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서장원기자] 20년의 방송 경력, 그리고 12년 동안 메이저리그와 국내프로야구를 넘나들며 한명재 캐스터는 국내를 대표하는 최고의 캐스터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현장감 있는 그의 중계는 그가 속해있는 MBC Sports+가 수년간 프로야구 시청률 1위를 기록하게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베테랑이 된 그는 아직도 끊임없이 자신의 중계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개선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설명하는 한명재 캐스터의 목소리에서 마치 신입 캐스터를 보는 듯한 활력을 느낄 수 있었다.


Q. 20년간 중계를 하면서 자신의 중계 방식에 대해 지루해 하는 팬들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한명재 캐스터 : 친한 선배가 “너만의 캐치프레이즈를 가져라”는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유명한 캐스터들은 다들 유명한 멘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 자체가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지게 하는 것 같아서 굳이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중계 때 보다 다양한 표현을 하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말이 잘 안되거나 어법이 틀리는 경우가 더러 생긴다. 프로듀서들도 “너무 감성적으로 가는 게 아니냐”고 지적을 하기도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사실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Q. 한명재 캐스터 하면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속 시원한 샤우팅 발성이 트레이드마크다. 또 어록이 있을 만큼 많은 명대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런 대사들은 직접 연구한 것인가.


한명재 캐스터 : 우승 코멘트들은 특별한 날이기 때문에 고민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외 98% 이상은 떠오르는대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매일 하는 일이기도 하고 많은 경기를 보면서 ‘저런 상황에선 이런 코멘트가 좋겠구나’라는 생각을 해놨다가 현장에서 쓰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Q. 캐스터란 직업은 본인의 중계 능력도 중요하지만 함께 중계를 하는 해설위원들과 호흡도 중요하다. 각기 다른 해설위원들의 스타일에 맞추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


한명재 캐스터 : 가장 좋은 건 해설위원과 많은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허구연 위원과 가장 오랜 기간 방송을 해왔지만 방송 외적으로도 많은 시간을 갖는 편이다. 올해 미국으로 허 위원과 스프링캠프를 같이 갔는데 거의 한 달 가까이 함께 있었다. 평소 갖고 있는 생각이나 관점들이 다 기억에 남는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편안하게 중계를 할 수 있다. 또 정민철, 김선우, 이종범 위원 같은 경우는 선수 생활을 마무리 하고 바로 해설을 하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따끈한 정보나 현장의 생각과 철학 등을 많이 공유하고 있다. 그런 것들을 방송에서 들려주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 서로 믿음이 있어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


Q. 그동안 많은 해설위원들과 중계를 했지만 야구팬들은 한명재-허구연을 최고의 콤비로 꼽는다. 한명재가 보는 허구연은 어떤 사람인가.


한명재 캐스터 : 현재 대한민국에서 야구해설을 가장 오래 했고 또 잘하는 분이다. 나는 어렸을 때 허 위원이 중계한 방송을 보고 자란 세대다. 허 위원이 감독을 했을 때도 봤고 코치를 했던 것도 봤다. 내가 타 채널에 있을 때도 허 위원의 방송을 보면서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옆에서 직접 보니 '넘버원'일 수밖에 없다. 사실 지금의 허 위원 정도 되면 30년 넘은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방송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허 위원은 경기 전이나 경기가 끝난 후에도 취재거리가 생기면 취재를 하고 아나운서, PD들과 끊임없이 대화 한다. 그 연배, 그 경력에 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이런 노력이 있기에 노하우나 스토리들이 쌓이는 거다. 허 위원하고 방송을 하면 자료들이 워낙 많아서 테이블이 좁다.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후배들이 쉽게 따라가기 어려운 분이다. 허 위원을 만나서 함께 방송을 하고 있는 자체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Q. 직접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를 중계하기도 했고, 메이저리그 스프링 캠프를 취재하기도 했다. 가까이서 메이저리그를 접하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무엇인가.


한명재 캐스터 : 인프라다. 아직 우리나라 시장이 작다보니 메이저리그와 인프라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 최형우가 100억 원에 FA계약을 체결한 것과 차우찬이 과연 95억 원의 가치가 있는 선수냐를 놓고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을 지적한다면 프로야구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이건 메이저리그도 마찬가지다. 미국도 경제 상황이 굉장히 어렵지만 거액의 FA 계약이 발생하거나 거액의 연봉을 받는 선수들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들은 없다. 프로스포츠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선수들이 지금의 위치에 올라오기까지 쌓은 경험과 노력를 사람들이 인정하는 거다.


그런데 우리는 프로야구라는 타이틀을 걸어놓고 유독 이런 부분에 너무 민감하게 바라본다. 가장 씁쓸한 것 중 하나가 스포츠를 사회적으로 폄훼하는 것이다. 왜 선수들이 흘린 땀이나 고통이나 어려움들은 무시하고 그들이 받아가는 돈에 대해서만 색안경을 끼고 보는가. 시장 경제에서 그 사람의 가치가 경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100억 원을 주고 데려오는 것이 맞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이런 것에 대해 나쁜 시선으로만 보니 답답할 때가 많다. 이런 인식들이 바뀌어야만 우리도 인프라가 성장을 하게 된다.


