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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 용인시축구센터 총감독이 동계전지훈련을 진행하던 통영에서 스포츠서울과 인터뷰를 하기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공 | 사진작가 이기호

[통영=스포츠서울 위원석 체육1부장]15년만의 한파가 서울을 강타했다는 지난 23일 아침 일찍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통영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나마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간다고 생각하니 몸에 온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중부내륙 지방을 지날 때 많은 눈보라가 휘날렸지만 버스가 통영에 도착하니 비교적 온화한 날씨가 서울에서 내려온 객을 반긴다. 통영은 오래 전부터 스포츠팀의 동계훈련지로 각광받고 있다.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하다. 통영시 관계자에 따르면 오는 3월까지 전국 130여개팀의 8100여명의 각종 선수단이 전훈을 위해 통영을 찾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가운데 용인시축구센터 소속 중학교, 고등학교 팀도 포함돼 있다.

김호(72)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지난해 6월부터 용인시축구센터 총감독을 맡고 있다. 통영이 고향인 김 감독은 부임 이후 첫 동계훈련을 자신의 잔뼈가 굵은 이곳에서 진두지휘했다. 1994 미국월드컵에서 스페인 독일 등의 세계강호들을 상대로 한국축구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줬고, 수원 삼성을 지휘하면서 K리그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전술을 구사하는 팀을 완성했던 ‘한국축구의 대가’가 과연 무슨 이유로 말년에 ‘코흘리개’들을 상대로 현장에 복귀했는지 궁금했다. 한파속에 통영으로 내려갔던 이유다.

김 감독은 지난 3주 동안 통영에서 진행됐던 동계훈련을 24일 마무리하고 다시 용인으로 올라왔다. 이번 전훈에는 용인시축구센터에 소속된 중학교 2개팀(원삼중, 백암중)과 고교 1개팀(신갈고)에 소속된 150여명의 선수들이 참여했다. 여기에 3개 학교의 감독 3명과 골키퍼 코치 2명, 트레이너 3명, 팀닥터 3명이 포함됐으니 엄청난 대부대다. 김 감독이 직접 동계전훈을 지휘한 것은 2009년 프로축구 대전 시티즌 사령탑에서 물러난 뒤 거의 7년여만이다. 노장은 여전히 열정에 가득차 있었고, 한국축구의 미래에 대해서 무한책임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얼굴에는 검버섯과 백반이 많이 올라있어 흐르는 세월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그가 그 동안 한국축구에 기여한 것을 생각한다면 이제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도 될 법한데, 노장은 두터운 겨울점퍼에 털모자를 눌러쓴 채 아이들을 직접 지도하고 있었다.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에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을 조심스럽게 던졌더니 “예전처럼 공을 잘 차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그런 것을 빼면 아무런 (체력적)문제가 없다”면서 웃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기자가 반갑다면서 선술집에서 이어진 저녁식사 자리에서는 소주잔을 피하지 않았다. 그의 애창곡인 ‘외길’도 흥얼거렸다. 이 노래의 가사는 ‘돌아가는 저 길에 외로운 저 소나무/수많은 세월속을 말없이 살아온 너/돌아가는 저 길에 네가 좋아/나 여기 찾아와 쉬노라/철새들 머무른 높다란 저 언덕위에/비바람 맞으며 홀로 서있어/내 인생 외로움을 말해주려마’로 진행된다. 예전에도 느꼈지만 이 노래 가사만큼 ‘축구인 김호’의 삶과 철학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없어 보인다. 축구계 일각에서는 그를 ‘고집불통 노인네’로 취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수원 삼성 시절처럼 중고교에 다니는 손자뻘 제자들과 숙식을 함께 하면서 꼼꼼이 그들의 일상을 챙기고, 새벽에는 일어나 유럽축구 방송을 보면서 최신 선진축구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기술자’라는 자존심 하나로 버티면서 경기인 출신이 마지막 순간까지 가져야 할 덕목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 김호라는 거목(巨木)과 노송(老松)이 없었더라면 우리 축구계가 부족한 그 무엇인가를 채우지 못한 허전함이 얼마나 컸을까를 생각해 본다. “칠십을 넘으면 이제 죽음을 생각할 때가 됐다”고 말하는 노장이 지금도 어린 친구들의 발놀림을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기술’을 부르짖는 진정성을 이제는 축구계도 알아줄 때가 되지 않았을까.

