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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텍 랜싱을 거쳐 설립된 JBL은 이후 하만 인터내셔널에 인수됐고, 그 하만 인터내셔널은 다시 삼성전자에 인수됐다. 하만 산하 브랜드 중 가장 대중적으로 유명한 JBL은 올해로 창립 70주년을 맞았다. 사진 우측이 JBL 창립자인 제입스 블로우 랜싱.  제공 | 하만 인터내셔널

[스포츠서울 이상훈기자] 삼성전자가 전장부품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세계적인 커넥티드카·오디오 전문 브랜드 하만 인터내셔널을 11월 14일 전격 인수를 결정했다. 삼성전의 하만 인수는 전장부품 관련 사업을 위한 조치지만 하만 관련 오디오 브랜드들까지 함께 얻게 된 셈이다. 향후에는 삼성전자와 하만 산하 브랜드들(하만카돈, JBL, 마크레빈슨, 렉시콘, 레벨, AKG 등)의 기술 협업도 기대된다.

하이파이 오디오를 취미로 하는 이들이라면 하만 산하 여러 브랜드들 중에서 마크레빈슨과 JBL이 가장 널리 알려졌을 것이다. 헤드폰이나 이어폰, 포터블 플레이어를 사용하는 이들이라면 AKG와 JBL이 친숙할 것이다. 서로 다른 두 영역이지만 JBL은 하이파이 입문자와 모바일 시장부터 최고급 하이엔드 오디오 시장까지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고 있는 하만 인터내셔널의 대표적인 브랜드라 할 수 있다. 그 JBL이 올해로 창립 70주년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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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L은 폭넓은 인지도를 간직한 하만의 대표 브랜드다.  제공 | 하만 인터내셔널

JBL은 창업주인 제임스 블로우 랜싱(James Bullough Lancing)의 이름을 딴 브랜드다. 하지만 1902년 1월 14일에 태어난 그의 본명은 제임스 마틴(James Martin)으로, 탄광 기사 헨리 마틴과 그레이스 사이의 14남매 중 9번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전기나 전자, 음향 기술에 관심이 많았던 제임스는 10살이 되었을 때 ‘라이덴 핀’ 유성기를 만들어 주위를 놀라게 했으며 12살에는 모르스 부호로 송신하는 무전기를 직접 조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 만든 소형 무전기 성능이 매우 뛰어나 인근 해군부대 무선국 군인에게 혼이 났다는 일화도 있다. 제임스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다 디트로이트에 위치한 자동차 기술학교를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전기 및 기계기술을 배우게 됐다.

제임스가 22세가 되던 1924년 , 갑작스런 어머니의 사망으로 큰 충격을 받은 제임스는 자립을 결심하고 유타주에 위치한 솔트 레이크 시티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1927년까지 라디오 방송국에서 근무했다. 이 시기에 미래의 부인인 크레나 빅터센을 만나고 제임스의 곁에서 최고의 파트너가 돼 준 켄 덱커(Ken Decker)도 만났다.

1927년에는 세계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싱어’가 개봉됐다. 또한 라디오 산업이 활발해지면서 기계와 전자, 소리와 예술이 결합된 제품들이 크게 성장했다. 사람들의 ‘음질’에 대한 욕구도 더불어 강해졌다. 일반인들보다 그 욕구가 더 컸던 제임스와 켄 덱커는 조악한 라디오 스피커 품질에 불만을 갖고 함께 우수한 스피커 시스템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제임스와 켄 덱커는 로스엔젤레스로 거처를 옮긴 후 오디오 전문 기업 ‘랜싱 매뉴팩처링(Lancing Manufacturing)’을 창업했다. 이 때 제임스 마틴은 이름을 ‘제임스 블로우 랜싱(JBL)’으로 개명했다. 랜싱이라는 단어를 회사명과 이름에 사용한 이유로 랜싱이라는 단어가 미시간 주에서 ‘큰 도시(Big City)’라는 의미로 사용됐는데 그 의미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초기 랜싱 매뉴팩처링은 승승장구해나갔다. 유성영화의 황금기가 도래하자 영화의 음성과 음향을 생생하게 전달하려는 영화관이 극장용 스피커를 주문하기 잇따라 주문해 큰 수익을 거뒀고, 새 유닛 개발도 순조로웠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인력이 부족해지자 제임스는 동생인 빌 마틴과 조지 마틴까지 불러들여 사세를 확장시켰다.

