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운동하는 사람은 행복해서 살인을 저지를 수 없어요"


2001년 개봉한 리즈 위더스푼 주연의 영화 '금발이 너무해'. 성공하려면 메릴린 먼로가 아닌 재클린 케네디 같은 여자를 얻어야 한다며 자신을 차버린 남자친구를 되찾기 위해 그를 따라 하버드 법대에 입학한 금발 머리의 예쁘고 밝은 성격의 엘 우즈가 주인공인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서, 엘 우즈가 법무법인 인턴으로 발탁되어 델타누 학교 선배이자 유명 피트니스 강사인 브룩의 변호를 맡으면서 그의 살인 무죄를 확신하며 던진 말이다.


영화 속 수많은 명장면보다 이 대사가 더 기억이 나는 건 운동하는 사람들은 정말 행복할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운동인이 된 지금, 이 대사는 진실일까?


우울증 처방약 '운동', 그리고 폴댄스


폴댄스를 배우러 오는 분 중 간혹 정신과 의사의 추천을 받고 오는 경우가 있다. 자신을 적당히 숨기는 법을 잘 아는 현대인들에게 우울증 같은 마음의 병은 쉽게 드러나지 않기에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도도하고 당찬 성격의 전문직 여성으로 생각한 회원이 자신은 우울증을 앓는 환자이며 의사의 추천으로 폴댄스 학원을 찾게 되었다고 말했을 때 깜짝 놀랐다. 이후에도 서너 번 비슷한 고백을 여러 회원에게 받으니, 그들 모두가 한 명의 의사 선생님의 진료를 거친 것이 아니라면 요즘 정신과에서 폴댄스를 치료 목적으로 제법 추천하는 듯하다.


운동이 우울증에 좋다는 건 보편적으로 알려진 사실. 규칙적인 운동을 하면 엔도르핀이 생성되고 성장호르몬이 분비되어 스트레스로부터 뇌를 보호하기에 우울증에 좋은 치료제가 된다고 한다. 폴댄스가 생활운동으로 주목받으면서 더 많은 분이 우울증의 치료 목적이나 생활의 활력을 위해 시작하고 있다.


오늘부터 운동 시작! 불행 끝 행복 시작?


그렇다면 정말 운동은 우울증의 만병통치약일까? 안타깝지만 운동은 정신건강의 만병통치약이 아닌 보조 치료제 역할을 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운동만 열심히 해서 갑자기 행복해진다고 말하는 것은 시골 장터에서 약장수가 "이 약 한번 잡숴봐"라고 말하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우울증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는 데 있어 운동, 그중에서도 폴댄스가 주는 효과만큼은 탁월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우리가 힘든 일을 겪을 때 보통 시간이 약이라는 이야길 많이 듣는데, 이 만고불변의 진리를 몰라서 문제가 아니라 시간이 멈춘 듯 하루가 일 년처럼 더딘 것이 문제이다. 이때 폴댄스는 더없이 좋은 '시간 마취제'가 된다.


폴댄스를 배우는 분들로부터 종종 "힘들지만 너무 재미있어요", "폴댄스 수업 있는 날만 손꼽아 기다려요", "이 재미난 걸 왜 이제 시작했나 몰라요"라는 말을 듣는다.


나 역시 처음 폴댄스를 배울 때 너무 재미있어서 수업이 한 시간 만에 끝나는 게 아쉬울 만큼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고, 길을 걸을 때도 폴댄스, 밥을 먹을 때도 폴댄스, 기둥과 비슷한 것만 봐도 폴댄스가 생각나서 새벽에도 놀이터를 찾았던 기억이 난다. 운동 후 에너지를 발산한 몸의 휴식을 위해 숙면을 했음은 물론이다.


집중력과 자신감 상승, 그리고 '시간 마취제' 폴댄스


폴을 타는 사람들에게 폴댄스가 왜 재미있고 좋은지 물으면 나오는 대답은 제각각이다. "폴과 함께 춤을 추고, 하나씩 동작을 성공시키는 성취감이 좋아요", "스피닝폴(회전폴)이 놀이기구를 타는 것 같아서 재미있어요", "살이 빠지고 몸매가 예뻐져요", "에어리얼 스포츠가 주는 스릴감이 최고예요". 그리고 "폴을 타고 있으면 잡념이 사라져요".


난이도가 천차만별인 폴댄스는 올라가는 것 자체가 근력운동이고, 선을 중요시하는 운동이기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우스갯소리로 폴 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면 오롯이 온몸 구석구석에 힘을 제대로 주는 데 신경 써야 한다고 하는데(실제 폴댄스는 몸에 콘택트가 여러 군데 이뤄진 상태에서 진행되기에 생각보다 적은 근력만으로도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 그만큼 잡념 없이 집중하기 좋은 운동이다.


정적이고 동적인 요소를 함께 가지고 있어서 요가처럼 명상효과도 있지만, 끊임없는 움직임을 낼 때는 춤추는 것과 같은 에너지가 발산되어 스트레스 해소에도 큰 도움이 된다. 폴댄스의 가장 기본인 힐업(뒷꿈치를 들고 서는 동작)과 턱을 들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춤을 추면 자존감도 함께 올라가는 기분이 든다. 에너지 소모도 매우 커서 몸매까지 예뻐지니 자신감마저 샘솟는다. 무엇보다 재미있게 즐길 수 있기에 시간도 빠르게 흘러간다.


행복해지는 운동 '폴댄스'


칼럼을 쓰면서 혼자 피식 웃고 있는데, 예전의 나라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누가 몰라요? 운동이 정말 하기 싫은 게 문제죠"


운동하는 사람은 힘들어도 무언의 목적을 위해 참는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아는 사람 대부분은 폴댄스 자체를 정말 좋아하고 즐긴다. 누군가는 힘들고 재미없는 운동을 참아가면서 하고, 다른 누군가는 정말 그 운동 자체를 즐기면서 하는지는 모른다. 나는 운동 중독자가 아닌 폴 중독자이기 때문이다.


폴댄스는 많은 매력을 가진 운동이다. 각자 관심 있는 운동이 다르겠지만 나는 폴댄스에 빠졌고, 정신적으로 힘든 시절 좋은 '시간 마취제'였다. 마취에서 깨어나 보니 힘든 시절은 훌쩍 지나갔으며,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당신, 오늘 행복하지 않았나요? 그렇다면 "Shall we Pole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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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폴러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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