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휘부
양휘부 KPGA회장.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위원석 체육1부장] 전세계적으로 모든 프로스포츠는 남자가 주도한다. 예외를 찾아보기 힘들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가장 규모가 큰 미국프로골프(PGA)투어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의 규모와 인기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다. 유독 국내는 예외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의 인기가 한국프로골프(KPGA)투어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다. 선수들의 스타성이나 스폰서십의 확보면에서 ‘여고남저’ 현상이 완전히 고착화됐다. 당분간 이런 현상이 역전(세계적인 추세로 표현하자면 ‘정상화’)될 가능성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국내 남자골프계는 ‘외적’으로는 선수 개개인이 세계 무대에서 얼마나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와 ‘내적’으로는 한정된 전체 스폰서십의 규모안에서 얼마나 여자골프에 비해 비교우위를 보여주면서 후원기업을 확보할 수 있는지의 두가지 과제를 동시에 떠안고 있는 셈이다. 양휘부(74) KPGA 회장은 이런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그는 지난 해부터 KPGA의 지휘봉을 쥔 이후 ‘한국남자골프의 르네상스’를 위해서 노심초사 달려왔다. 다행히 올 시즌부터 국내 투어 대회의 양과 질에서 어느 정도 반등의 계기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경기도 분당의 KPGA빌딩 회장실에서 마주한 그는 남자골프 부흥 가능성을 자신감있게 토로했다. 마침 이 인터뷰가 이뤄진 날(8일) 직전에 국내 최대 규모의 ‘제네시스 챔피언십’ 조인식이 있었기에 그의 표정이 더욱 밝았는지도 모르겠다. 한국남자골프는 과연 여자골프 이상의 인기를 되찾을 수 있을지 양 회장에게 들어봤다.

-지난해 말 2017시즌 일정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15개 대회 유치를 밝혔다. 여기에 최근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제네시스 챔피언십이 추가되면서 일단 16개가 확정됐다. 2012년 남자투어가 14개 대회로 축소된 이후 한때 12개 대회까지 줄어드는 등 계속 침체기를 겪었는데 일단 반등의 계기를 잡았다고 볼 수도 있는데.

처음 회장이 됐을 때는 남자골프만이 가진 특징을 잘 살린다면 충분히 더 많은 대회를 유치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막상 기업체를 만나면 만날수록 내 스스로가 위축되는 것을 느꼈다. 한마디로 남자골프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했다. 스폰서에게 남자 골프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대회 개최를 제안하면 대부분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사회 공헌으로도 대회를 만들자 하면 차라리 프로 대회 보다는 아마추어 대회를 후원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또 많은 스포츠 중에 왜 하필 골프인지, 또 골프 중에서도 인기있는 여자대회가 아닌 남자대회를 해야 하느냐는 반응을 보일 때면 정말 가슴이 아팠다. 힘이 다 빠져버리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일단 프로모션이 통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고민한 끝에 지방자치단체장을 만나러 다니기 시작했다. (지자체에서)한꺼번에 스폰서십을 하기 어려운 사정을 고려해 홀당 스폰서십을 판매하는 아이디어도 냈다. 이런 저런 노력이 통해서 지방투어(지자체가 후원하는 대회)가 올해부터 4~5개 정도 열릴 예정이다. 지난해가 반등의 디딤돌이었다면 올해는 도약의 원년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내년, 내후년에는 더 발전된 투어가 될 수 있다. 많은 관심과 후원을 해주신 스폰서분들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당초 올 시즌 일정 발표를 할때 18개까지 대회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 했는데 제네시스 챔피언십 외에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가.

조금 더 있다. 우선 제네시스 챔피언십은 총상금 15억원 규모로 KPGA투어 단독 주관대회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이외에 추가적으로 2개 대회를 더 협의하고 있다. 조만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 없지만 스폰서와 막바지 협의중에 있다. 제네시스 챔피언십도 지난해 7월 현대자동차와 합의했지만 이제서야 발표할 수 있었다. 절차가 생각보다 복잡하다.

-지난 해 회장에 취임한 뒤 공약이 18개 이상 대회 유치였다. 결국 2016시즌에 13개 대회에 그쳐 마음고생이 심했을 텐데 그래서 지난 일년을 더 열심히 뛰었을 것같다.

