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크리스탈 팰리스와 토트넘의 경기가 끝난지 한참 후에도 주차장 반대편까지 나와 사진 촬영을 요청하는 한국팬들에 응하고 있는 이청용. 사진의 뒤편에 보이는 방향에 주차장이 있다.


[런던=스포츠서울 이성모 통신원] "이청용 선수 지금 주차장이 저 반대편에 있는데 여기까지 나와서 팬들한테 인사하고 있는 거에요. 보통 경기 있을 때마다 거의 한 시간씩 저래요. 오늘 아마 집에 못 갈거에요."


이청용과 손흥민의 맞대결 성사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크리스탈 팰리스 대 토트넘의 경기. 양팀에 한국 선수들이 뛰고 있는 두 팀의 맞대결답게 경기장 현장에는 족히 100여 명은 될 것 같은 한국인 팬들이 찾아왔다. 경기가 시작됐고, 손흥민은 선발 출전해서 풀타임을 소화했지만 이청용은 결국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통상, 경기가 끝난 후에 양팀의 선수단과 현장에 취재를 온 취재진은 믹스트존(Mixed-Zone)이라고 불리는 공간에서 만나 짧은 인터뷰를 가진 후에 그날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크리스탈 팰리스의 경우에는 특히 믹스트존 바로 옆에 선수들이 경기장을 나서는 문이 있고 그 앞에는 양팀 선수들을 직접 보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는 팬들이 있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한국의 팬들도 다수 그곳에서 이청용과 손흥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경기장 밖에서 팬들과 만나고 있는 이청용. 팬들이 구입한 스카프 위에 직접 사인을 해주기도 했다.


이날 경기가 크리스탈 팰리스의 홈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탈 팰리스 선수들은 믹스트존으로 나오지 않고 또 다른 문을 통해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주장인 예디낙만 잠시 나와 현지기자들과 짧은 인터뷰를 갖고 다시 경기장 내부로 돌아갔다. 그것은 분명히 조금은 비정상적인 모습이었지만 최근에 부진한 팀의 성적과 이날 경기의 패배의 영향일 것으로 추정된다.


크리스탈 팰리스의 선수단이 아무도 믹스트존으로 나와서 그 옆의 문을 통해 경기장을 빠져나가지 않았으므로, 현지에 모여있던 한국의 취재진은 이청용 역시 선수단과 함께 다른 문을 통해 경기장을 이미 나간 것이 아닐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느새 두 선수를 기다린지 한 시간이 다 되고 있었고 토트넘의 손흥민 역시 아직 믹스트존으로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두 선수가 함께 다른 문으로 나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 무렵, 두 선수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믹스트존으로 나왔다.


두 선수와 모두 인사를 나눈 한국의 취재진은 곧 손흥민과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청용 역시 웃는 얼굴로 취재진과 인사를 나눴으나 이날 경기에 나서지 못한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결국 이청용은 취재진과 다음을 기약하고 그렇게 믹스트존 바로 옆에 있는 문을 나가서 팬들을 만났다. 한국 취재진이 손흥민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사이 문 밖에서는 이청용을 외치는 팬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손흥민과의 인터뷰가 끝난 후, 취재진은 팬들이 기다리는 문 밖으로 나가는 손흥민과 함께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팬들이 곧 그의 이름을 외치며 사인을 요청했고 취재진은 기꺼이 그들에게 가서 사인을 해주는 손흥민의 모습을 지켜보고 또 사진을 찍으면서 다시 한번 그에 대한 한국팬들의 높은 관심을 확인했다.


사진=한국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는 손흥민. 그는 늘 경기가 끝난 후에 팬들에게 다가가 그들과 만나고 그들에게 사인을 해준다.


그렇게 경기 후 인터뷰까지 모든 일정이 끝나고 경기장을 빠져나오려던 통신원은 특이한 장면을 목격했다. 한참 전에 이미 '그 문'을 나갔던 이청용이 아직도 한국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또 함께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그는 주차장과는 정반대방향에서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었다. 옆에 있던 스포츠동아의 허유미 통신원이 말했다. 그녀는 현재 활동중인 한국의 4개 매체 통신원 중 가장 오래 활동했고, 가장 많은 현장을 다닌 통신원이다.


"이청용 선수 지금 주차장이 저 반대편에 있는데 여기까지 나와서 팬들한테 인사하고 있는 거에요. 보통 경기 있을 때마다 거의 한 시간씩 저래요. 오늘 아마 집에 못 갈거에요."


이날 경기장을 찾아 관중석에서 양팀의 경기를 지켜본 축구팬 권도연 씨는 경기가 끝난 후에 목격한 이청용의 모습을 들려줬다.


사진=경기가 끝난 후 마무리 운동을 하고 있는 양팀 선수들


"경기가 끝난 후에 관중석에 남아서 보니까 경기에 나서지 못한 선수들이 마무리 운동을 하더라구요. 그 중에 이청용 선수도 있었는데 마음은 무거우셨을텐데도 공을 몰고 경기장을 3, 4회 정도 가로지르셨어요.


축구선수에게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게 참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청용 화이팅'이라고 외치니까 저를 보고 환하게 웃으면서 박수를 쳐주시는 모습에 괜히 제가 미안해지더라구요. 경기가 끝난 후에 한국 축구팬들과 만나고 있는 이청용 선수의 모습을 지켜봤는데 안전요원이 '한국의 히어로'라고 농담을 치니 웃으시면서 경기장을 나가시더라구요."


본인이 그날 경기에 나오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크리스탈 팰리스 선수들과는 달리 팬들이 있는 문 앞으로 나가 본인을 기다리는 팬들을 위해 주차장 정반대방향까지 가서 그들과 만나는 이청용의 모습과 허유미 통신원이 들려준 그 한마디는 오히려 모든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후에 더 강하게 다가왔다.


현장에 취재를 나갔던 통신원이 인터뷰가 끝난 시점에 이미 '현장'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돌아오고 있던 중에 이청용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팬들을 위해 기꺼이 자기 시간을 내서 그들을 만난 것이다. 그날 그는 경기장 안에서 뛰지 못했지만 프로축구선수인 그에게 있어서는 팬들과의 만남도 '현장'이었던 셈이다.


그 순간, 그는 그 어떤 선수보다도 팬들을 위하는 진정한 '프로'다웠다. 왜 많은 축구팬들과 축구계 관계자들이 이청용을 아끼고 또 좋아하는지가 분명히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글=이성모 스포츠서울 영국 통신원

사진=이성모, 백현수, 백정열, 고길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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