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이평엽기자] 야구는 ‘투수놀음’이라고 하죠. 승부를 좌우할 수 있는 강력한 투수진을 갖춘 팀은 정규시즌은 물론 단기전인 포스트시즌에도 그 덕을 톡톡히 보기 마련입니다. 34년째를 맞는 우리 프로야구 역사를 살펴봐도 강력한 투수진을 앞세워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낸 팀들이 많이 있습니다.

단지 한 팀의 제1선발이 아닌, 리그에서 손꼽히는 강력한 선발투수를 ‘절대 에이스’라고 칭해봤습니다. 박철순(OB), 최동원(롯데), 선동열(해태), 정민태(현대)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절대 에이스’는 개인적인 명예는 물론 팀에 한국시리즈 우승의 영광을 안겼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영예를 누린 것은 아닙니다. 그 반대의 역사도 있습니다. 철옹성처럼 여겨지던 ‘절대 에이스’를 격파하고 승리의 기쁨을 맛본 경우도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을야구 성공법칙, 절대 에이스를 격파하라!’는 제목으로 올해 포스트시즌과 과거 가을야구의 명암을 살펴보겠습니다.

●굴비야구① 2015년 한국시리즈는 ‘차우찬 시리즈’ vs. ‘니퍼트 시리즈’
[SS포토] 니퍼트 \'양의지, 오늘 좋아\'
올시즌 부상으로 부진했던 두산 니퍼트가 NC와의 플레이오프에서 2승을 따내면서 ‘절대 에이스’의 위력을 뽐냈다.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도 니퍼트의 활약상에 따라 양팀의 명암이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잠실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삼성과 두산이 맞붙은 올해 한국시리즈는 ‘차우찬 시리즈’라는 말이 나오고 있더군요. 주력투수 3명이 낙오한 삼성 입장에서는 선발과 불펜을 오갈 수 있는 차우찬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클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차우찬은 1차전에서 마무리로 등판해 기대에 부응하면서 일단 기분좋은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한국시리즈를 ‘니퍼트 시리즈’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부상 때문에 시즌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포스트시즌에 돌입하면서 ‘절대 에이스’의 위상을 되찾았기 때문입니다. NC와의 플레이오프에서 5차전 마무리는 장원준이 했지만 1, 4차전에서 완벽한 구위를 뽐낸 니퍼트가 있었기에 두산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2차전과 5차전(또는 6차전)에 선발등판할 것으로 보이는데 니퍼트의 활약상에 따라 양팀의 운명이 갈릴 공산이 높습니다. 1차전에서 아쉽게 역전패한 두산은 2차전 선발 니퍼트의 호투가 절실해졌고, 삼성은 승부의 키를 쥐고 있는 두산의 ‘절대 에이스’ 니퍼트를 무너뜨려야 한국시리즈 우승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겠지요.

●굴비야구② NC의 ‘절대 에이스’ 해커 무너뜨린 두산, KS 1차전에서 피가로 무너뜨렸지만...
[SS포토]PO4차전 해커, 니퍼트와 설욕전에 또 실패하네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에 난타를 당하며 무너진 NC의 ‘절대 에이스’ 에릭 해커. 잠실 | 최재원선임기자 shine@sportsseoul.com

[SS포토]KS1차전 피가로, 2회에 위기가 오네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1~2회 5실점하면서 무너진 삼성의 에이스 피가로. 대구 | 최재원선임기자 shine@sportsseoul.com

지난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은 NC의 ‘절대 에이스’ 에릭 해커를 무너뜨리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습니다. 올시즌 다승 1위(19승5패), 방어율 2위(3.13)를 기록한 해커는 단지 팀의 제1선발이 아닌 올시즌 KBO리그를 지배한 ‘절대 에이스’라고 할 수 있는데 PO 1, 4차전에서 연달아 그를 격파했으니 큰 수확을 거둔 셈이죠.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삼성의 에이스 피가로를 상대한 두산은 ‘절대 에이스를 격파하라’는 공식은 잘 풀었습니다. 정규시즌 13승7패, 방어율 3.38을 기록한 피가로를 초반부터 공략하면서 기세를 올렸습니다. 피가로는 3.1이닝 6실점하면서 에이스의 체면을 구겼습니다. 두산이 불펜 투수들의 난조와 수비진의 실책으로 다 잡은 듯 했던 승리를 날려버렸지만 시리즈 승부는 이제 시작됐을 뿐입니다. 피가로와 앞으로 한차례나 두차례 더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에이스 격파 특명’은 계속 유효합니다.

●굴비야구③ 메이저리그 ‘절대 에이스’ 3총사, 클레이튼 커쇼, 잭 그레인키, 제이크 아리에타의 몰락
[SS포토] 류현진 \'커쇼가 얼른 완쾌해야 하는데\'
가을만 되면 평범한 투수로 전락하는 LA다저스의 ‘절대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왼쪽). 로스앤젤레스(미 캘리포니아주)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올해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에서 에이스의 수난이 눈에 띕니다. 특히 내셔널리그를 살펴보면 사이영상 후보로 꼽히는 3명의 ‘절대 에이스’가 모두 몰락했습니다. 뉴욕 메츠는 LA다저스와의 NL디비전시리즈 1, 5차전에서 클레이튼 커쇼와 잭 그레인키를 공략하면서 승리를 따냈습니다. 커쇼와 그레인키가 나란히 1승1패를 기록했고, 투구 내용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위상을 생각할 때 ‘반타작’은 결코 만족스런 결과라고 할 수 없습니다. 기세가 오른 메츠는 ‘가을사나이’ 대니얼 머피를 앞세워 NL챔피언십시리즈에서 시카고 컵스의 ‘절대 에이스’ 제이크 아리에타를 무너뜨리고 월드시리즈행 티켓을 따냈습니다.