랜싱 매뉴팩처링은 8인치 이하 스피커 유닛을 개발·생산하며 미국 중서부 라디오 제조사들에 납품했다. 어느덧 직원 수는 40명에 달하게 됐고 랜싱 매뉴팩처링은 미국에서 꽤 유명한 스피커·유닛 제조사가 됐다. 이 시기에 제임스는 스피커 유닛 개발에 그치지 않고 네트워크 회로와 진공관 앰프에 대한 연구개발도 하며 일체형 스피커 시스템의 개념을 확립했다. 당시 불량률이 상당했던 스피커의 품질을 개선해 영화관 음향장비 일체를 독점공급하던 웨스턴 일렉트릭과 제휴해 영화관용 스피커 개량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제임스 블로우 랜싱이 제품 개발을 담당하고 켄 덱커가 회사 경영을 도맡았던 랜싱 매뉴팩처링에 갑작스럽게 위기가 닥쳤다. 절친이자 파트너인 켄 덱커(미국 육군 항공대 출신 장교로 종종 연습비행을 즐겼다)가 1938년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만 것이다. 신뢰할 수 있는 사업 파트너이자 절친인 켄 덱커를 보낸 제임스는 이내 슬럼프에 빠졌고 회사 경영이 차질을 빚기 시작하면서 랜싱 매뉴팩처링은 위기를 맞이하게 됐다.

재정난을 견디지 못한 랜싱 매뉴팩처링은 1940년, 웨스턴 일렉트릭(Western Electric)의 퇴직 기술자들이 세운 ‘알텍(Altec Theater Service Corporation)’에 합병됐고 이듬해에 알텍은 회사명을 알텍-랜싱으로 변경됐다.

당시 알텍은 극장 음향시설의 보수와 관리가 주된 사업이었으나 랜싱 매뉴팩처링을 합병함으로써 제품을 연구·개발할 수 있게 됐다. 제임스 블로우 랜싱은 5년간 근무를 조건으로 기술담당 부사장 직함을 받았다. 알텍-랜싱의 임원이 된 제임스는 15인치 구경의 멀티 셀룰러 혼 타입 604 동축 유닛을 개발했고 1943년에 리본 와이어 보이스 코일에 적용되는 플랫와이어 밀링(Milling)과 하이-스피드 와인딩(Winding) 기법 개발, 1944년에는 힐리어드(Hilliard)와 함께 높이 230㎝의 A-4 시스템을 개발하고 영화관의 ‘Motion Picture Theater’의 기준을 재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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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에야 비로소 JBL이라는 사명을 쓰기 시작했지만 사실 그 역사는 훨씬 오래됐다고 볼 수 있다. 사진은 당시 ‘JBL 시그니처 라우드스피커’ 사무실 모습.  제공 | 하만 인터내셔널

5년간 알텍-랜싱에서 근무한 제임스는 계약기간이 종료되자마자 퇴사하며 1946년, ‘Lancing Sound Incoporated’라는 회사를 새롭게 설립했다. 그러나 ‘랜싱’이라는 상표권의 권리가 알텍-랜싱에 있음을 확인한 제임스는 회사명을 자신의 이니셜을 딴 ‘JBL Signature Loudspeaker’로 변경하기로 결심했다.

랜싱 매뉴팩처링에 이어 두 번째로 회사를 설립한 제임스는 1947년, 최초로 4인치 플랫 와이어 보이스 코일을 사용한 15인치 스피커 D-130을 선보이며 회사를 이끌어 나갔다. D-130은 알루미늄 재질의 센터 돔, 만곡형 콘지, 자속밀도가 높은 알니코 V 자석을 사용해 높은 능률을 이룩한 획기적인 스피커였다. 그러나 우수한 제품을 개발하는 데에만 재능이 있던 제임스는 경영에는 소질이 없어 수 차례 부도 위기에 직면했다.

