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프로야구 한화-LG
지난 2012년 한화의 두 거포 김태균(왼쪽)과 최진행이 머리를 삭발하고 경기에 나선 모습.  강영조기자 kanjo@sportsseoul.com

[사직=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한화 선수들이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나타났다. 간판타자 김태균과 외국인 타자 윌린 로사리오는 삭발에 가깝게 이발했다. 김성근 감독은 “어제(18일) 엘리베이터에서 선수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부산으로 이동하기 전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진행한 훈련 때까지만 해도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분위기 쇄신용 ‘삭발’ 어김없이 등장

팀 분위기가 안좋을 때 나타나는 몇 가지 레퍼토리가 있다. 코칭스태프 보직 이동과 선수단 삭발, 트레이드 순으로 분위기 쇄신을 꾀한다. 개막 초반 예상과 전혀 다른 행보를 걷고 있는 한화는 지난 13일 대전 두산전에 앞서 투수와 배터리 코치를 교체했다. 18일에는 운영팀장과 육성팀장을 맞바꿨다. 그래도 팀 분위기가 개선되지 않자 선수들이 직접 나섰다. 19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2016 KBO리그 롯데와 정규시즌 원정경기를 앞둔 선수들이 짧은 머리로 결의를 드러낸 것이다. 최진행은 “혼자 거울보고 잘랐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열심히 한 번 해 보자’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말했다. 강제사항은 아니라 동참하지 않은 선수들도 있었지만 한결같이 표정이 밝았다. 포수 허도환은 “시원해보이지 않나. 머리카락이 자라는 만큼 팀 성적도 올라갔으면 좋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전에 없이 밝은 분위기가 엿보였다.

◇밝은 훈련 분위기 코치들도 동분서주

오후 4시께 사직구장에 도착한 선수들은 곧바로 외야로 나가 워밍업을 시작했다. 5연패 팀이 맞나 싶을 정도로 경쾌한 목소리가 사직구장을 채웠다. 선수들은 “이제 시작인데 벌써부터 처질 필요가 있나. 밝게, 긍정적으로 경기를 준비하다보면 실전에서도 흐름이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주장 정근우는 동료들이 워밍업을 할 때 먼저 몸을 푼 뒤 배팅 케이지에 들어갔다. 톱타자로 활로를 뚫어줘야 한다는 책임감에 쉼 없이 배트를 휘둘렀다. 이성열은 “17일 대전 LG전에서 패한 아쉬움에 심야 특타를 했다. 찬스에서 조금만 힘을 냈으면 연패를 끊을 수 있어 더 아쉬웠다”며 배트를 곧추 세웠다. 선수들이 활기찬 표정으로 훈련에 임하자 코치들도 덩달아 분주했다. 해당 파트 훈련이 끝난 뒤에도 넉가래를 들고 그라운드를 고르거나 야수들의 송구를 받아주는 등 쉼 없이 움직였다. ‘한 번 해 보자’는 의식이 선수단 전체에 퍼진 듯 했다.

◇빛바랜 이용규의 다이빙, 또 끝내기 패

선수들은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경기에서 이기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일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몇몇 주축 선수들은 “오늘부터 이길 것”이라며 자기최면을 걸기도 했다. 선발 심수창이 5회까지 노히트로 역투하는 등 선수단 전체에 이기려는 의지가 엿보였다. 2-1 살얼음판 리드를 이어가던 6회와 7회 중견수 이용규가 두 번의 ‘더 캐치’로 승리에 대한 집념을 강하게 드러냈다. 심수창이 1사 1, 3루에서 김문호에게 좌전 적시타를 맞고 강판된 뒤 권혁이 최준석을 볼넷으로 내보내 1사 만루 위기가 됐다. 황재균이 풀카운트 접전 끝에 중견수쪽으로 빗맞은 타구를 보냈는데 이용규가 전력질주 해 다이빙캐치로 건져 냈다. 7회말에도 1사 1, 2루 위기에서 손용석이 윤규진을 상대로 우중간에 빗맞은 타구를 보냈다. 한참을 달려온 이용규는 지체없이 다이빙캐치로 타구를 걷어 올렸다. 타구가 뜨는 순간 안타로 생각한 강민호가 2, 3루 중간에서 하프웨이를 하다 3루로 달렸고, 송구를 건네 받은 정근우가 2루를 밟았다. 롯데가 심판합의판정을 했지만 최초 판정이 번복되지 않아 더블 아웃으로 이닝이 끝났다. 한화 선수들 표정에 환희가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환희는 잠시,승리의 여신은 야속하게도 한화를 비껴갔다. 8회말 2사 2루에서 유격수 강경학이 최준석의 평범한 땅볼을 뒤로 빠뜨려 3-2까지 추격을 허용한 뒤 9회말 마무리 정우람이 정훈에게 우익수 희생플라이를 내줘 동점이 됐다. 연장 10회말 무사 만루에서 마운드에 오른 송창식이 대타 김주현과 황재균을 각각 중견수 플라이와 3루수 파울플라이로 돌려보냈지만 강민호에게 스트레이트 밀어내기 볼넷을 내주고 고개를 떨궜다. 10회말 마운드에 오른 박정진이 선두타자 손아섭에게 좌측 펜스 상단을 직격하는 3루타를 내준 게 뼈아팠다. 개막 2연전에 이은 세 번째 연장 끝내기 패배. 삭발 결의도 승리까지 2% 부족했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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