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선대회장이 7억 원에 일괄구입 한 400여 점 속 한 점


‘어디서 그 많은 국보물 구입했나’ … 입수과정 세간의 화제


[스포츠서울 왕진오기자] 국보 제134호 ‘금동보살삼존입상’.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1987년 김동현 옹으로부터 국보 5점, 보물 5점 등 400여 점을 7억 원에 일괄 구입한 유물에 포함된 국보다.


금속유물 감식의 전문가였던 김 옹은 문화재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것으로 전해진 이병철 회장의 친형인 이병각 씨와 매우 가까운 사이로 세간에 알려진 인물이다.


▲국보 제134호 ‘금동보살삼존입상’.(사진=문화재청)


이병철 선대회장이 김 옹으로부터 일괄 구입한 유물은 그로부터 10년 후인 1997년 7월 1일, 삼성문화재단 호암미술관이 1960~1970년대 유물을 공개하는 대형 전시회를 열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당시 이 전시는 국보·보물 등 지정문화재가 17점에 달해 세간의 화제와 관심을 모았다. 이 전시회의 압권은 입수과정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 낸 강원도 춘천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진 ‘국보 제134호 금동보살삼존입상’이었다. 특히 출토지와 양식상의 특성으로 보아 고구려계 불상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이 국보의 입수과정이 궁금증을 자아낸 것은 그동안 소장해 왔던 유물전시가 아니라 구입한 유물의 전시였던 까닭에 ‘그 많은 국보물을 어디서 구입했는가’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다만, 2004년 대한불교조계종이 삼성문화재단을 상대로 ‘현등사 사리구 반환’을 놓고 싸움을 벌이면서 이 선대회장의 형인 이병각 씨와 김 옹의 절친 관계가 세간에 회자됐다.


이 사건 당시 삼성문화재단 호암미술관 관계자는 “사리구는 삼성 이병철 초대 회장이 1981년 김동현 옹으로부터 구입해 기증한 것으로 소장 경위에 절차상 문제가 없다”면서 “이병각씨의 과거 장물 취득혐의 등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병각 씨는 1966년 ‘석가탑 도굴미수사건’ 당시 석가탑 도굴을 시도했던 전문도굴단으로부터 장물을 취득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 씨는 중과실 장물취득 등의 혐의로 금고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고, 개인소장품 200여 점을 압수당했다.


압수품 가운데 ‘금은아미타여래좌상’이 있다. 김 옹이 ‘이 금불상은 10만 원짜리 가짜’라고 감정해 이 씨가 집행유예 선고를 받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금은아미타여래좌상’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지하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국보 제134호 ‘금동보살삼존입상’.(사진=문화재청)


한편, ‘현등사 사리구 반환’ 사건은 삼성문화재단이 재판에서 승소했지만, 2006년 조계종에 돌려 줬다. 또 장물을 사들인 이씨는 1000여 평이나 되는 집 마당에 10개의 석탑과 송대(宋代)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색의 석물 탑과 큰 도자기 등 20여점을 비치해 작은 박물관을 연상케 할 정도로 문화재 애호가로 알려졌다.


2005년 김재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은 문화재청 국정감사를 통해 “삼성이 보유한 문화재에 대해 수집경로를 조사해야 한다”면서 “문화재보호법 82조에 의해 도굴된 것을 알고도 이를 구입하면 처벌을 받는다.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호암미술관과 리움미술관이 어떤 문화재를 소유하고 있는지, 또 어떤 것들이 장물인지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국보 제134호 금동보살삼존입상


하나의 광배(光背)에 삼존상을 배치한 형식이며, 불신(佛身), 광배(불상의 머리나 몸체 뒤쪽에 있는 원형 또는 배 모양의 장식물로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화해 장엄한 것), 대좌(臺座)가 함께 붙어 있어 있으며 한 번에 주물로 만든 독특한 작품이다.


1970년 12월 30일 이건희 삼성 회장의 소유의 국보에 지정됐고, 현재는 삼성미술관 리움이 관리를 맡고 있다.


본존인 보살은 머리에 관(冠)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둥근 편이다. 가슴에는 대각선으로 내의를 얇게 걸쳐 입었고, 두껍게 걸쳐 입은 겉옷은 보살상의 앞면에서 'X'자로 교차됐다가 새의 날개깃처럼 좌우로 퍼지고 있다.


치마는 발목까지 길게 늘어졌으며, 약간의 주름을 선으로 표현했다. 손 모양은 오른손을 어깨 높이로 올려 손바닥을 밖으로 보이고 있으며, 왼손은 손가락이 밑을 향하고 마지막 두 손가락을 구부리고 있는 모습이다.


▲국보 제134호 ‘금동보살삼존입상’.(사진=문화재청)

머리를 깎고 합장한 채 서 있는 두 나한상은 두꺼운 옷을 입고 있어서 세부묘사나 옷주름의 특징을 살피기가 어렵다.


보살상 뒤의 광배는 가장자리에 도드라진 테를 두른 배(舟) 모양이며,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3줄의 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머리광배 안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머리광배와 몸광배의 바깥쪽에는 섬세한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보살상이 서 있는 대좌에는 큼직한 연꽃무늬를 이중의 선으로 새기고 있다. 대좌를 이러한 양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부여 부소산에서 출토된 정지원명 금동석가여래입상(보물 제196호)이나 금동미륵보살반가상(국보 제83호)과 비슷해 백제시대 작품일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그 표현에 있어서는 더 섬세한 면이 있다.


이 작품은 'X'자로 교차된 옷, 새의 날개깃처럼 퍼진 옷자락, 왼손 손가락을 굽힌 표현 등에서 삼국시대 불상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보살상을 중심에 두고 양 옆에 나한상을 배치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보이는 수법으로 불상의 양식 가운에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wangpd@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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