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포토] 한국시리즈 3차전...오승환 \'옛 투수공화국 동료와 함께\'
[스포츠서울] 7일 목동구장에서 2014년 KS 3차전 삼성과 넥센의 경기가 열렸다. 오승환(왼쪽 두번째)이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왼쪽부터)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스포츠서울 배우근기자] 임창용은 한·미·일 야구를 모두 경험한 개척자였다. 불혹의 나이에도 전혀 흔들림 없이 마운드를 지킨 ‘애니콜 전사’였다. 그런 그가 해외원정 도박으로 삼성에서 방출되며 불명예 퇴진했다. 오승환은 한·일 야구를 평정한 뒤 내년부터 빅리그 데뷔를 준비하고 있었다. 돌부처라는 닉네임에 어울리는 돌직구의 사나이였다. 그랬던 그도 불법도박에 손 대며 야구인생의 기로에 섰다. 이들 두 명은 모두 도박관련 결백을 주장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도박 액수의 차이만 있을 뿐 검찰에 소환되어 혐의 사실을 인정했다. 국내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제구력의 마술사 윤성환과 홀드왕 안지만도 수사선상에 올라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들은 모두 야구의 정점에 오른 최고의 선수들이고 남 부러울게 없는 초고액 연봉자들이다. 이들은 대체 무엇이 아쉽다고 도박이라는 블랙홀에 빠지게 된 걸까.

정신의학 전문가에게 그 이유를 확인해 봤다. 서울대병원 정신의학과 임상강사인 박종석 전문의는 칼날같은 승부의 세계에 사는 선수들이 도박에 빠지는 이유로 ‘스트레스’와 ‘예민함’을 들었다. 박 전문의는 “스포츠 선수들의 경우 많은 체력과 집중력이 요구되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항상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승부의 세계에 살고 있고 공 하나의 실수와 단 몇 초간의 집중력 부재로 경기 승패가 갈리고 우승을 놓친다. 이러한 경우의 스트레스와 예민함은 일반인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경우가 많다. 반대로 극적으로 승리했을 때 방출되는 도파민과 엔도르핀으로 인한 쾌감은 실로 엄청나다”며 “그런 승부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선수들이 비시즌 기간에는 이런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없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의욕이 떨어지거나 우울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도박은 승부의 측면에서 비슷하고 큰 돈도 걸려 있어 긴장감도 조성된다. 그래서 선수들이 도박에 자연스럽게 빠지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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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정신의학과 임상강사 박종석 전문의.

그런데 금전적으로 부족하지 않은 일류 선수들이 도박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남부럽지 않은 선수들이 말이다. 박종석 정신과 전문의는 억압된 스트레스를 푸는게 가장 큰 이유라고 했다. “스트레스 해소의 목적이 가장 크다. 일반인들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다양한 방식을 선택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그러나 구단의 엄격한 관리를 받고 대중에게 이름이 널리 알려진 스포츠 선수들은 현실적으로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부족한 실정이다. 설령 비시즌 기간이라고 할지라도 많은 양의 음주나 폭식 등은 훈련 스케줄에 안 좋은 영향을 주게 된다. 사생활이 노출되기에 연애도 일반인에 비해 하기 어렵다”며 “이런 특수한 환경과 압박감은 사람을 더 예민하고 날카롭게 만든다. 그래서 ‘비밀스럽게 안전이 보장된 상태에서 도박을 할 수 있다’라는 유혹은 선수들이 뿌리치기 힘들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엘리트 선수들이 도박에 빠져드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긴장감이 극도에 달하는 상황을 무수히 견뎌내며 다져진 경험이 역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박 전문의는 “스타 플레이어들은 경기에서 항상 승리해왔던 경험이 많다.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나 믿음이 일반인에 비해 월등하다. 그래서 ‘나는 감정을 조절할 수 있겠지. 중독 되기 전에 나는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할 수 있을거야’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또 일부이긴 하지만 수 십 억대의 자산을 갖고 있는 선수의 경우, 언제라도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자만심도 도박판에 뛰어들게 하는 요인이 된다”라고 분석했다.

도덕적 해이와 신분노출에 대한 위험성에 대해서는 “해당 선수뿐만 아니라 다른 스포츠 스타나 회사CEO 들이 많이 연루되어 있는데, 이때는 ‘남들도 다하는데 괜찮겠지’ 또는 ‘이렇게 유명 인사들이 많으니 혹시 걸려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도덕적 해이가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해외불법 도박의 위험성에 대한 걱정은 ‘신분이 노출되지 않게 해주겠다’는 브로커들의 유혹에 넘어간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설명했다. 임창용 오승환이 마운드에서는 펄펄 나는 선수들이지만, 자만심과 허세 그리고 호기심으로 시작한 도박이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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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환(왼쪽)과 임창용. 두 선수는 최근 수년간 시즌 후 괌에서 동반훈련을 해 왔다.

박종석 전문의는 도박중독과 이에 대한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선수 뿐 아니라 일반인을 포함해 그러한 환경과 떨어지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알코올 중독처럼 도박에도 금단 증상과 금단 기간이 존재한다. 본인에게 도박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환경과 요인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중요하다. 도박으로 알게 된 지인들과 연락을 단절해야 한다”며 “도박이 주는 자극적이고 신속한 쾌감 대신 안정적이고 점진적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일이나 여가 활동, 봉사 등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또한 “본인 스스로의 노력으로 도박에 대한 생각을 떨치기 힘들 땐 언제라도 전문가와 상의하고 약물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투수는 마운드에서 자신이 가진 온갖 힘을 짜낸다. 없는 힘까지 짜내면서 승부를 건다. 무대에서 내려오면 그 에너지가 빠져나간 곳을 채워야 하는데, 마땅한게 없다.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도 일반인의 상상 이상이다. 단란한 가정을 통해 그 공백과 스트레스를 메우는 선수가 있고 봉사활동과 같은 선행으로 빈 곳을 채우는 선수도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러한 올바른 방식이 아닌 문란한 생활과 술, 마약으로 채우는 이가 있다.

박종석 전문의 설명처럼 ‘남들도 하는데 나도 괜찮겠지’라던가 ‘이 정도 돈은 날려도 다시 벌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도박’의 문턱을 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프로의 세계에서 10년 넘게 피 말리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모 선수는 이번 오승환, 임창용 사태를 보면서 “불법 원정 도박에 손대는 그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다”라고 아쉬워했다.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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