회원제보다도 그린피가 비싼 경우가 있다. 무늬만 대중제라는 불만도 골퍼들 사이에서 있는데.

대중제 골프장은 회원제에 비해 일반세율에서 큰 혜택을 보고 있다. 예를 들어 회원제가 지방세 20억원을 낼 때 대중제는 3~4억원를 내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혜택은 골프 대중화를 하라고 주는 것이다. 대중제 골프장에 한해서 ‘그린피 심의위원회’를 만들 필요성이 있다. 예를 들어 대중제 골프장의 그린피는 해당 지역의 골프장 평균 그린피보다 높아서는 안된다. 평균을 넘어설 경우에는 강력한 행정지도를 해야 한다. 혜택을 받는 만큼 이름에 걸맞게 골프대중화를 위한 의무도 수행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세수 절감을 감수하면서까지 주는 혜택이 골프장의 불로소득으로 연결되면 안된다. 대중골프장의 편법 문제는 골프 대중화로 가는 길목에서 반드시 해결해야만 한다.

-골프장에서 걷고 싶은 골퍼들도 카트를 의무적으로 써야하는데.

골프장 수입구조에서 그린피가 차지하는 비중이 70% 정도라고 한다면 카트비에 대한 비중도 15~20% 정도를 차지한다. 골프장 입장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수입원이다.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골프장에서 의무제로 갈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은 골프장 오너의 결단만이 해결할 수 있다. 막대한 수입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군산CC의 경우 일인전동카트를 확대하고 있는데 (오너인)박현규 회장이 골프 대중화를 선도하기 위해서 결단을 내렸기에 가능했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 서천범 이사장.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그늘집 음식값이 너무 비싼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골프소비자모임에서 국내 골프장의 식음료 가격을 조사한 적이 있다. 시중마트에 비해서 캔맥주는 최대 9.8배로 가장 비쌌고 이온음료나 삶은 계란도 각각 최대 8.2배와 6배로 비쌌다. 이것도 잘못된 접대골프 문화의 유산이라고 볼 수 있다. 가격 현실화를 위해서 자판기 설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폈는데 다행히 자판기로 대체된 곳이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접대 골프장’을 제외하고는 그늘집 가격 현실화 문제가 가장 잘 이뤄지고 있는 것같다. 개인적으로는 시중가보다 1.5~2배 정도 가격을 받는다면 그래도 합리적인 수준이라고 본다.

-국내 골프 대중화를 위해서 참조할 만한 해외 사례가 있다면.

대체적으로 국내 골프문화는 그동안 일본이 선배 역할을 해왔다. 일본은 대도시 근처에는 캐디 동반제를 하는 곳도 있지만 지방으로 가면 없는 곳이 더 많다. 일본은 플레이피(그린피+카트비)라고 해서 골프를 즐기는데 드는 총비용 개념으로 간다. 그런 것이 일반화돼있다. 플레이피가 6만원 수준으로 해결되는 곳이 적지 않다. 일본과 우리의 물가 수준을 고려하면 (실제 금액보다)휠씬 싼 편이다.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이 골프 대중화를 위해서는 맞다.

-골프 대중화가 국내 골프산업 전반의 활성화로 연결될 수 있을까.

나는 2010년경이 되면 총 이용객 수가 줄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내 예상이 틀렸다.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스크린골프 인구의 유입이나 가격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미국이나 일본은 골프시장이 급격하게 축소됐다. 하드랜딩이었다. 반면 우리는 중장기적으로는 골프 시장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래도 소프트랜딩을 할 수 있을 것같다. 골프 산업의 소프트랜딩을 위해서는 골프장이 좀더 지역사회를 위해서 문을 열어야 한다. 지금까지 국내 골프장은 일종의 성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지역 커뮤니티가 소통하는 장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성을 허물어야 한다. 앞으로 골프장 결혼식, 골프장 돌잔치나 환갑잔치 이런 것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골프장이 골프만 치는 곳이 아니라는 인식이 늘어나야 한다. 용품 등을 포함한 골프 산업 전체는 2011년쯤을 정점으로 완만한 내리막길로 들어서고 있다.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다.

