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C_4606
이제 바다를 즐기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서핑인구가 늘어나면서 서핑 전용 해변도 등장했다.

DSC_4606
한국에도 서퍼 전용 해변이 생겼다. 강원도 양양 서피비치는 삶속 자유로움과 흥겨움을 추구하는 서퍼들의 취향을 충족시키는 곳이다.

[스포츠서울 이우석기자]바다를 즐기는 방법은 급격히 변했다. 예전 피서철 바다에는 커다란 튜브(실제 시커먼 자동차 튜브도 있었다)를 제외하고 그저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것 밖엔 없었다. 딱히 즐기는 방법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꽤 괜찮긴 하지만 물 빠진 밤 바다에 모닥불을 피우고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는 것 정도?과거 한국인이 바다에서 노는 방법이었다.풍경이 바뀌었다. 개인용 튜브도 진화하고 근해를 한바퀴 돌고 오는 동력보트와 수상바이크가 등장한 것은 90년대 들어서다. 그래봤자 죄수가 말에 끌려가듯 바나나보트에 매달려 한바퀴 돌고 오면 그걸로 끝이다.
P1740098
국내 대부분의 바다에서 심심찮게 서퍼를 발견할 수 있다. 양양 하조대는 서퍼들의 천국으로 등극할 태세다.
어느 순간 바다에 ‘멋진 놈’이 등장했다. 서퍼(Surfer)다. 할리우드 영화와 노래에서나 들어봤던 그 서퍼들이 한국의 해변을 점령했다. 무릎 아래까지 오는 서퍼팬츠를 차려입은 구릿빛 서퍼들이 형형색색 보드를 옆에 끼고 바다에 나타났다. 근사하다. 낮에는 파도를, 밤에는 파티를 즐기는 서퍼들만의 독특한 문화는 그들이 사랑하는 파도처럼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DSC_4754
서핑 전용 해변, 양양 서피비치.
급기야 서핑전용 해변까지 생겼다. 동해안 해뜨는 양양에 올해 처음 문을 연 서핑전용해변 ‘서피비치(Surfyy Beach)’. 휴가철을 앞두고 누구나 궁금해하는 그곳에 다녀왔다.
poster
영화 ‘폭풍 속으로’ 원제는 서핑용어인 Point Break.
◇폭풍 속으로 돌아가다

양양에 생긴 서피 비치를 돌아보기 전에 나는 먼저 영화 한편을 다시 봐야만 했다. 신작도 보지 않는 내가 다시 꺼낸 영화는 바로 ‘폭풍 속으로(Point break)’다.

좀 오래된 영화(1991년 12월 21일에 명보극장에서 개봉)라 찾기가 꽤 힘들었다. 우선 주요 영화사이트에서 취급하지 않는 영화다.

먼저 유튜브에서 간략한 줄거리라도 찾아보기로 작정한 나는 장시간에 걸쳐 김석훈과 송윤아가 나오는 SBS 드라마 ‘폭풍 속으로’를 다운받은 후 이를 지워야 했다. 또다시 할리우드 재난영화 ‘폭풍 속으로(Into the storm)’를 다운받았다가 다시 지우기를 반복한 후에야 겨우 원래 찾던 ‘폭풍 속으로(Point break)’의 주요 영상(흐릿하고 자막이 없는)을 볼 수 있었다. 굿다운로더 캠페인을 하기 전에 우선 인프라를 잘 조성해야 한다.

왜 ‘폭풍 속으로’가 직역(Into the storm)과는 달리 다소 의외인 원제(Point break)였는지는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poster
영화 ‘폭풍 속으로’에서 FBI수사관과 강도단 리더로 분한 키아누 리브스와 고 패트릭 스웨이지.

권선징악. 내게 주인공은 늘 ‘합법적 인물’이라 키아누 리브스가 연기한 자니 유타를 이 복잡한 영화의 주연으로 친다. FBI 수사관인 자니(Jonny)는 강도이면서 만능 스포츠인 보디(고 패트릭 스웨이지)의 팀에 잠입해서 그들과 함께 서핑과 스카이다이빙 등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긴다.