사실 취임 6개월 동안 (차량 주행거리로)3만5000㎞를 달렸다. 지방투어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 전국 17개 지자체장 가운데 15분을 직접 만났다. (지자체장을)한번뿐 아니라 두번, 세번씩 만나서 설득했다. 단순히 지방에 골프 대회를 하나 여는 차원을 넘어서 시도의 축제로 만들고, 지방 특산품의 전시장을 만들기 위해서 아이디어를 짜내고 사람들을 만났다. (큰 줄기를 잡았으니)올해는 아마 (KPGA)실무자들이 많이 바쁠 것이다.

-올 시즌은 지난 시즌 첫 시행에 이어서 지자체 주도 대회가 대거 추가된 것이 특징이다. 지자체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은 무엇인가.

지난 해 지자체장들과 만나 다양한 협의를 하면서 지방순회투어 개최를 확대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각 지자체에서 원하는 것은 단순한 골프대회가 아니다. 단순히 의미없는 골프 대회를 열면 지역민들의 역풍을 맞게 될 우려도 있다. 그래서 앞서 말했듯이 지자체와 지역 기업, 지역 골프장이 함께 하면서 그 지역의 축제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 지역 출신 프로 선수들이 지역 특산물도 홍보하는 적극적인 역할도 하게 된다. 지난해 대구·경북에 이어 올해는 전북 부산 제주 등에서 대회가 열린다. 이어 경남권, 강원권에서도 대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협의중이다. 가능하면 지자체별로 한 대회씩은 해보려고 하는데 도세의 차이가 있다보니 어려움도 있다. 하지만 몇곳을 제외하면 다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5분의 지자체장을 접촉했을 때 ‘어렵다’는 입장을 확실히 밝힌 곳은 한 곳뿐이었다. 내년 시즌쯤 되면 지방 대회가 10개 정도로 늘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본다.

양휘부
데스크가 만난 사람양휘부 KPGA회장‘. 2017.02.08.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올해 열리는 부산오픈의 경우 홀당 스폰서를 도입했다고 들었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 예전처럼 기업 하나가 통 크게 대회를 주최해주면 좋겠지만 더욱 다양한 대회 운영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사실 지방순회투어를 위해 방문했던 광역 지자체 그리고 그 지역의 기업들마다 경제규모의 격차가 존재했다. 그 차이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떠오른 아이디어가 18홀을 1개홀씩 후원 기업의 홍보 마케팅을 위해 분양하는 방식이었다. 또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대회 유치도 검토하고 있다. 정말 골프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기업과 팬들도 분명 있을 텐데 그들은 대회에 참여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다. 금액을 떠나서 일정 금액을 펀딩하는 일반인들에게 펜스에 원하는 문구를 새길 기회를 주고, VIP 스탠드 좌석을 부여하는 방법 등 크라우드 펀딩을 활용한 대회 개최 여부도 검토하고 있다. 일단 올해까지는 홀별 스폰서십을 정착시키려고 한다. 홀마다 후원해 주는 각 지역의 중소기업 분들이 나와서 그 홀만의 축제를 열어주면 더욱 바람직하다.

-국내에서는 유독 남자가 여자골프에 밀리고 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근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또 치유책은 있겠는가.

서너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스타 플레이어의 존재다. ‘IMF사태’때 보여준 박세리의 활약 덕분에 골프를 모르는 사람도 골프를 알게 됐다. (여자골프는)스타가 끌고 가는 측면이 강했다. 박세리 이후에도 박인비 박성현 등 스타들이 계속 나온다. 또 여자골프는 폼도 예쁘고, 스타일도 멋있다. 한마디로 ‘맵시 골프’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반면 남자 골프의 특성은 다이내믹함에 있다. 맵시를 중시하는 여자 골프의 매력도 있지만 다이내믹하고 도전적인 남자 선수들의 플레이가 스폰서와 팬들에게 다가간다면 국내에서도 남녀가 동반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KPGA는 선수들의 다이내믹한 샷을 보여주기 위해서 지난 해 5월부터 샷 궤적과 거리를 수치로 바로 보여줄 수 있는 ‘트랙맨 시스템’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이 트랙맨 시스템을 올해 더욱 확대해 선수들의 역동성을 최대한 이끌어낼 계획이다. 허인회 선수가 드라이버를 치는 장면을 옆에서 직접 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다. 이런 것을 제대로 보여주자는 것이다. 남자골퍼들이 백스핀을 하는 장면도 제대로 보면 평가가 달라진다. 남자골프만의 다이내믹한 점을 팬들에게 어필해야 한다. 남자 골프에서는 최경주 양용은 이후 스타의 맥이 이어지지 않고 있다. KPGA투어를 이끌어 갈 스타가 필요하다.