인프라의 성장은 야구를 보는 팬들의 수준이 올라가게 만들고, 또 수준이 올라가면 시장은 더 풍요로워진다. 지금은 최형우에게 100억 원을 준 것을 걱정할 게 아니라 100억 원을 준 그 부분이 구단에게 그대로 적자로 남는 구조를 걱정해야 한다. 최형우의 스타파워로 100억 원의 가치를 입장료로 채울 수 있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차우찬에게 95억 원이 아니라 120억 원을 주더라도 그의 티켓파워로 더 많은 관중을 불러 모을 수 있다면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거다. 메이저리그는 이런 선순환이 되고 있다. 우리도 이런 구조가 만들어져야 진정한 ‘프로’인 것이다. 각 구단이 자구책을 갖지 못하면 프로야구는 언제나 지금처럼 흥행의 넘버원일 수 없다.


Q. 한명재 캐스터만이 가지고 있는 중계 철학은 무엇인가.


한명재 캐스터 : 내가 느끼는 것을 시청자들이 같이 느꼈으면 좋겠다. 가끔 결정적인 상황에 코멘트를 잘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다보면 우리 팀의 결정적인 상황인데 코멘트를 안 한다는 오해와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코멘트를 잘 하지 않는 것은 내가 느끼는 현장의 느낌을 시청자들이 함께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TV를 보는 사람들은 현장을 가지 못하기 때문에 중계방송을 본다. TV로 보지만 현장에 있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현장의 분위기, 느낌, 경우에 따라서는 감독과 선수의 마음 등을 감정이입해서 볼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 우리의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Q. 한명재 캐스터를 보면 빈 스컬리가 떠오른다. 캐스터로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


한명재 캐스터 : 재작년에 빈 스컬리를 만났을 때 든 생각은 ‘나는 절대 빈 스컬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직접 만나 본 빈 스컬리는 정말 박학다식했다. 류현진과 추신수의 맞대결을 중계하러 미국을 갔을 때 빈 스컬리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짧은 순간에 6.25전쟁에 대해 강의를 하더라. 중계할 때도 보면 일반 상식 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세세한 히스토리까지 모두 알고 있다. 그 만남 이후로 누군가 나에게 한국의 빈 스컬리라고 하면 창피하다(웃음).


캐스터로서는 나에게 행운이 조금 더 있다면 오래 중계를 하고 싶다. 사실 우리는 선택받는 직업이다. 시청자, 경영진, 제작진의 선택을 받아야하는데 다행히 아직까지 이 모든 것들이 맞아서 이런 호사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야구를 좋아하던 스포츠키드에서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기억하는 몇 목소리 중의 한 명이 된 것 만으로도 대단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이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건 시청자들의 선택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올해가 마지막 시즌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방송을 한다. 가능하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이 행운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Q. 한명재 캐스터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많은 후배들이 있다. 선배로서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명재 캐스터 : 후배들에게는 길게 보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스포츠 중계를 하는 사람은 호흡을 길게 가져가야한다. ‘오늘 방송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것이 과연 좋은 방송일까’라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모든 것을 한번에 다 풀어놓는 것보다 적재적소의 상황에 풀어놓는 이야기는 시청자에게 전달되는 임팩트가 다르다.


스포츠 캐스터는 요리사와 많이 비교가 된다. 요리사는 같은 재료를 가지고 얼마나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 똑같은 거다. 캐스터도 어떻게 하면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는 중계를 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해봐야 한다. 또 단기간에 빨리 떠서 유명한 캐스터가 되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경기 자체가 스타인거지 캐스터가 스타가 되려고 해선 안 된다. 기본이 안 되어있는 상태에서 인기만 쫓다보면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다.


Q. 포괄적이면서 어려운 질문을 하겠다. 한명재 캐스터에게 야구란 무엇인가.


한명재 캐스터 : 종교 같다. 야구장이 주는 신성함이 있다. 야구장을 일찍 가서 빈 야구장을 보면 마치 교회에 앉아 있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선수들도 같은 느낌일 거다. 야구장이 주는 정감, 중압감 등 순간순간을 사는 것이다. 야구장 곳곳에 희로애락이 녹아있고 이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35년째를 맞이했다. 이제는 종교라고 얘기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Q. 대중에게 어떤 캐스터로 기억되고 싶나.


한명재 캐스터 : 대중적인 면에서 봤을 때 야구는 클래식이라기보다는 대중가요, 그 중에서도 발라드보다는 트로트에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 나는 클래식을 지향하는 트로트가수가 되고 싶다. 우리가 갖고 있는 풍부한 이야깃거리들을 잘 묶어서 명품이 될 수 있게끔 만들고 싶다. 앞으로 국내 야구가 트로트의 대중성도 갖고 있으면서 클래식이 갖고 있는 명품성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야구가 어렵지 않고 그 안에 많은 감정들이 녹아있고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잘 전달해주는 캐스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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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서장원기자 superpow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DB, M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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