함께 생활해보니 사악하고 흉포한 은행강도단의 리더인 보디(Bohdi)는 의외로 멋진 스포츠 맨이다. 자니는 연방경찰인 자신의 역할을 잊고 그에게 빠져든다.

poster
서핑이 등장하는 영화 ‘폭풍 속으로’ 중에서.

하늘에서 함께 뛰어내리고 파도를 탄다. 기자도 남태평양 피지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한번 제대로 경험해본 적 있는데 누군가와 함께 4000m 상공에서 뛰고 나면 형제보다 가까워지게 마련이다.

권위주의와 황금만능이 만연한 사회에 반항하는 보디. 그는 레이건, 카터, 닉슨, 존슨 등 전직대통령 가면을 쓰고 은행을 터는 바람에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경찰관인 자니는 범죄단체의 보스인 보디의 행동을 서서히 이해하게 되지만, 끝내 동료들과 연락해 보디의 팀원을 하나 하나씩 체포한다. 호주 빅토리아의 벨스 비치까지 쫓아간 자니. 보디에게 수갑을 채우는 데 성공한다. 그 순간 보디는 자니에게 부탁을 한다.

‘50년 만의 폭풍’이 몰고 온 ‘일생의 파도(Once-in-a-lifetime wave)’를 타게 해 달라고. 그리고 또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하다 죽는 건 비극이 아니다(It‘s not a tragedy to die what I love).”

망설이던 자니는 보디의 수갑을 풀어주며 역시 멋진 말을 남긴다. “Vaya con dios(신이 함께 하길).” 그리고 죽음을 불사하고 집채만한 파도를 향해 나아가는 보디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아!

☞포인트 브레이크(Point Break)=서핑 용어. 부두, 둑, 해안가에서부터 이어진 수몰된 지점으로 파도가 굽이져 나타날 때, 해안가에 비스듬하게 도달하는 파도들을 일컫는 말. 서퍼들은 비스듬하게 해안가에 도달하는 파도에 올라, 한쪽 끝에서 반대편 끝으로 계속 움직이며 파도를 탈 수 있다.
DSC_4604
국내 유일 서퍼 전용 해변인 양양 서피비치는 서핑에 입문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국내 유일 서퍼들의 천국

시간과 공간을 휘리릭 뛰어넘어 2015년 여름 한국의 동해안으로 왔다. 양양 하조대 해수욕장에 위치한 서피비치. 이달 중순 ‘대한민국 최초의 서핑 전용 해수욕장’으로 탄생한 곳이다.

날씨는 그리 맑지 않았지만 더웠다. 하늘도 물도 파란색이 아니었지만 더웠다. 며칠 전부터 태풍 소식이 전해지던 터라 ‘일생의 파도’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DSC_4604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춘 서피비치.

기나긴 백사장엔 영화에서처럼 구릿빛 피부의 서퍼들이 해변을 배회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해변 한켠에 잔뜩 서있는 보드를 보며 이곳이 서핑 전용 해변임을 실감했다. 하지만 ‘보디’처럼 머리를 기른 히피는 없었고 타일러 엔디코트(‘폭풍 속으로’의 여주인공)같은 비키니 글래머 여인도 없었다.

시커먼 웨트수트를 차려입고 조심스러운 눈으로 서핑을 배우러 온 수강생 아니면 오렌지색 옷 차림의 교관들 뿐이다.

DSC_4604
양양 하조대는 오랜 시간 군사지역으로 있어 그만큼 보존 상태가 좋다.

심지어 폭풍전야라 그런지 파도도 없었다. 잔잔한 바다, 배를 타는 사람들은 좋아하겠지만 서퍼들은 이런 바다를 ‘호수’ 또는 ‘거울’이라고 부르며 경멸한다. 왜냐면 그들이 즐기는 파도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일생의 파도? 그런 건 별로 매력 없어요.” 선글라스가 멋진 이형주 교육팀장이 코웃음쳤다. 서핑 경력 10년이 넘는 프로서퍼인 그는 고층빌딩 만한 파도를 타기 위해 기다린다는 것은 ‘영화적 구성’일 뿐 실제 서퍼들에겐 그리 당기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거울처럼 모든 것을 반사해내는 그의 선글라스에는 실망한 내 모습이 비쳤다.