-이처럼 골프 대중화에 나서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한국레저산업연구소를 만든 이후 데이터를 중심으로 연구를 하다보니 잘못된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연구소라는 타이틀을 걸고 일을 하고 있는데 골프 대중화를 위해서 바른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내 골프업계의)비합리적인 부분이 많이 보여 올바르게 가자고 지적도 하고 제안도 했다. 그러다보니 회원제골프장쪽에서 ‘공공의 적’으로 찍히기도 했다. 한때는 ‘서 모씨는 출입금지를 시키자’고 했다고도 한다(웃음). 하지만 대중화만이 골프장의 살 길이라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었다. 어떨 때는 내가 무슨 돈이나 명예를 바라고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시장에서 반응조차 없으면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신념에는 변화가 없다. 올해는 골프장안의 맛집 만들기 운동도 하려고 한다. 골프장안에서 싸고 맛있는 맛집과 메뉴가 있다면 왜 사람들이 골프장 밖에 나가서 먹겠는가. 이런 운동을 지방 골프장을 시작으로 해보려고 한다. 우리나라 골프장은 아직 거품이 많고 배가 부르다.

-1999년부터 매년 레저백서를 발간하고 있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가.

1990년부터 기아경제연구소에서 일했는데 일본과 한국의 레저산업 비교 프로젝트를 맡은 적이 있다. 연구를 하다보니 일본 레저산업이 너무 잘 돼있더라. 이 분야에 흥미를 갖는 계기가 됐다. 1997년 같은 연구소에서 ‘2000년대의 레저산업’이라는 연구책자를 발간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이것이 내 길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1999년 2월 한국레저산업연구소를 오픈했다. 초기에는 일본에서 내는 백서를 기본으로 해서 우리쪽 데이터 자료를 대입해서 책을 만들었다. 이후 매년 조금씩 백서 체제를 업그레이드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국내 레저업계에서는 바이블처럼 인식되고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백서 발간에 일년내내 매달린다. 이 자료를 개인적으로 컨설팅에만 이용했다면 돈은 더 벌었을 것같다. 그러나 국내 레저산업 발전을 위해서 가능하면 다 (자료를)오픈하자는 생각에서 매년 백서를 내고 있다.

-이렇게 일하면서 시쳇말로 연구소는 유지가 되는가.

처음 연구소를 연 이후 (사무실을)열댓번은 옮긴 것같다. 2000년대 중반 한참 어려웠을 때는 집에서 일하기도 했다. 지금은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개인 연구소를 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 개인 연구소가 버틸 수 있는 여력이나 토양이 없다. 나도 돈 벌려고 이 일은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국내 레저업계에 조금이라도 기여를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내가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전수하고 싶어서 두달 전부터 작은 딸이 연구소에 나와서 함께 일하고 있다.

-지금까지 연구소를 운영해 오면서 보람으로 남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연구는 데이터로 이야기한다. 업계의 잘못된 방향을 바라잡는 것이 목적이다. 업계에 있는 분들이 내가 10년전에 예측한 것이 그대로 흐름이 되어간다고 이야기할 때는 보람을 느낀다. 예전에 골프장 공급과잉을 지적한 것은 회원제골프장이 망하라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대비를 하자는 뜻이었다. 그동안 데이터를 근거로 소신있게 판단하고 연구결과를 냈다. 소소한 수치까지는 아니어도 거시적인 흐름은 맞았다.

-반면 아쉬운 것은 무엇인가.

아쉬운 것은 연구소를 하면서 돈을 벌었다면 일본에서 나오는 자료처럼 레저백서를 좀더 세부적으로 만들고 싶었다. 일본에서는 사람들이 레저에 얼마나 시간을 쓰고, 돈을 쓰는지가 매우 세부적으로 나오고 있다. 사실 이런 것은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이다. 올바른 정책을 시행하려면 실태파악이 세부적으로 되야 한다. 우리 연구소가 자금 여력이 안돼 좀 더 디테일한 백서를 내지 못한 점이 아쉽다.

-마지막 질문이다. 훗날 ‘서천범’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국내 레저산업과 골프산업 발전에 서천범이 역할을 했다, 업계를 위해서 사심없이 일했다, 그런 평가를 받고 싶다.

batma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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