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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김효원 대중문화부장]강릉의 한 작은 영화관을 놀이터 삼은 아이가 있었다. 꼬마는 친척이 운영하는 영화관에서 영화 ‘시네마천국’의 토토처럼 영화를 보며 성장했다. 영화를 누구보다 많이 볼 수 있었던 환경은 그를 영화감독이라는 운명앞으로 데려다놓았다. 영화 ‘터널’로 6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김성훈(45) 감독이다.

우리 사회의 안전의식과 시스템의 부재를 고발한 영화 ‘터널’이 6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위트있게 연출해 대중의 감성을 건드렸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터널’은 지난 27일 오후 누적 관객수 602만명을 기록했다. 개봉 이후 18일간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해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최장 기간 1위라는 기록도 갖게 됐다.

하정우, 배두나, 오달수가 주연을 맡은 ‘터널’은 어느날 갑자기 붕괴된 터널에 갇힌 30대 남자 이정수(하정우 분)와 그의 아내 세현(배두나 분), 남자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구조대장 대경(오달수 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를 만드는 게 영화를 보는 것 보다 훨씬 재미있다. 앞으로 찍을 수 있는 영화가 10편 내외일테니 꼭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골라 부지런히 영화를 찍고 싶다”는 그를 만났다.

-영화가 600만을 돌파했다. 1000만을 점치는 사람들도 많다. 기대하고 있나

전혀 아니다. 600만을 돌파한데는 여름 방학 시즌에 개봉한 덕분이 크다. 여름 방학 시즌이 끝났기 때문에 1000만을 가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본다.

-600만을 돌파한 소감은?

500만을 넘기면서 소감을 묻는 질문을 많이 받고 있다. 영화를 보는 관객 한명이 늘수록 고마움을 더 느끼게 된다. 그러나 공감도 얻겠지만 아쉬운 목소리도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그런 목소리들을 듣고 저 스스로 많이 숙성해서 네번째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여담인데, 우리나라는 흥행 집계를 사람 수로 한다. 외국은 돈으로 카운팅한다. 사람 수로 집계하는 건 우리나라만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생각해보면 상업영화를 찍는 것이 돈을 벌 목적도 있지만 오로지 돈만이 목적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카운팅 방식이 계속 지속되면 좋겠다.

-‘터널’에서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점과 가장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아직은 제 영화가 객관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직은 영화 안에 빠져있다. 거기서 나와서 냉정하게 검토해야겠지만 현재까지 가장 큰 자부심은 배우들의 연기다. 하정우, 배두나, 오달수씨 그리고 다른 배우들 모두 어느 하나 대충 연기한 사람이 없다. 특히 하정우씨는 터널 안에서 외로이 고군분투하며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영화를 관객에게 위트있게 잘 전달했다. 우리 영화 방향에 최적화된 배우였다. 이런 배우 보는 건 영화감독의 쾌감이자 자랑이다. 배두나씨는 영화에 공감하며 울 수 있게 해준 배우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그저 바라보는 연기를 진솔하게 했다. 오달수 선배는 항상 뒤통수 치며 새로움을 보여주는 배우다. 우리 영화에서는 진정성 있는 캐릭터로 나왔다. 누구를 구조한다는 뻔한 설정을 진정성과 약간의 엉뚱함, 친숙함 등으로 매력있게 풀었다. 내가 갇힌다면 나를 구하는 사람이 저랬으면 좋겠다는 내 로망이 반영됐다. 세분이 너무 잘해줘서 어디에 내놔도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자부한다.

아쉬운 점은 영화를 찍으면서 시간이 오버돼 편집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잘라낸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생존기가 촘촘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아쉽다.

-‘터널’이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는 해석에 대해서는 동의하나

내가 뭘 의도하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보이는 건 세월호가 큰 아픔이라 그쪽으로 흡수되는 거라고 본다. 재난 소재 영화이고 생명의 소중함, 붕괴된 시스템 이야기니까 세월호에 빨려들어간다. 그렇게 보는 건 당연하다. 어떤 분들은 이 영화가 판타지라고 하고, 어떤 분들은 현실이 반영됐다고 하는데 제 바람은 딸아이가 컸을 때 ‘아빠 저런 말도 안되는 영화를 찍었어’라고 말할 만큼 좋은 세상이 왔으면 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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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김성훈.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맨 처음 영화를 찍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어려서부터 8㎜ 영화를 찍었는데 저는 그런 건 없었다. 개봉관 3개와 재개봉관이 1개 있는 소도시 강릉에서 살았는데 친척이 영화관을 운영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극장에서 오징어를 먹으며 뛰어놀다가 공짜로 영화를 봤다. 고등학교때는 상영되는 영화를 모두 볼만큼 영화에 재미를 느꼈다. 그러나 그때까지 영화감독이 꿈은 아니었다. 28세에 군대에서 제대한 후 세상이 삭막해보여 도피처로 영화를 택했다. 현실도피 겸 내 놀이터에서 더 놀겠다는 선언을 하고 유학 준비를 하면서 한겨레영화제작학교에서 6개월 동안 비디오를 배웠다. 그러다 경제 사정이 안좋아져 유학을 포기하고 충무로에서 연출부 생활을 시작했다. 연출부를 하면서 보니 영화 만드는 게 보는 것 이상 재밌다는 걸 알았다.

-첫 영화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2006년)과 두번째 영화 ‘끝까지 간다’(2014년) 사이에 공백이 길다

운 좋게 첫영화를 만들었는데 ‘폭망’해서 깊은 칩거에 들어갔다. 그때가 서른여섯이었다. 감독이 됐다는 외적인 것에 취해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뭔지도 모르고 영화를 만들었다. 칩거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어떤 영화를 좋아하지?’ 그 질문을 통해 나에 대해 살피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질문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은 것이 영화 ‘끝까지 간다’의 시나리오가 됐다. 이야기를 쓰는 게 너무 재밌다는 걸 새삼 다시 느꼈다.

-영화를 통해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시기마다 다르다. ‘끝까지 간다’를 만들 때는 어떤 상황에 던져진 사람이 그 상황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어떤 주제의식을 들이대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했다. 생각해보면 제가 관심있는 키워드 중 하나는 부조리다. 장르적 부조리일 수도 있고, 철학적 부조리일 수도 있다. 부조리에 대한 이야기를 당분간 하게 될 것 같다.

-사람들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연주회를 들으러 가기 전에 걸인을 지나쳐 갔던 한 사람이 연주회를 듣고 난 뒤 걸인에게 적선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음악이 사랑의 감정을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두 시간 동안 사람에 관해 느낄 수 있다.

-어떤 감독이 되고 싶나

영화를 사랑하는 감독이 되고 싶다.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현장을 사랑하는 감독이 되고싶다. 계속 영화 때문에 마음이 설레어하는 감독.

eggrol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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