-(기자는 노장에게 부러 새로 찍은 명함을 달라고 떼를 썼다. 그냥 그의 이름이 새로 찍힌 명함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총감독 김호’라고 써있는 명함을 보니 너무 반갑다. 용인축구센터에 들어가게 된 사연부터 들어보자.

정찬민 용인시장이 “인재를 육성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정 시장은 당장의 성적보다는 우수한 인재를 기르는게 먼저라는 뜻을 강조했다. 이런 점이 나하고 마음이 맞았다. (시장의 의지가 그러니)지도자로서 여유를 갖고 팀을 운영할 수 있게 됐고 마음도 편해졌다. 나뿐만 아니라 축구센터에 소속된 모든 이들이 인재 육성이라는 시장의 뜻을 잘 따라야만 한다. 인재를 육성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성적은 따라 올 수밖에 없다. 팀을 단기간에 강하게 만들고 우승을 시키려면 체력훈련을 많이 시키면 된다. 하지만 팀을 중장기적으로 강하게 만들고 지속적으로 강한 팀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훈련을 많이 시켜야 한다. 결국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도 2,3학년들은 경기운영과 조직력 만드는 것도 강조하겠지만 1학년때는 기술훈련을 더 많이 시킬 생각이다.

-용인축구센터의 현황을 한번 소개해 달라.

중학교 두개팀과 고교 한개팀이 우리 센터 소속으로 있다. 학기중에는 각자 학교에서 정상적인 수업을 받고 오후에 1시간 30분 정도 모여서 팀훈련을 한다. 저녁에는 1시간 정도 개인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훈련을 한다. 이 정도 훈련 시간이면 충분하다. 어린 선수들이 커나가는 나이고 성장판이 열려있는 신체구조여서 훈련을 너무 많이 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원래 아침 6시30분 기상이었던 것을 내가 부임해서 1시간 늦췄다. 센터내에 천연잔디 2개면, 인조잔디 3개면, 돔구장 1개면 등을 갖추고 있다. 용인시에서 축구센터 연간 예산으로 21억원 정도를 지원한다. 중학교 선수는 월 115만원, 고등학교 선수는 월 130만원 정도를 교육비로 걷는다. 이 교육비 안에서 숙식을 포함해 모든 것을 해결한다. 센터 운영이 앞으로 더 정상화되면 학부모들이 내는 비용을 순차적으로 줄여나갈 계획이다(현재 일반 학원축구팀의 경우 피복비,경기출전비 등의 명목으로 학부모들 부담이 월 200만원 정도는 든다고 한다).

-용인축구센터 소속팀들의 지향점을 어떻게 설정했는가.

아직은 선수 파악을 완전하게 다 하지는 못했다. 또 우리 팀에 맞는 새로운 훈련 프로그램을 짜내는 과정속에 있다. 우리 팀의 목표는 특징있는 선수, 팬들이 매력을 느끼는 선수, 상품가치가 있는 선수를 만들어내는 것에 있다. 요즘 선수들은 보면 너무 평범하다. ‘나만의 특징과 장점이 이것이다’라고 확실히 내세울 만한 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 있는)이승우가 왜 달리 인기가 있겠는가. 그는 확실한 특징이 있다. 기술적으로 보면 우리 소속으로 예전에 좋은 선수들이 많이 배출되던 시절이 있었다(국가대표로 발탁됐고 지금은 유럽에서 활동중인 석현준 김진수 한국영 등이 용인축구센터 출신이었다). 예를 들어 요즘 주목받고 있는 석현준도 우리 팀 출신인데 그의 플레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당시 (용인에서)어떤 훈련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석현준도)개인기술이 있기는 한데 댜양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서 기능훈련이 더 필요하다. 그래야만 나중에 해외에 나가서도 더 꽃을 피울 수 있다. 우리 센터의 훈련 시설 가운데 모래가 깔린 구장이 따로 있다. 이 시설을 좀 보완해서 헤딩훈련,태클훈련, 발리슛 훈련, 오버헤드킥 훈련 등 특징있는 훈련을 밀도있게 진행할 예정이다.