대신 국내에선 드물지만 배럴(또는 튜브)이라 불리는 파도, 원통처럼 휘감는 그런, 우리가 영화에서 많이 봤던 그 파도는 중급 이상 서퍼들이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서퍼의 성지’로 불리는 하와이 노스쇼어나 발리에서 그런 파도와 만날 수 있다고 했다.

DSC_4604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는 양양 하조대 서피비치.

원통 따위는 없지만 양양 하조대는 수심이 얕고 파도가 일정해 서핑을 배우기에 최적인 해변이다. 게다가 해수욕객과 서로 섞이지 않는 서핑 전용 해변이기 때문에 더 좋다. 서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암초나 해파리 따위가 아니라 해수욕장에 둥둥 튜브를 띄운 사람들이다. 파도를 타다 이들과 부딪히면 서로 낭패를 볼 수 있다.

DSC_4754
서피비치의 프로서퍼로부터 서핑을 배우고 있는 수강생들.

굉장히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누구나 2~3일 배우면 일어서는 것까지는 가능하다고 했다. 이때부터 여러 번 파도를 타보며 근사하게 중심을 잡는 것은 이후의 반복 수련을 통해 이룰 수 있다. 생각해보니 자전거도 그렇다. 안 넘어지고 달릴 줄 알게 되면 그 이후 앞바퀴를 들든 무시무시한 속도를 내든 연습을 통해 가능한 일이다. 자전거와 다른 점은? 도로야 늘 비슷한 상태지만 서핑은 매번 저마다 다른 파도를 순간적으로 읽어내야 한다. 그것이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육상에서 기초와 이론부터 배우고, 바다로 나가 강사와 함께 일어서는 법을 배운다. 이것이 익숙해지면 오픈서프 과정을 거쳐 혼자서도 파도를 탈 수 있다.

DSC_4754
보드에 올라타는 것부터 일어서는 것까지 모두 육상에서 연습한 후에 바다로 간다.
DSC_4754
페들링(노젓기)을 연습 중인 수강생들.
DSC_4754
보드에서 일어서기.
DSC_4754
균형을 잡으며 일어서는 것이 중요하다.
DSC_4754
이형주 프로서퍼가 시범을 보이고 있다.
DSC_4754
시범과는 조금 느낌이 다른(?) 수강생들.
DSC_4754
생명줄을 발목에 묶고 있다.
DSC_4754
이제 실전을 위해 바다로 나간다.
DSC_4754
서피비치의 프로서퍼로부터 서핑을 배우고 있는 수강생들.
◇‘파도’엔 밤낮없다

기자에게 ‘파도 타기’라곤 사람들이 돌아가며 연이어 술잔을 비운다거나, 응원할 때 순차적으로 벌떡 일어섰다 앉는 것이 전부였다. 이곳에서 실제 파도를 타는 이들을 보니 굉장히 멋지다.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DSC_4754
수강생 한 명이 힘차게 페들링을 하고 있다.

이날 5명의 초보자들이 강습을 받았다. 부력이 좋은 9피트 짜리 보드를 받아들고 이동하는 것부터 배웠다. 보드는 절대 앞에 두고 이동하면 안된다. 파도에 튀어올라 얼굴을 때려 다칠 수가 있다. 옆에 끼고 바다로 나가야 한다. 서핑은 위험해 보이지만 사실 어떤 해상 스포츠보다 안전하다. ‘생명줄’로 보드와 발을 연결해 놓았기 때문이다. 구명튜브를 늘 지니고 다니는 셈이다. 물론 멀리 떠내려가면 좋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보드에 몸을 뉘이면 그 자체가 배다. 양손으로 페들링(노젓기)을 하는데 이때부터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몸을 휘청일 정도로 노를 젓자면 뒤집힐 확률이 높다. 서핑은 밸런스가 중요한 운동이다.

DSC_4754
단번에 일어서기 위해 노력하는 수강생.

노를 저어 어느 정도 나가면 파도를 주시한다. 파도가 오면 순식간에 보드에서 일어나야 한다. 양손을 보드에 짚고 발을 배까지 올려 벌떡 일어난다. 뒷발과 앞발의 각도는 약 45도에 어깨넓이로 맞춘다. 눈은 앞을 주시하고 양팔을 살짝 펼쳐 균형을 잡고 파도의 스피드를 즐긴다. 무게 중심을 바꾸며 보드를 조향하는 것은 일어서는 것이 익숙해진 다음에 생각할 일이다.