제임스는 회사 주식의 40%를 양도하는 조건으로 ‘마쿼트 항공사(Marquardt Aviation Company)’로부터 경영자금을 빌려썼다. 당시 마쿼트 항공사의 경리부장이었던 윌리엄 토마스가 JBL의 중역이 돼 경영에 관여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JBL의 경영부진을 회복하기는 어려웠다. 계속되는 부도위기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한 제임스는 결국 1949년 9월 29일 자신의 공장을 둘러본 후 아끼던 느티나무에 목을 매 자살했다.

혼자 남게 된 윌리엄 토마스는 켄 덱커 이후 제임스와 호흡이 잘 맞는 파트너였다. 훌륭한 개발자의 죽음을 애석히 여긴 윌리엄 토마스는 제임스의 생명보험금 1만달러를 자본으로 회사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직원들도 고인의 유지를 이어 회사명을 ‘JBL’로 고쳤고 제임스가 만든 훌륭한 유닛들을 사용해 희대의 명기 ‘하츠필드(Hartsfield)’와 ‘파라곤(Paragon)’을 세상에 출시했다.

1955년 출시된 하츠필드는 시사 화보잡지인 ‘Life’지 표지에 등장했다. 유명한 음악 악기 연주자인 레오 펜더(Leo Fender)는 D-130을 기타 앰프와 접목한 JBL 하츠필드 시스템을 “궁극의 스피커”라 격찬했고, 1958년에 출시된 파라곤 스피커는 원통 형태의 반사 원리를 적용해 입체음향 스피커 시스템을 대표했다. 제임스 사후 불과 몇 년 만에 JBL이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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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L이 1954년 개발한 375 드라이버. 세계 최초 상업용 4인치 다이어프램 드라이버였다. 제공 | 하만 인터내셔널

이후 JBL은 음향렌즈(Acoustic Lens)와 고성능 컴프레션 드라이버를 채용한 2웨이 스튜디오 모니터를 출시(1962년)하고 고출력 솔리드 앰프에 적합한 T-회로 출력을 출시(1965년)하며 지속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시기에 38㎝ 대구경 콘 우퍼를 2개 채용하고 패시브 라디에이터를 더한 올림푸스(Olympus) 스피커가 히트했으며 1969년에는 세계적인 오디오 그룹인 하만 인터내셔널이 JBL을 인수, 하만 인터내셔널 대리점을 통해 JBL 스피커를 폭넓게 보급할 수 있게 되었다. JBL은 이 때 우드스톡 뮤직 페스티벌에 스피커를 지원하며 대중에게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다. 미국 공연장 장면을 유심히 살펴보면 공연장비 상당수가 오렌지색 JBL 로고를 부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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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입스 블로우 랜싱 창업자의 사망 이후 하만에 인수돼 JBL의 음향기술이 비로소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제공 | 하만 인터내셔널

같은 해에 JBL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4310 스튜디오 모니터 스피커의 컨슈머 버전인 L-100을 출시했다. 이 제품은 70년대에만 12만5000조(Pair) 이상 판매되며 스피커 역사를 새로 썼다.

1970년대에는 JBL이 4웨이 스튜디오 모니터 스피커 시리즈 4300s를 출시했다. 희한하게도 컨슈머용이 아닌 모니터 스피커 시리즈가 일본 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얻었는데 다소 투박하고 대구경 유닛을 채용한 JBL 모니터 스피커의 일본 판매량이 상당해 JBL 측을 놀라게 했다. 이 일본 시장에서의 인기는 우리나라에도 고스란히 전해져 국내 오디오파일들도 4300s 시리즈 스피커를 많이 사용했다. 1976년에는 레코딩 업계에서 JBL 모니터 스피커가 빌보드 순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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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L의 4웨이 스튜디오 모니터 스피커 4311이 빌보드의 설문조사 결과 업계 레코딩 산업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피커로 선정됐다.  제공 | 하만 인터내셔널

서라운드 사운드가 본격화된 80년대에는 첨단 음향기술이 큰 진보를 이뤘다. 1981년에는 ‘바이 래이디얼 혼(Bi-Radial Horn, 양방향 혼 구조)’를 스피커에 적용해 한결 평탄한 주파수 반응을 재생할 수 있게 했고 이듬해인 1982년에는 컴프레션 드라이버의 다이어프램 재질에 세계 최초로 티타늄을 사용했다. 새롭게 개발한 ‘4675 Direct-Radiator’ 시스템은 영화관용 스피커로 사용됐다.