-그래도 소속팀이 대회에 나가면 성적에 대한 부담이 없을 수 없는데.

중학교 팀은 아직 진학에 대한 부담이 덜하니 더욱 기술 위주로 가르칠 수 있다. 고교 팀은 대학 진학이라는 현실적 장벽이 있다. 일단 대회에 나가면 4강 진출을 목표로 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도 기술과 기능을 강조하는 방향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또 선수들이 평상시 훈련을 할 때 영어와 포르투갈어로 축구훈련 용어를 사용하도록 유도할 생각이다. 지금 외국책을 번역중인데 관련 용어들을 정리해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훈련중 그런 용어를 사용하게 할 것이다. 이런게 익숙해 지면 나중에 해외에 나가도 빨리 적응할 수 있다. 풋살을 통해서 개인기술을 많이 익히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풋살 기술은 플레이 하는 경기장이 넓어지면 문제가 발생한다. 기술적인 아이디어나 부분은 풋살에서 배우되 (큰 경기장에서)제대로 쓸 수 있는 실전 경험을 쌓아야 한다. 외국에서도 최고의 개인기를 가지고 있는 풋살 선수들이 왜 최고의 축구선수가 될 수 없는지에 대한 연구결과가 있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배운다. 조만간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테크니컬 코치 1명을 영입할 예정이다. 테크니컬 코치가 들어오면 선수들의 기능훈련이 많이 강화될 것이다.

-산하 팀 감독들이 별도로 있는 상황에서 총감독을 맡다보면 역할이 조금 다를 것같은데.

총감독을 하다보니 감독으로서 현장의 일뿐만 아니라 행정적인 일도 하게 되더라. 내가 하는 일의 3분의 1정도는 행정쪽의 일이다. 그런데 아쉬운게 있다. 팀의 내년도 예산을 짜려면 7월부터는 움직이고 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데 내년도 스케줄이 잘 안 나온다. 내년 일정이 제대로 서지 않으니 제대로 된 예산을 짤 수가 없게 된다. 대한축구협회나 산하 연맹들이 다음 연도의 일정에 대해서는 미리미리 공개하고 공지해야만 한다. 대회는 언제 열리고, 그래야 거기에 맞춰서 겨울에 치르는 (동계훈련시의)스토브리그 일정도 서로 맞춰보고 짤 수가 있다. 그런 점이 많이 아쉽다. 또 시의 규정을 잘 알아야 한다. 센터 운영방침에 따라서 예산을 쓸 수 있는 계정이 따로 있거나, 없거나 한다. 규정에 맞춰서 사전에 준비를 잘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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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오른쪽) 용인축구센터 총감독이 스포츠서울 위원석 체육1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공 | 사진작가 이기호

-용인축구센터에서 보석같은 인재들을 얼마나 만들어낼 것 같은가.

내가 프로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일년에 3~4명 정도의 인재가 배출되면 매우 훌륭한 것이다. 지도자 입장에서는 100% 이상 해내는 거다.

-통영에서의 동계훈련 성과는 좋았는가.

