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이우환, 박수근, 이중섭’ 등 돈 되는 작품들 끝없는 위작 논란


[스포츠서울 왕진오기자] "당신이 본 그림은 모두 가짜다!" 2009년 개봉된 영화 그림복제 사기극 '인사동 스캔들'이 내건 홍보문구가 최근 국내 미술시장 위작 논란을 예견한 듯하다.


잊혀질만하면 등장하는 미술품 위작 논란,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시장 논리 때문이라는 것이 화랑가의 정설이다.


▲2008년 1월 9일 한국감정평가연구원에서 2007년 5월 서울옥에서 거래된 박수근의 ‘빨래터’ 위작 논란에 대해 긴급 감정평가가 이뤄진 가운데 감정결과 발표장의 모습.(사진=왕진오기자)


위작 논란이 제기된 것은 화랑과 개인의 거래보다는 공개적인 미술품 경매를 통해 진행됐던 최근 10여 년 동안 가장 많이 발생했다. 그림이 돈이 되고,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하려는 이들에게는 치명적인 유혹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이우환 위작 논란과 고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진위 논란을 계기로 최근 불거진 미술시장 위작 논란 사건에 대해 알아봤다.


※2005년 이중섭 드로잉 위작 사건


2005년 3월 16일 서울옥션 제94회 한국 근현대 및 고미술품 경매에 출품된 이중섭의 '물고기와 아이' 드로잉 4점이 위작시비가 일었다.


당시 이중섭(1916∼1056) 화백의 아들 이태성씨가 서울옥션에 작품 8점을 판매 의뢰해 4점을 팔았으나 한국미술품감정협회가 이 작품들 모두를 위작이라 주장한 것이다.


이어 김용수 한국고서연구회 고문이 갖고 있던 이중섭·박수근의 작품 2843점을 공개하며 논란의 불을 지폈다. 2009년 2월, 1심 법원은 김 씨를 사기죄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판결했다. 이에 김 씨가 불복, 항고했다.


2013년 1월, 2심 재판부는 김 씨의 압수물 전량에 대해 위품 확정 판정을 내리고 항고를 기각했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 심리 중이다.


이 사건으로 당시 서울옥션은 그해 10월 이호재 대표가 서울옥션 대표직을 사임한 데 이어 컬렉터와 미술계 인사들에게 사과문을 발송하기에 이른다.


※2006년 4월 변시지 화백 위작 논란


2006년 4월 25일 서울옥션 제101회 경매에 출품된 변시지(1926∼2013) 화백의 '제주풍경'이 위작 논란에 휩싸였다.


작품 위작 논란과 함께 도난당한 불화 등을 출품시키려는 업자가 붙잡히는 사건도 있었다. 이들 사건과 관련해 서울옥션은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을 만큼 파장이 큰 사건이었다.


바로 다음해에는 미술품 전문 위조단이 이중섭, 변시지, 이만익, 도상봉, 변종하 등 그림 108점, 진품 가격 1천 11억 여 원에 달하는 대규모 위작을 제조 유통하려다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서울옥션 경매장에서 응찰을 하는 고객이 패드를 들어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사진=왕진오기자)


※2007년 12월 박수근 화백 ‘빨래터’ 위작 논란


2007년 5월 22일 평창동 서울옥션 경매장에서 국내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 낙찰가인 45억 2천만 원을 기록하며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미술계는 물론 그림이 돈이 된다는 것을 몰랐던 일반인들까지 그림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해 12월 최고가 낙찰을 기록한 박수근(1914∼1965) 화백의 ‘빨래터’가 위작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며 미술시장은 암흑기로 접어들게 된다.


당시 미술전문 잡지 ‘아트레이드’가 위작 의혹을 제기했고, 서울옥션은 이 잡지를 상대로 3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걸어 2년여 법정 공방을 펼쳤다. 법원에서 명쾌하지 않은 결론을 내리며 여전히 의구심을 남겼다.


이후 45억 2천만 원에 ‘빨래터’를 낙찰 받은 박연구 삼호산업 회장은 서울옥션 측에 되돌려 주게 된다.


소송을 제기한 측이나, 위작 의혹을 제기한 측 모두 얻은 것보다는 생채기만 남기고 은근슬쩍 세상 관심에서 벗어났던 희대의 위작 논란 사건으로 기록된다.


▲2015년 10월 27일 천경자 화백 유족들이 미인도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사진=왕진오기자)


※1991년 천경자 ‘미인도’ 위작 논란


최근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국내 위작시비의 대표적 사건이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 주최의 ‘움직이는 미술관’에 출품된 복제판 ‘미인도’의 원화를 본 천경자(1924∼2015) 화백이 “내 그림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면서 불거진 사건이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과 감정위원들이 "진품이 틀림없다"고 했지만, 천 화백은 "자기 자식을 몰라보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며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붓을 꺾었다.


이후 한국을 떠났고, 2003년 미국 뉴욕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소식이 끊겼다. 12년 만인 지난해 10월 22일 '두 달 전 별세'라는 보도로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졌다.


올해 초 천 화백의 차녀를 비롯한 유족들이 과거 '미인도' 진위 논란을 끝내겠다며 친자 소송에 나서서 새로운 국면을 예고하고 있다.


▲2011년 갤러리현대 전시장에 걸린 작품과 함께한 이우환 화백.


※2015년 이우환 위작 대량 유통 의혹 사건


2015년 10월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서울 인사동의 유명 화랑이 이우환(80) 화백의 위작을 유통시켰다는 첩보를 받아 압수수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수사대에 따르면 이우환 화백의 '점으로부터'등 위작 10여 점이 지난 2013∼2014년 쯤 유통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하며 미술계를 발칵 뒤집은 사건이다.


여기에 올해 2월 이 화백의 작품을 압수한 경찰에게 작품 감정을 의뢰받았던 최명윤 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이 "감정을 의뢰받은 작품 12점에 대해 과학감정과 안목감정을 실시한 결과 모두 위작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에 이우환 화백은 변호사를 내세워 반박을 하며, 국적까지 포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며 논쟁은 끝이 없이 이어지고 있는 상태다.


▲2015년 9월 K옥션 경매에 나온 천경자 화백의 작품 경매 현장.(사진=왕진오기자)


"복제는 위선으로 가득한 미술계에 대한 도전이자 조롱이다. 의미를 찾기보다 기술에 집착하는 순간 미술의 가치는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영화 ‘인사동 스캔들’ 속 복제 전문가 이강준(김래원 분)이 말한 대사다. 당시 미술계와 사회상을 빗대어 제작된 영화지만,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전혀 변하지 않는 세태를 되새겨 보게 하는 말로 다가온다.


wangpd@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