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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진실은 땅에 파묻은 씨앗과도 같다. 제 아무리 깊이 파묻더라도 언젠가는 싹을 틔워 비로소 그 실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더 깊이 파서 더 꽁꽁 묻는 씨앗은 더욱 탐스럽고 화려한 꽃으로 피어날 게다. 엄혹한 환경을 뚫고 싹을 틔워야 하는 씨앗은 보통의 그것보다 훨씬 강한 생명력을 뿜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체육계의 최대 현안인 체육단체 통합과 관련해서도 숨어있던 ‘진실의 씨앗’이 움을 틔워 파장이 심상치 않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일 통합체육회 정관 의결사항을 서둘러 발표했다. 많은 의결 사항 가운데 딱 두줄로 언급된 상임감사제 도입은 통합체육회의 전체적인 틀을 뒤바꿀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지만 문체부는 자세한 설명 없이 “제 6차 통합준비위원회에서 의결된 사항”이라며 이를 발표해 버렸다. 통합체육회가 연 4000억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공공기관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상임감사제를 도입하기로 했다는 게 문체부가 내세우는 논리다.

그 동안 정부 주도로 진행되는 체육단체 통합과 관련해 우려섞인 시선이 많았다. 우려의 시선은 두 가지로 요약됐다.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체육의 새로운 관치(官治)가 첫번째요,자율성을 박탈한 관치가 으레 수반하는 정부의 ‘낙하산 인사’가 두번째 우려의 핵심 포인트였다. 문체부가 지난 2일 발표한 통합체육회 정관 의결 사항에 포함된 상임감사제의 도입은 체육계의 의심섞인 시선을 확인시켜주는 도화선이 됐다.

통합체육회 정관 전문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제안된 상임감사제는 사회적으로 크게 지탄받는 공기업 감사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답답했다. 별로 하는 일없이 많은 월급만 타먹어 ‘꽃 보직’으로 불리는 공기업 감사와 달리 통합체육회 상임감사는 회장에 필적하는 역할과 파워를 지녔다는 게 눈여겨볼 대목이다. 문체부 장관이 임명하는 이 자리는 사무처내의 유일한 상근임원으로 특별한 경우에는 회장의 직무대행권까지 갖는 막강한 힘을 부여했다. 경기단체 임원 중임 제한 예외규정을 결정하는 임원심의위원회 위원장도 상임감사의 몫이다. 무소불위의 이러한 권력은 이사회의 업무집행을 감시하는 감사라는 자리의 통념을 완전히 뒤엎을 만했다.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자 체육계는 “상임감사를 통한 정부의 체육회 통제의 의도가 그대로 드러났다”며 우려의 시선을 감추지 못했다.

더 큰 일도 터졌다. 문체부가 상임감사와 관련해 진실을 왜곡했다는 사실이다. 상임감사제 도입이 통합준비위원회에서 의결되지도 않았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취재결과 밝혀졌다. 문체부는 지난 9일 통준위 제 7차 회의에서 “상임감사 도입이 지난 2일 열린 제 6차 통준위에서 의결된 사항”이라고 밀어붙이다가 양식있는 한 명의 통준위원의 문제제기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갑론을박에 이어 전차 회의록까지 꼼꼼히 뒤진 끝에 밝혀낸 사실이다. 결국 문체부는 허위 보도자료를 배포한 꼴이 됐다. 문체부가 진실을 왜곡하며 통과되지도 않은 통합체육회 정관의 핵심 사항을 의결됐다고 발표한 것은 결코 그냥 넘겨버릴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한 명확한 책임소재를 가려내지 못하면 체육단체 통합의 방향성 훼손은 물론 향후 통합과정에서 거친 파열음이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체육에 대한 관심이 크다. ‘비정상적 관행의 정상화’라는 박근혜 정부의 국가 어젠다에서 출발한 체육개혁은 체육단체 통합이라는 최종 귀착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한국 체육의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는 체육단체 통합에 대한 당위성은 더이상 재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체육단체 통합에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바로 올림픽헌장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체육의 자율성이다. 자율성이 훼손된 정부 주도의 체육단체 통합은 ‘예고된 이혼’을 배태한 ‘불편한 동거’일 뿐이다.

최근 정부는 조급증 탓인지 체육단체 통합에서 평정심을 잃고 있는 느낌이다. 가장 중요한 통합체육회 정관 문제에서 상임감사제 도입을 놓고 진실을 왜곡했고,이를 떼쓰듯 밀어붙이기까지 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0일 청와대 국무회의에 앞서 20대 총선과 관련해 “국민을 위해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렇다면 진실하지 않는 정부에 대해 국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은 국민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체육1팀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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