1983년에는 루카스 필름과 합작해 THX 인증 시네마 스피커 시스템을 개발했다. 1984년에는 아카데미 협회의 사무엘 골드윈 극장(메트로 골드윈 메이어 영화사(MGM)의 전신)이 JBL 스피커를 채택했고 1989년에는 미국 영화감독 협회 본사 건물에도 JBL 시스템이 설치됐다. 고급 영화관에는 어김없이 JBL 스피커 시스템이 쓰여 ‘JBL’이란 브랜드를 널리 알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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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L이 업계 최초로 컴프레션 드라이버의 다이어프램 재질에 티타늄을 사용했다.  제공 | 하만 인터내셔널

1990년대는 컨슈머용 고급 스피커가 다수 출시됐다. 1991년 프로 오디오용 네오디뮴 우퍼를 처음 출시했고, JBL Array 시리즈에 사용했다. 1992년에는 초대형 플로어스탠딩 스피커인 K2가 일본 스테레오사운드 ‘Product of Year’를 수상했고 업계 최초로 THX 기준을 완벽하게 충족시킨 홈시어터 시스템 ‘신세시스(Synthesis)’를 선보였다. 1992년에는 업계 최초 완벽한 THX 홈 미디어 시스템 ‘Lower-Midrange Compression Driver’도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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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L은 1991년, 음향업계 최초로 프로 오디오용 우퍼에 네오디뮴을 사용해 응답효율을 높였다.   제공 | 하만 인터내셔널

2001년에는 아카데미 협회에서 JBL 엔지니어들에게 ‘Scientific and Engineering’과 ‘Technical Achievement’ 상을 수여했고 2002년, JBL의 버텍(Vertec) 시스템이 그래미 시상식과 한일 월드컵 개막식 등에 지원됐다. 또한 신세시스 허큘러스(SYNTHESIS Hercules) 시스템이 8000W 이상의 파워와 SDP-40 디지털 프로세서로 인해 가장 강력한 홈씨어터 시스템으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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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크기로 웅장한 사운드를 재생하는 JBL의 버텍(VerTec) 라인 어레이 시스템. 이 시스템은 후에 한을 월드컵 개막식에도 사용됐다.  제공 | 하만 인터내셔널

JBL은 또 컨슈머 시장에서 K2 시리즈의 최신 모델인 S9900과 창립 60주년 기념작인 PROJECT EVEREST DD66000을 연달아 내놓으며 대형 플로어스탠딩 시장에서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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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만 인터내셔널 코리아가 JBL 창립 70주년 기념 신제품 17종을 새롭게 선보였다. 이번에 선보인 제품들은 대부분 모바일·포터블 제품들로 디자인과 성능을 끌어올리며 일반 사용자들을 정조준했다.  이상훈기자 party@sportsseoul.com

2000년대 들어서는 JBL 브랜드 대중화가 활발히 이뤄졌다. 아이폰용 도킹 오디오 시스템을 비롯한 다양한 컨슈머 제품들이 쏟아졌다. 2010년 이후에는 한 발 더 나아가 포터블 블루투스 스피커부터 다양한 헤드폰·이어폰을 선보이며 스마트폰 등장 이후 급변하는 모바일 리스닝 시장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창립 70주년을 맞이한 JBL은 올해 70주년 기념작으로 JBL 에베레스트 엘리트 700(Everest Elite 700) 등의 헤드폰과 다수의 포터블 스피커에 외부 소음 억제 기술과 청취 환경에 맞춰 음을 자동으로 튜닝해 주는 첨단 음향기술들을 선보였다.

현재 JBL은 NBA(미국 프로농그리그) 공식 사운드로 채택됐고 스테픈 커리와 제롬 보아탱 같은 유명 운동선수를 브랜드 홍보대사로 선정했다. 또 페라리, 토요탸, 현대, 기아 등의 자동차에 JBL 카 오디오 시스템을 공급하며 공연장-거실-서재-거리(헤드폰)-차량 든 모든 곳에서 JBL 사운드를 즐길 수 있도록 영역을 확장시켰다.

part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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