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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윤세호기자] 오승환(35·세인트루이스)의 해외진출 후 마무리투수 춘추전국시대가 열린 한국프로야구에 대물이 등장했다. 오승환을 연상케 하는 묵직한 돌직구와 단단한 신체를 지닌 겁 없는 신인이 잠실구장을 뜨겁게 달궜다. 공 하나하나에 관중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고 타자들의 눈빛은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LG 고졸신인 고우석(19)이 완벽한 데뷔전을 치렀다. 지난 16일 잠실 kt전에 등판한 고우석은 최고구속 150km의 강속구로 kt 타자들을 압도했다. 고우석의 돌덩어리 같은 공에 kt 타자들은 헛스윙만 반복하며 고개를 저었다. 고우석의 공을 받은 포수 유강남은 “특별한 주문 없이 가운데에 앉아서 직구 위주로 사인을 냈다. 워낙 구위가 좋기 때문에 공격적으로 승부하면 충분하다고 봤다”며 고우석의 돌직구에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지난 2월 충암고를 졸업한 고우석은 2학년 때 이미 고교무대를 지배했다. LG 김현홍 스카우트 팀장은 “2015년에 3학년들을 보다가 2학년이었던 고우석이 눈에 확 들어왔다. 우리뿐이 아니라 다른 구단들도 고우석이 3학년보다 좋다는 평가를 했다. 어린 선수가 선배 타자들을 상대로 주저 없이 공격적인 투구를 하더라. 이듬해 우리가 꼭 지명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고우석을 처음 본 순간을 회상했다. 고우석을 지도한 충암고 이영복 감독은 “우석이는 1학년 때부터 우리 팀의 중심선수로 활약했다. 2학년 들어서는 3학년들을 압도했다. 2학년부터 실질적인 에이스 역할을 했다”고 돌아봤다.
LG는 계획대로 지난해 6월 고우석을 1차 지명했다. 하지만 프로 지명에 앞서 시련도 찾아왔다. 고우석은 2015년 12월 훈련 중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이영복 감독은 “큰 수술을 받아서 3학년 1년은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회복이 굉장히 빠르게 되더라. 회복 후 우석이가 동기들의 진학을 조금이라도 돕겠다면서 던지고 싶어했다”고 돌아봤다. 김현홍 팀장은 “다친 부위가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도 지명에 앞서 고민을 했다. 1차 지명이니 신중할 수밖에 없지 않나. 그래서 농구팀에 십자인대 수술과 관련해 문의를 했다. 알아보니 요즘에는 의학기술이 많이 좋아져서 수술 후 완벽히 회복이 가능하다고 하더라. 3학년 때 던지는 모습에선 수술 후유증이 좀 있었는데 최근 모습을 보니 2학년 때의 그림이 나오고 있다”고 웃었다.
고우석은 프로 입단 후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LG 양상문 감독은 고졸신인인 고우석을 과감히 1군 스프링캠프 명단에 넣었다. 시범경기를 앞두고 일찌감치 고우석의 보직을 확정지었다. 양 감독은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라 보기 힘들 정도로 좋은 점이 많다. 즉시 전력이라고 봤기 때문에 캠프에 데려갔고 캠프에서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다. 투구 스타일상 짧게 던지는 불펜투수가 적합하다고 보고 있다. 꾸준히 기회를 줄 계획이다”고 밝혔다. 양 감독 외에도 많은 이들이 고우석이 머지않은 시점에서 필승조로 올라설 것이라 보고 있다. 김현홍 팀장은 “고우석에 대한 리포트를 제출할 때 보직을 마무리투수라고 적었다. 손장난에 능한 투수는 아니지만 힘이 타고났고 두려움 없이 던지는 투수기 때문에 향후 우리 팀의 뒷문을 책임질 수 있다고 봤다”고 전했다. 이영복 감독 또한 “15년 동안 감독을 했는데 우석이는 내가 가르친 선수 중 한 손가락에 꼽을 수 있다. 이른 예상일 수도 있으나 앞으로 오승환과 같은 투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우석이는 충분히 정상에 설 수 있는 선수”라고 극찬했다.
한국야구 역대 최고 마무리투수로 꼽히는 오승환도 프로 지명에 앞서 수술을 받았다. 프로 지명 당시 수술경력과 작은 키로 인해 저평가 받았던 오승환은 삼성 입단 첫 해부터 마무리투수 자리를 꿰차며 승승장구했다. 돌직구로 그라운드를 호령했고 KBO리그 통산 최다 277세이브를 올렸다. 이후 일본무대도 평정했다. 지난해부터 세인트루이스 유니폼을 입은 오승환은 메이저리그서도 ‘끝판대장’다운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김현홍 팀장에게 입단 전 고우석과 오승환을 비교해달라고 질문하자 “아마추어때 모습만 보면 고우석이 오승환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2005년 지명 당시 오승환을 보고 의구심도 들었었다. 투구폼이 특이했고 수술 경력도 있기 때문에 프로에서 매일 던지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고등학생 고우석과 대학생 오승환만 놓고 보면 구위는 고우석이 더 낫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고우석의 구위가 아직 100%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 팀장은 “솔직히 말하면 2학년때 구위가 데뷔전보다 뛰어나다. 당시의 공이 더 묵직했다고 자신한다. 시범경기 때보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2학년 때 보여준 구위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계속 더 좋아질 것이라 본다. 일단 3학년 때 보였던 수술 후유증은 전혀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물론 아직 고우석을 오승환과 비교하기는 너무 이르다. 그래도 분명한 점은 고우석도 오승환처럼 지독한 훈련 벌레라는 것이다. 이영복 감독은 “우석이는 야구도 잘했지만 태도도 흠잡을 데가 없다. 굉장히 겸손하고 게으른 모습도 전혀 볼 수 없었다. 안 되면 될 때까지 했다. 훈련을 너무 해서 내가 말린 적도 많았다”고 돌아봤다. 김현홍 팀장 역시 “고우석이 고교 시절 보여준 경기 외적인 모습도 아주 좋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훈련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다. 보통 고교 선수들이 러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고우석은 투구 후 꼭 러닝을 했다. 시키기 전에 스스로 하는 게 몸에 밴 선수라는 확신이 섰다. 우리가 고우석을 지명한 것은 여러모로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오승환은 살인적인 운동량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해 2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캠프에 참가한 오승환은 빅리그 거인들과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는 고증량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구단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당시 세인트루이스 마이크 매시니 감독은 “오승환은 이미 빅리거가 된 것 같다. 완벽한 몸상태로 스프링 트레이닝에 합류했다. 첫 날부터 당장 실전에 나설 수 있는 컨디션이다”고 오승환의 프로정신을 극찬했다.
고우석은 아시아를 평정한 오승환을 바라보며 꿈을 키웠다. 고우석은 “예전부터 오승환 선배님을 좋아했다. 오승환 선배님처럼 키가 작은 투수도 강한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지금도 오승환 선배님의 활약을 보면서 이미지를 그리곤 한다”며 “불펜투수로 나서게 된 만큼 언젠가는 마무리투수를 하면서 임팩트 있는 선수가 되는 게 목표다. 이제 시작이지만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 LG하면 생각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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