-남자골프가 살기 위해서 스타가 필요하다는 것은 공감이 가는데 협회 차원에서 스타선수를 키우기 위한 방안은 무엇이 있는가.

물론 하루 이틀만에 스타가 나올 수는 없다. 중장기적으로 올림픽에 대비한 꿈나무들을 육성 지원하고 싶다. 임기중에 반드시 유소년 육성을 위한 플랜을 확실히 만들겠다. 또 스타 선수들을 많이 만들고 배출하기 위해서는 선수들과 골프 팬 사이의 콘택트 포인트를 늘려야 한다. 대회장에 갤러리가 많이 올 수 있도록 해야 하고 TV 화면을 통해 선수들의 모습을 다양하게 노출시켜야 한다. 그런 부분을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다.

- CJ가 올해부터 미PGA 투어 대회를 국내에 유치한 것은 반가운 측면도 있지만 국내 투어에 대한 투자가 우선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물론 CJ에서 KPGA 대회까지 열어준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CJ에서 주최하는 PGA투어 대회가 국내에서 열리는 것 자체가 우리 선수들에게 대단한 동기부여가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선수들이 최대한 많이 이 대회에 출전할 수 있도록 세부안을 협상중이다.

-안병훈 왕정훈 이수민 송영한 등 해외투어에서 뛰고 있는 스타급 선수들을 국내투어 활성화에 연결시킬 방안은 없을까.

해외투어에 활약중인 상위 세계 랭커들이 국내 투어에 출전한다면 투어 활성화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이 국내에 자주 들어오기는 쉽지 않지만 한 시즌 투어 일정을 계획할 때 다른 해외투어 일정과 크게 겹치지 않도록 해 유명 선수들이 국내 투어에 출전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들 선수들에게 직접 편지도 보냈다. 가능하면 국내 투어 활성화를 위해서 호응을 해달라는 호소를 하기 위해서였다.

-한 골프잡지가 선정한 ‘골프계를 움직일 인물 랭킹’에서 지난해 7위에서 6위로 한계단 소폭 상승했다. KPGA 회장이라면 이런 랭킹에서 몇 위 정도에 있는게 맞다고 보는가.

(웃으면서)한계단이라도 랭킹이 올라가 고마운 마음이다. 내 개인 랭킹과 상관없이 남자골프의 위상이 좀 더 올라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체육단체장으로는 재계출신 인사들이 선호되는 것이 보통이다. 양 회장처럼 언론인 출신 체육단체 수장의 장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물론 재계출신의 인사가 회장이 됐다고 하면 당장 눈 앞의 대회 수는 늘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회장이 바뀌어도 대회는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KPGA 투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자생력을 갖는 것이다. 회장의 인맥이나 재력으로 인한 대회 수 증가가 아니라 투어 자체의 매력이 충분히 어필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궁극적으로는 스폰서를 하겠다고 찾아오는 투어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목표를 갖고 투어를 운영해야 하며 우리가 우리의 콘텐츠를 제대로 팔아서 자생력을 갖는 방향을 나가야 한다.

-골프 마니아로 알고 있다(양 회장은 2009년 이븐파를 친 것이 자신의 베스트 스코어라고 말했다. 1991년에는 홍콩에서 알바트로스를 잡았던 추억도 가지고 있다. 요즘은 80대 초반 정도 스코어가 나온다고 밝혔다). 자신만의 골프관이나 골프철학을 소개해 준다면.

골프는 끝이 없는 운동이다. 예를 들어서 같은 홀에서 어제 보기를 했다면 오늘은 파를 하고 내일은 버디에 도전하게 만든다. 도전하기 위해서는 골프에서 집중력, 자신감, 인내력이 필요하다. 18홀을 마치는 과정에서 온갖 희노애락을 다 느낄 수 있다. 한마디로 인생의 축소판이다. 그래서 나는 골프에서도 ‘도전’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플레이를 할 때도 안전한 경기보다는 해저드를 넘겨 치고, 벙커를 피해가지 않는 스타일이다. 이것이 골프를 좋아하는 이유이자 골프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훗날 골프계에서 ‘양휘부’라는 사람은 어떻게 기억됐으면 하는가.

남자투어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서 노력했던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스폰서들이 스스로 찾아오는 투어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던 사람으로 말이다. 회장 재임 중을 떠나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KPGA 투어가 스폰서에 의존하지 않고 티켓 수익과 중계권료만으로 운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다. 솔직히 이런 것이 언제 실현될 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훗날 이런 큰 그림이 어느 정도 정착될 때 사람들이 ‘양휘부’를 한 번씩 떠올려 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batma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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