지금 우리 센터는 산하에 세개의 학원팀이 있는데 균질적인 훈련과 전술을 통해서 일체감을 만들려고 한다. 이번 전훈을 세팀이 처음으로 함께 온 것도 그런 이유였다. 전술적으로는 3-5-2를 기반으로 4-3-3을 병행할 예정이다. 중 1과 고 1 등 경기에 많이 못 나가는 학년대를 위해서는 테크닉 훈련 시간을 많이 배려하고 있다. 세 팀을 모두 데리고 동계훈련을 오다보니 서로 다른 운동장에서 훈련을 하고 연습경기를 해서 이곳저곳을 따라다니느라 엉덩이 붙일 시간 조차 없었다. 내년에는 한 곳에서 같이 훈련을 할 수 있게 제대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다만 숙소는 통영출신 사업가인 장복만 회장이 만든 동원리조트에서 함께 생활했다. 장 회장이 선수들이 편하게 잘 지낼 수 있도록 특별한 배려를 해줬다. 통영이 내 고향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최고의 대접을 받은 것은 처음인 것 같다(한 학부모는 중·고교팀이 동계훈련을 오면 보통 여관에서 지내는데,이번에는 호텔시설같은 리조트에서 생활하면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용인축구센터 소속팀은 결국 일반 학원팀인데, 최근에는 프로산하 유스팀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진학이나 대회 참여에도 아쉬운 점이 있을 것같은데.

먼저 요즘 대학에서 선수를 뽑는 선발 과정을 보면 공정하게 보이지 않는 측면이 있다. 전문인(지도자들)이 합당한 선수를 뽑아야 하는데 요즘은 그런 경우를 보기 힘들다. 감독들에게 권한을 주지 않고 교수들이 서류만 보고 뽑는 경우가 많다. 이런 행위는 전문인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어느 학교는 서류만 보고 골키퍼만 세명을 뽑았다고 하더라. 현장 지도자들이 권한이 없으니 (선수들을 보기 위해)움직이지를 않는다.

지금 고교리그도 승강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프로 산하 유스팀 위주로 행정이 진행되고 있는데 서로가 경쟁할 수 있는 토대도 만들어줘야 한다. 예를 들어서 고교리그에서도 승강제를 만들면 프로 산하팀들은 대부분 1부에 속하겠지만 이들도 못하면 하부리그로 떨어질 수 있고, 학원팀들도 잘하면 1부로 올라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상반기 경기를 치른 뒤 잘하는 선수들은 (다른 팀으로)전학갈 수 있는 길도 열어줘야 한다. 그래야 경쟁이 되고 질이 높아진다. 프로 산하팀들끼리만 있으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다. 승강제로 리그를 나누자는 것은 질을 높이자는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 같은 팀도 훈련 프로그램을 바꾸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우리도 경쟁력을 높여야 프로 산하팀을 상대로도 싸울 수 있을 것 아니냐. 제도가 경쟁을 통해서 질을 높이려는 시도를 막으면 안된다.

-용인시는 용인축구센터와 실업팀 용인시청을 운영하면서 연간 50억대 수준의 예산을 배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인프라를 종합적으로 활용한다면 프로화도 가능하다는 시각이 많던데.

그럴 가능성이 많이 있다고 본다. 우리가 잘 키운 선수들을 자체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그렇게 되면 센터를 지속적으로 자생력을 갖고 운영할 수 있는 토대와 능력이 마련될 수 있다. 나도 개인적으로는 프로로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시에서도 그런 방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지만 아직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다. (프로화를 위해)진취적으로 운영해야 되는 것은 맞다.

-‘축구인 김호’의 마지막 꿈은 무엇인가.

개인적인 욕심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내가 평생 사랑했던 축구가 세계무대에 한번 도전해 봤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2030년 월드컵에서 우승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하자. 그럴려면 우리 축구 전체의 기술적인 레벨이 올라서야 한다. 한국축구가 세계와 경쟁할 수 있도록 수준이 높아지는데, 우리 용인축구센터 출신 선수들이 기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세계와 경쟁하고, 월드컵 우승을 노리려면 한국이 상시적으로 10위권대의 능력을 유지해야 한다. 기술적으로 좋은 선수들이 많이 배출돼야 가능하다. 그런 일을 용인축구센터 출신 선수들을 키우면서 하고 싶은 것이다.

batma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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