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현희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가 지난 20일 스포츠서울과 인터뷰 직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주상기자.rainbow@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은메달 동메달 4위 다 해봤어요. 금메달은 하늘이 주는 거라고 하던데….”

남현희(35·성남시청)가 한국 펜싱 선수 최초로 생애 4번째 올림픽을 준비한다. 157㎝ 작은 키에도 장신의 세계적인 선수들을 쓰러트리며 국민들에 환희를 안겼던 그가 이젠 ‘엄마 검객’으로 변신해 마지막 올림픽에서의 환희를 그리고 있다. 세 돌이 지난 딸 ‘하이’를 두고 브라질 리우까지 떠나는 길이 쉽지 않지만 바닥까지 떨어진 세계랭킹을 맨 몸으로 끌어올린 그 힘을 바탕 삼아 피스트(펜싱경기장) 위에 선다.

◇밑바닥에서 올림픽까지…리우에선 깡으로 안 한다

그는 처음 올림픽 무대에 나선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 여자 플뢰레 개인전 8강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그리고 4년 뒤 베이징 올림픽 개인전에서 세계 최강 발렌티나 베잘리와 펜싱사에 한 획을 긋는 명승부 끝에 한 점 차로 패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선 베잘리에 또 한 점 차로 져서 4위에 머물렀으나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최근 스포츠서울 창간특집 인터뷰로 만난 그는 “맛이라고 해야 하나? 2위와 3위, 심지어 4위를 차지할 때 맛을 다 알고 있다. 이제 금메달도 따고 싶고 그 맛을 느껴보고 싶은데 너무 큰 부담으로 남은 것은 사실이다”며 웃은 뒤 “임신하고 출산하면 세계랭킹이 바닥까지 내려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2년 훈련하고 올림픽에 또 갈 수 있을까’란 의문이 있었는데 이렇게 이루니까 스스로는 뿌듯하다. 아기 낳고 몸 만드는 과정에서 금메달은 하늘이 주는 것이다란 말의 의미를 알게 됐다”고 했다.

작은 체구를 활동량으로 메우며 국제무대에서 롱런한 그는 오른 무릎 연골이 다 사라지는 등 고생도 많이 했다. 노련미로 리우에서 웃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제 깡으로 운동하고 싶지는 않다. 준비를 착실히 잘해서 싸우고 싶다”는 그는 “세계랭킹을 보면 올림픽 출전 선수 중 9등이다. 16강이나 8강에서 상위 랭커를 이겨야 하는데 하위 랭커가 곧잘 이기기도 하는 무대가 올림픽이다. 후회 없이 싸우고 올 것”이라고 각오를 전했다. 그는 지난 3월 쿠바 아바나 월드컵에서 당시 세계랭킹 1위 이나 데리글로조바(러시아)를 누르며 동메달을 차지하고 건재를 과시했다. “얼마 전 국내대회에서 3위를 했는데 하이가 ‘어? 동메달이네? 그럼 꼴찌네?’라고 말해 웃었다”는 그는 “금·은·동메달을 구별할 줄 하는 딸을 위해서라도 후회 없는 승부를 리우에서 펼치고 싶다”고 했다.

남현희
펜싱 대표 남현희가 지난 20일 태릉선수촌에서 스포츠서울과 인터뷰한 뒤 하트를 그려보이고 있다.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마지막 올림픽, 그러나 은퇴 무대는 아니다”

남현희는 지난 4월 브라질 리우를 한 번 다녀왔다. 올림픽에선 돌아가면서 남자 단체 한 종목과 여자 단체 한 종목이 제외되는데 이번 리우 대회에선 남자 사브르와 여자 플뢰레가 단체전 종목에서 빠졌다. 두 종목 세계선수권이 4월 리우에서 ‘테스트 이벤트’ 성격으로 먼저 열린 것이다. 남현희와 전희숙 등 올림픽 선수들이 포함된 한국은 4위를 차지했다. “솔직히 (세계선수권에서)부상도 각오할 만큼 오버하진 않았다”는 그는 “남들은 다 걱정했는데 난 리우가 너무 좋았다. 지카 바이러스? 그냥 반팔 반바지 입고 다녀도 괜찮을 만큼 분위기도 좋았고 여행지 같았다. 느낌이 온다”며 리우에서의 달콤한 기억을 떠올렸다. 거기서 그는 평생의 라이벌 베잘리가 은퇴하는 모습도 봤다. “베잘리도 런던 올림픽 뒤 둘째를 낳았다. 이탈리아 선수들이 워낙 잘하다보니 베잘리가 세계랭킹 4~6위임에도 올림픽에 못 가더라”는 남현희는 “런던 올림픽 3·4위전에서 지고 막 울었을 때 ‘네 마음 안다’며 위로하던 기억이 난다. 베잘리는 없지만 다른 선수들 그리고 내 자신이 라이벌이란 마음가짐으로 임하겠다”고 했다.

남현희는 “리우가 내 마지막 올림픽이 될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올림픽이 은퇴 무대는 아니다. 그의 눈은 리우와 함께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을 바라보고 있다. “아기 낳고 세계랭킹 이렇게 다시 끌어올린 것을 보면 ‘난 역시 운동할 팔자인가’란 생각이 든다”며 웃은 그는 “자카르타에서 금메달(개인·단체)을 추가해 한국 선수 중 가장 많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현재 한국 기록은 그와 박태환(수영) 양창훈(양궁) 서정균(승마)이 공동으로 갖고 있는 6개다. 또 하나의 꿈은 사이클 선수로 최근 끝난 ‘두르 드 코리아’에서 3위(한국 선수 1위)를 차지한 남편 공효석과 국제대회에 함께 출전하는 것이다. “남편이 딸 하이와 시상대에 함께 올라 너무 흐뭇했다”는 남현희는 “올림픽에선 아쉽게 이루지 못했는데 아시안게임 등을 통해 꼭 함께 국제무대를 밟고 싶다”고 했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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