●굴비야구④ 무너진 23승 에이스 김시진의 슬픈 가을 추억
해태 우승
87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삼성 김시진은 해태 한대화와 김성한에게 홈런포를 허용하면서 무너졌다. 당시 스포츠서울 1면.

넥센과 롯데 지휘봉을 잡았던 김시진 감독은 현역시절 ‘비운의 가을사나이’로 유명했습니다. 한 시대를 호령한 최고의 투수였지만 유독 가을에 크나큰 시련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김시진의 한국시리즈 통산 최다패(7패) 기록은 27년 동안 깨지지 않은 기록입니다. 단독 2위가 배영수(한화·6패)이고, 공동 3위(한희민, 김용수, 송진우)가 4패이기 때문에 올해로 28년을 넘기게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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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최다패(7패) 기록을 갖고 있는 가을야구 ‘비운의 에이스’ 김시진. (스포츠서울 DB)

한국시리즈에서 84년 2패, 86년 3패를 기록했던 김시진은 87년 23승6패를 기록하면서 두번째 다승왕을 따내고 한국시리즈를 맞았습니다. 가을의 슬픈 추억을 떨쳐낼 기회였죠. 그러나 해태와의 1차전에서 한대화와 김성한에게 홈런을 허용하면서 패전투수가 됐고, 4차전에서도 김준환에서 투런포를 맞는 등 4회를 버티지 못하고 강판당했습니다. 또 다시 2패를 추가하면서 불명예 기록을 세우게 된 것이죠. 투타에서 막강한 전력을 자랑했던 해태의 전성기 때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활약했다는 것이 운이 없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굴비야구⑤ 호랑이를 피했더니 거인이 나타났다! ‘거인군단’에 무너진 ‘전천후 독수리’ 송진우
송진우
92년 한국시리즈에서 빙그레 송진우는 1, 2차전에 선발과 구원으로 등판해 2패를 안았다. 3차전에서도 패전 위기에 몰렸다가 타선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승리를 따냈지만 빙그레는 에이스 혹사 후유증으로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또 다시 고배를 들었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빙그레는 막강 전력을 과시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3번이나 해태의 벽에 막혀 고배를 들었습니다. 빙그레는 92년 타선에서는 장종훈 이정훈 이강돈, 마운드에서는 송진우 정민철 장정순 이상군 한용덕 등을 앞세워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하면서 롯데와 한국시리즈에서 만났죠. ‘비운의 독수리’ 송진우에게도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다승왕(19승)과 최고구원투수상(8구원승 17세이브)을 동시에 차지하면서 전천후 에이스로 활약한 해였기 때문입니다. 1차전 선발은 당연히 송진우였고, 대부분의 전문가들도 빙그레의 우세를 예상했죠.

그러나 삼성, 해태를 연파하고 한국시리즈까지 오른 ‘거인군단’의 기세는 무서웠습니다. 1차전에서 선발 송진우를 격파하고 승리한 롯데는 2차전 9회 구원투수로 등판한 송진우를 또 다시 4연속 안타로 두들기면서 2연승을 달렸습니다. 송진우는 3차전에서도 5회 마운드에 올랐고, 3-3 동점이던 8회 전준호에게 적시타를 맞으면서 3패를 혼자 뒤집어쓸 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9회 빙그레가 역전에 성공해 송진우가 승리투수는 됐지만 에이스를 1~3차전에 모두 내보내면서 혹사시킨 후유증은 바로 나타났습니다. 롯데는 4, 5차전을 연거푸 승리하면서 4승1패로 두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안게됩니다.

●굴비야구⑥ ‘절대 에이스 맞대결’ 38세 노장 김용수(LG) vs. 정민태(현대)
김용수
LG 김용수는 98년 한국시리즈 1, 4차전에서 현대 정민태와 ‘절대 에이스’ 맞대결을 펼쳤지만 두번 모두 패배의 쓴맛을 맛봤다. (스포츠서울 DB)

98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절대 에이스’의 맞대결이 펼쳐졌습니다. LG는 마무리에서 선발로 전환한 38세 노장 김용수가 버티고 있었고, 현대에는 차세대 에이스 정민태가 있었습니다. 18승을 거둔 김용수는 정민태를 1승 차로 제치고 정규시즌 다승왕에 등극했죠.

김용수와 정민태는 예상대로 1차전에서 선발 맞대결을 펼쳤습니다. 4회까지는 0-0 팽팽한 균형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5회 균형이 깨집니다. 현대는 위태위태하게 무실점으로 버티던 김용수를 집중공략하면서 대거 5점을 뽑아내 승기를 잡았습니다. 정민태는 8이닝을 2안타 무실점으로 막아내면서 기분 좋게 첫승을 챙깁니다. 또 다시 만난 4차전 결과도 비슷했습니다. 정민태가 8이닝 5안타 1실점으로 마운드를 지배한 반면, 김용수는 4.1이닝 7안타 4실점하면서 ‘절대 에이스’의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결국 현대는 4승2패로 첫 한국시리즈 왕좌에 오르면서 ‘현대 왕조’의 출발을 알렸습니다.

yuppi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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