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포토]이용수 기술위원장, \'첫 번째 안건은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오른쪽 세 번째)과 기술위원들이 3일 파주 축구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서 대표팀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 여부 등을 결정할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파주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파주=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슈틸리케 감독을 다시 한 번 신뢰하기로 견해를 모았습니다.”

이 대답까지는 현장에 있던 취재진도 예상했다는 듯 개의치 않아 했다. 하지만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결정 이후 대책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한 답변만 내놨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3일 파주 축구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NFC)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에서 졸전을 펼쳐 국민적 지탄을 받은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의 거취와 관련해 경질이 아닌 유임으로 최종 결정했다. 하지만 심사숙고해 내린 결정으로 보기엔 알맹이는 쏙 빠진, 앙꼬 없는 찐빵같은 느낌이다.

◇고심 또 고심…45분여 지체된 거취 발표

2014년 9월24일 부임 이후 2년7개월간 대표팀을 지휘하며 역대 최장수 사령탑에 오른 슈틸리케 감독의 거취를 다루는 사안인만큼 신중에 또 신중을 기했다. 이날 오후 2시 기술위 회의가 열린 파주NFC엔 대표팀 소집훈련을 방불케할 정도로 30여명이 넘는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기술위는 2018 여자 아시안컵에 나선 여자대표팀과 20세 이하 월드컵 대표팀 지원방안과 더불어 슈틸리케 감독의 재신임 여부가 핵심 안건이었다. 워낙 많은 취재진이 몰린 탓에 기술위는 슈틸리케 안건을 우선으로 다룬 뒤 이용수 위원장이 본관 강당에서 취재진에 브리핑하고나서 다시 회의장으로 이동해 나머지 안건을 다루기로 했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애초 회의 시작 1시간이 지난 오후 3시께 이 위원장의 브리핑이 있을 것이라고 취재진에게 알렸다. 현장에 온 취재진은 예정된 발표 시각 10분 전께 대부분 강당에 착석해 있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3시가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애초 기술위 중심으로 슈틸리케 감독 거취와 관련해 사전 교감을 나눴다는 얘기가 나돌았기에 궁금증을 더했다. 급기야 협회 관계자는 “조금 더 기다려줘야할 것 같다. 생각보다 견해를 모으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예정 시간을 30분 훌쩍 넘기면서 점점 초조한 분위기로 이어졌다. 마침내 3시45분께 이 위원장이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면서 등장했고 “슈틸리케 감독을 다시 신뢰하기로 했다”고 입을 열었다. 예상보다 시간이 지체된 건 그만큼 격론이 오갔기 때문이다. 이날 회의엔 이 위원장을 비롯해 정정용(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 정태석(스피크재활센터 원장) 송주희(화천KSPO 코치) 하석주(아주대 감독) 이영진(전 대구FC 감독) 조긍연(K리그 경기위원장) 안재석(전북현대 U-18 감독) 장동진(이천신하초 감독) 최영준(전 부산 감독) 기술위원이 참석했다. 신재흠(연세대 감독) 김남표(대한축구협회 강사)는 개인 일정으로 불참했다. 그런데 참석한 10명의 기술위원 중 일부가 슈틸리케 체제 지속에 강하게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적인 견해를 좁히는 과정이 의외로 순탄치 않았다.

[SS포토] 그늘 드리운 슈틸리케 감독
지난달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진행된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7차전 시리아와의 홈 경기 대비 훈련 전 슈틸리케 감독이 생각에 잠겨 있다.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조건부 유임’에 가린 실체…믿음도, 협박도 아니다?

기술위 내부에서도 견해가 일부 엇갈린만큼 유임에 따른 세부적인 계획도 밋밋했다. 어려운 시기에 ‘감독 유임’ 결정을 한만큼 보다 더 확실한 지원과 신뢰가 필요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취재진은 이 위원장이 브리핑 때 밝힌 내용에서 귀를 의심할 만한 게 상당수였다. 슈틸리케 감독의 유임 속엔 ‘피말리는 조건’이 따랐다. 이 위원장은 “ 남은 (최종예선) 3경기가 중요할 것 같다”며 “결과에 따라서 슈틸리케 감독과 월드컵 본선까지 갈 수도, 또다른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한경기, 한경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해석도 덧붙였다. 이를 두고 취재진은 ‘명확한 신뢰도 아니고 협박처럼 들릴 수 있다’고 지적하자 그는 “오해하지 말라”며 “감독 거취를 두고 한경기, 한경기 이런 표현이 아니라 매경기가 월드컵 본선 진출을 두고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여러 각도로 해석봐도 분명한 건 슈틸리케 감독이 월드컵 본선행의 중대 고비인 오는 6월 카타르 원정에서 승리를 가져오지 못하면 또다시 거취 여부가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카타르 원정 이후에도 이란(홈) 우즈베키스탄(원정) 등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와 겨뤄야 한다. 기술위의 ‘조건부 유임’ 결정으로 매경기 감독직 운명을 걸고 도박에 가까운 승부를 펼치게 됐다. 또한, 슈틸리케 감독이 또 한 번 신뢰를 잃었을 경우 협회의 구체적인 대안도 여전히 마련되지 않았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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