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포토] 이현승-양의지 \'14년만에 우승, 우리가 해냈다\'
31일 잠실구장에서 삼성과 두산의 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이 열렸다. 이현승이 경기 후 양의지와 환호하고 있다. 잠실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잠실=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승부수를 던져야지. 이대로는 안돼. 변해야 살지.”

2013년 시즌 후 두산이 대대적인 물갈이를 단행했다. ‘허슬-두’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종욱과 손시헌이 프리에이전트(FA) 선언 후 팀을 떠났다. 그해 포스트시즌에서 맹활약 한 최준석도 FA 권리를 행사하며 롯데로 이적했다. 투수 최선참 김선우는 구단에 방출을 요구, 옆집(LG)으로 이적했고, 이 때 임재철도 함께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주축 베테랑들이 한꺼번에 팀을 빠져나간 두산은 팀을 준우승으로 이끈 김진욱 감독마저 경질했다. 터줏대감처럼 느껴지던 코칭스태프도 대거 물갈이 됐다. 일대 변혁인 셈. 두산색이 사라졌다는 비난도 있었지만 당시 김태룡 단은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이대로는 더 발전 할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젊은 선수들 중심으로 팀을 바꿔야 한다. 우리팀은, 우승이 가능한 팀이 아니라 우승을 해야하는 팀”이라고 강조했다.

송일수 감독이 한 시즌 지휘봉을 잡았고, 정수빈을 필두로한 젊은 선수들이 중용됐다.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지만, 두산은 ‘화수분’을 버리고 ‘허슬-두’를 지키면서 젊은 팀으로 탈바꿈했다. 송 감독의 투수기용이나 작전 등을 두고 말이 많았지만, 구단은 시즌 끝까지 그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잔뜩 몸을 웅크린 듯 했는데, 시즌 후 수차례 감독 물망에 올랐던 김태형 SK 배터리코치를 신임 사령탑으로 영입하며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러면서 ‘두목곰’으로 불렸던 김동주마저 방출하며 구단의 확고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허슬-두’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홍성흔이라는 상징과도 같은 인물을 다시 데려온 이유도 이때 드러났다. 두산은 과거와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팀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SS포토] 두산 우승, MVP는 정수빈
두산이 3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승리해 14년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MVP를 차지한 정수빈이 환호하고 있다. 잠실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프런트의 방향성은 지난 10일 잠실구장에서 시작한 두산의 올해 포스트시즌 라인업에서부터 드러났다. 1990년생 동갑내기인 정수빈 허경민(이상 25)을 필두로 민병헌(28) 김현수(27) 양의지(28) 등 주축 대부분이 20대로 구성됐다. 오재원과 김재호(이상 30)가 올해 서른이어서 평균나이 28세에 불과한 패기의 팀이었다. 포스트시즌을 지켜보던 한 야구인은 “두산 선수들은 이제 전성기로 접어드는 시점이다. 젊기 때문에 무엇보다 체력에서 강점을 갖고 있을 것이다. 우승에 대한 열망이 없지는 않겠지만, 패하면 끝이라는 두려움도 없을 것이다. 젊다는 것은, 그만큼 무서운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국시리즈(KS) 5차전을 앞둔 지난 31일 잠실구장에서 만난 삼성 선수들이 “두산 선수들은 왜 지치지도 않는가”라며 감탄했던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대로였다. 시리즈전적 3승1패로 우승에 한 걸음 다가 선 젊은 선수들은 5차전을 앞두고도 긴장이라는 것을 몰랐다. 정수빈은 “편하게, 편하게 하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며 우승에 대한 부담감을 지우기 위해 애를 썼다. 허경민은 “우승 후 팀원이 다 같이 하는 회식을 하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한다. 꼭 느껴보고 싶다. 우승이 확정되면, 한 시즌 동안 나를 제일 괴롭혔던 선배에게 샴페인을 뿌릴 것이다. 나는 좋은 후배가 아니다”며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우승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현실로 다가왔지만, 실감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 담담함이, 한치 앞을 모르는 승부 앞에서도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준 것이다. 손시헌을 대신한 김재호는 실책을 더러 했지만 안정된 수비로 팀을 이끌었고, 이종욱의 대체자 정수빈은 7회말 승부에 쐐기를 박는 3점 홈런으로 세대교체에 방점을 찍었다. 김동주가 떠난 자리를 꿰찬 허경민은 역대 단일 포스트시즌 최다안타 신기록을 작성하는 등 더할 나위 없는 활약을 펼쳤다.

[SS포토] 두산, 14년만에 우승트로피
31일 잠실구장에서 삼성과 두산의 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이 열렸다. 두산 선수들이 우승을 결정지은 후 환호하고 있다. 잠실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팀 내 유일한 우승(2001년)멤버인 홍성흔은 “어릴 때에는 우승이 정말 쉬운줄 알았다. 별 감흥도 없었다. 그리곤 13년 동안 무관이다. 이번에 우승하면 펑펑 울 것 같다. 이런 팀에서 벤치 신세이지만 함께 있다는 게 행복하다. 경기에 나가지 못하더라도, 우리 후배들이 아픈 몸을 이끌고 투지를 불태우는 모습을 보며 감동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KS 5차전에서 압승을 거두고 팀의 통산 네 번째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띠를 두 바퀴나 돌려야 하는 ‘아들뻘’ 후배들과 얼싸 안고 기쁨을 나눴다. 그러나 눈물 대신 커다란 환호로 기쁨을 대신했다. 대신 더그아웃에서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프런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팀의 명운을 걸고 내린 결단은 불과 2년 만에 결실을 봤다. 역경을 딛고 우승을 차지했으니, 선수단도 한 단계 성장할 것이 자명하다. 그러나 한 번 KS 우승을 차지했다고 황금기를 말하기에는 이르다. ‘미라클 두산’이라는 애칭처럼 기적처럼 찾아온 우승은, 두산의 재도약을 알리는 시발점이어야 한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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