DSC_4754
파도에 올라타는 순간, 바로 일어서야 한다.

넘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할 뿐 특별한 완력이 필요치 않아 여성들에게 유리하다. ‘보통의 경우’ 남성보다 여성이 더 가볍기 때문에 서핑은 여성에게 더 어울리는 운동이라고 한다.

DSC_4754
균형을 잡고 일어서는데 성공한 수강생.

5명은 군사 훈련에 가까울 정도로 강도높은 강습을 받았다. 얼추 곧잘 일어나는 이도 있었지만 무슨 비닐봉지 마냥 해변까지 그냥 떠내려오는 이도 있다. 로빈슨 크루소가 표류했을 때 무슨 판자에 누워서 떠내려 왔다는데 아마 이랬을 것 같다. 꽤 오랜 시간을 반복했지만 모두 환한 웃음을 머금었다. 로빈슨도 즐겁긴 마찬가지였다.

이미지 11. 서피비치 7월 11일 그랜드 오프닝 축하 공연 전경
밤이면 뜨거운 공연이 펼펴지는 서피비치.

이미지 11. 서피비치 7월 11일 그랜드 오프닝 축하 공연 전경
밤이면 또다른 파도가 시작된다. 서퍼들이 환호하는 디제잉과 공연 등이 양양의 밤과 함께한다.

해가 뉘엿 넘어가면 하조대 서피 비치는 거대한 해변 클럽이 된다. 서퍼들의 문화는 클럽이나 록, 힙합 등과 일맥상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파도대신 쿵쾅대는 록 음악의 웨이브에 몸을 벌떡 일으키고 맥줏잔의 파도를 탄다. 시원한 생맥주와 예거밤(독일 예거마이스터와 오스트리아 레드불을 섞은 ‘게르만식’ 칵테일)이 들어갈수록 두 발로 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 것도 서핑과 비슷하다.

DSC_4611
서피비치를 새로운 젊은 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박준규 대표.

오랜 시간 문화기획에 종사한 라온서피리조트 박준규(38) 대표는 “서피비치는 서핑 문화 그 이상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통해 양양을 대표하는 레저 공간이자 서핑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며 “캠핑과 공연 등 동일 맥락의 문화가 펼쳐진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양양 | 글·사진 이우석기자demory@sportsseoul.com

DSC_4592
범부메밀국수의 막국수.

양양 서핑 여행정보

●맛집=

범부메밀국수는 이제 알만한 사람은 모두 아는 막국수 명가. 메밀함량이 높은 굵은 면발의 비빔막국수에는 해바라기씨 등 견과류가 들어가 한층 고소하다. 물막국수도 좋지만 비빔막국수에 육수를 부어 먹어도 좋다.(033)671-0743. 하조대횟집이 세꼬시를 잘한다. 싱싱한 생선을 주문 즉시 바로 썰어낸다. 얼큰하게 끓여낸 매운탕도 좋고 남은 회에 채소와 초고추장을 넣고 비벼먹어도 근사하다.(033)672-7575.

P1740238
하조대횟집 세꼬시.

서프(Surf)를 즐기고 ‘섭’(자연산 홍합)을 안 먹으면 ‘섭섭’하다. 손양면 오산횟집은 섭국으로 소문난 집. 굵고 실한 섭을 넣고 얼큰하게 끓여낸 섭국은 식사로도 좋고 해장용으로도 그만이다.(033)672-4168.

P1740238
오산횟집 섭국.

●숙소=

서피비치는 오토캠핑장을 갖췄다.텐트와 캐러밴도 대여해준다. (033)672-0695. 하조대 해변에는 콘도와 모텔의 중간 쯤 개념인 콘텔이 많다. 올리브 콘텔은 바다 전망객실에 취사 시설과 깨끗한 목욕탕과 화장실 등을 갖춘 곳이다.(033)672-0088.

양양 대명 솔비치는 오산해수욕장과 가까워 한적하고 화려한 휴가를 즐길 수 있는 곳. 바다에 직접 면한 호텔과 콘도에는 아쿠아 등 다양한 물놀이 시설도 있다. 문의(www.daemyungresort.com/sb)

기사추천